'그렇게까지'라는 말 앞에서
새벽부터 비가 오고 있다. 이런 날은 아침부터 출근길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렇듯 무거운 마음을 만드는 순간들을 마주하곤 한다. 누군가 던진 “그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말처럼 말이다. 그 말은 농담처럼 들릴지라도 듣는 이에게는 오래 남아 관계의 온도를 바꾸고,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만든다.
비가 오는 아침이면 나는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회색 하늘 아래, 우산을 쓴 채 빗속을 걸어오는 A를 태우는 일은 어느새 나의 비 오는 날 풍경이 됐다. 서로의 집과 직장이 가까워 궂은날엔 먼저 연락해 “같이 가자”라고 하곤 했다. 차 안에서는 하루의 안부를 묻고, 지난밤의 뉴스나 사소한 이야기에 웃음이 묻어났다.
그날도 비가 내렸다. 전날 A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은 다른 동료도 함께 픽업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이미 상관 P와 함께 출근하기로 한 약속이 있어 미안하다고 전했다. A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누구 눈에 들고 싶은 거야? 그렇게까지 하면서 출세해야 해?”
순간, 바람에 우산이 뒤집히듯 마음이 꺾였다. A를 좋은 친구이자 동료로 믿었는데…. ‘도움은 내가 미리 앞질러 주는 것이 아니라, 요청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은 스쳐 간 듯 보였지만,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렀다. 우리는 왜 타인의 선택을 쉽게 해석하려 할까. 그것이 노력이라면 ‘집착’으로, 헌신이라면 ‘야망’으로 바꾸는 순간이 있다. 그때 신뢰는 흔들리고, 말하지 않은 오해가 조용히 자라난다. 관계 속에서든, 일과 돈의 문제 속에서든 ‘그렇게까지’라는 말은 선택을 가볍게 만들고, 걸음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일과 가치에 대한 다른 시선
사람들은 흔히 돈과 일을 함께 떠올린다. 형편이 넉넉하면 일을 선택의 문제로 여기고, 사정이 어려우면 생계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퇴직 후, 안정적인 연금 수급자가 되었지만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 선택에는 생활비 이상의 이유가 있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만나고, 내가 가진 경험과 재능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소식을 들은 한 친구가 말했다. “그렇게까지 돈을 벌어야 해? 이제 좀 쉬지.” 분명 나를 위하려는 말이었을 테지만, 그 속엔 ‘일은 돈을 위한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내게 일은 돈과 쉼,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 실현이 함께 숨 쉬는 자리였다. 직업은 단순히 경제적 기반을 유지하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꽃피울 수 있는 소중한 무대였다. 이를 위해 나는 나의 중심에 두는 가치를 분명히 했다. 그 가치가 ‘창의성’이라면 새로운 시도에서 즐거움을 찾고, ‘나눔’이나 ‘연대’가 가치라면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거나 사회적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연결했다.
일, 쉼, 그리고 가치를 함께하는 법
또한, 일을 다시 시작하며 일의 강약을 조절하는 법을 배웠다. 하루 중 에너지가 가장 높은 시간에는 집중해서 일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일에서 얻은 에너지를 가치 활동으로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그리고 경제적 안정 장치를 마련하고 나니, '그렇게까지'라는 말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더 몰두할 수 있었다. 돈과 쉼, 가치는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세 가지가 아니라, 잘 설계하면 한 길 위에서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세 동반자가 된다.
평가보다 중요한 것은 '이해'
누군가의 걸음을 재단하는 잣대는 결국 우리의 기준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준을 절대적인 진실처럼 휘두르곤 한다. ‘그렇게까지’라는 말 앞에서 우리는 묻지 않는다. 그 사람이 왜 그 길을 걷는지, 무엇을 향해 가는지. 관계 속에서도, 그리고 일·돈·가치의 선택에서도, 이해는 평가보다 더 큰 힘을 가진다.
나는 오늘도 내 걸음을 의심하는 사람보다, 내 걸음을 이해하려는 나 자신에게 더 많이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 이해를 다른 이와 나누기 위해 대화의 자리를 만든다. 내 이야기를 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서로의 걸음을 바라보며, 나의 길과 그들의 길이 이어질 수 있음을 배운다. 그날 마음에 비가 내렸던 이유를 이제는 안다. 그 비는 나를 멈춘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이 길을 걷는지를 더 또렷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