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자기 영혼의 중심부에 있었던 말, 백치처럼 내내 혼자 되뇌고 되뇌었던 말을 마침내 토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오면.....
아이가 넘어져서 아프다고 울면 화가 났다. 머릿속으로는 넘어졌으니까 위로를 해줘야지, 얼마나 아플까 공감해 주고 토닥토닥해줘야지 하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화가 마음에서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아프지 했다가도 아프다고 계속 우는 아이를 보면 그러게 왜 넘어지고 그래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아이가 다섯 살 무렵 침대에서 뛰다가 다리를 접질렸는지 갑자기 아프다고 울었다. 처음에는 아이고, 어디 아파하고 아이의 아픔에 공감했으나 아프다고 계속 우는 아이에게 그러게 왜 침대에서 뛰어 엄마가 뛰지 말랬지 하고 또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치지 않는 아이의 울음은 내 마음속 용광로를 끓게 했고, 응축되어 있던 화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아이에게 힐난의 말을 내뱉게 만들었다.
내 화에 놀란 듯 아이는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쳤다.
그다음부터 아이는 밖에서 넘어지면 두려움에 찬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넘어져서 아픈 것보다는 엄마가 또 화를 낼까 더 불안한 눈빛이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괜찮아, 안 아파 물으면 그제야 아이의 얼굴도 펴지면서 괜찮다고 피는 안 난다고 말하며 편안해졌다.
어느 날 아이가 예전처럼 넘어져서 울지 않고, 넘어진 것보다는 엄마를 더 신경 쓰면서 올려다봤을 때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아이에게 잘못했구나 싶었다.
왜 아이가 넘어져서 우는 울음을 견디지 못하는 것일까. 잘 달래주다가도 결국에는 화를 내게 되는 것일까, 이 화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피아노 학원 전단지를 보고, 피아노 학원에 가고 싶다고 엄마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엄마는 대뜸 화를 내며 안된다고 소리쳤다.
엄마의 화내는 모습에 나는 놀랐고 그 기억이 각인되어 그 이후로는 어떤 요구든지 부모에게 잘하지 않게 됐다. 넘어져서 피가 나면 아무렇지 않게 손이나 휴지로 쓱 닦았고 손에 가시가 박혀도 다른 손으로 긁어내던지 입으로 물어뜯던지 해서 스스로 빼냈다. 열이 나고 아프면 조용히 누워 잤다.
아이가 넘어져서 울 때, 그 울음을 견디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부모에게 그래 보지 않아서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기억하는 시점부터 나는 아프다고 울어본 적이 없고, 무언가를 해달라고 요구해본 적이 없었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부모와는 데면데면한 마음의 거리를 만들어 냈고, 마음속 깊은 곳에는 용광로와 같은 ‘화’를 만들어냈다.
나는 그러지 않았는데 너는 대체 뭐가 부족하다고 그렇게 우는 거야.
위로해 줬잖아 아프니 물어봐 줬잖아 그러면 그쳐야지 적당히 해야지, 라는
마음 깊은 곳 상처 받은 아이의 분노와 서러움.
내 마음속 아이는 내 아이의 울음을 견디지 못했다.
몸은 성장했어도 그 아이는 상처 입은 그대로 내 마음 안에 있었다.
마음속의 아이를 알게 됐을 때 내 아이가 길게 울더라도 예전 같은 화나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화나는 감정이 들더라도 예전처럼 휩쓸 듯이 감정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몰아가지는 않았다.
글롬이라는 나라에는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여왕이 있었다. 여왕은 신을 고소하려 한다.
세간에는 언니들이 동생을 질투해서 동생의 행복을 파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자신은 동생을 질투한 것이 아니라 사랑했다. 동생을 괴물과 같은 존재에게서 놓여나게 하고 싶었다.
베일을 벗고 신과 대면했을 때 여왕은 알게 된다.
자신의 얼굴이 추해서 베일로 얼굴을 가린 것처럼 자신의 마음 역시 베일로 가려져 있었다는 것을.
동생을 사랑해서 한 행동이 아니라 소유욕으로, 독점욕으로, 질투로 행한 일이었다는 것을.
동생이 자신 없이 행복한 것을, 자신이 키웠는데 자신보다 더 대단한 존재가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