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인 것처럼 햇빛을 쐰다. 아니면 풀잎인 것처럼. 바이러스 질환의 후유증인지 알 수 없으나 피로감과 가슴 답답함, 잔기침이 있다. 잔기침은 참을 수 있는 강도라서 공공장소에서는 참다가 혼자 있는 경우 캑캑거린다. 생강차를 수시로 마시고 몸에 좋다는 찐득한 액체를 한 티스푼씩 떠먹는다. 한 시간 이상의 걷기는 무리인 듯해 아침, 저녁으로 삼십 분씩 걷는다.
나도가 봤다면 토끼라고 말했을 흰 구름이 둥실 떠있고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저녁 하늘. 시든 나뭇잎이 한 장씩 바닥으로 떨어지고 몸에서 땀이 나지 않아 가을이구나, 했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길,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풀벌레 소리.
타인과 접촉하고(전파에 대한 염려 없이) 아이 음식을 손으로 먹이고 세탁물을 널고 바닥을 닦는 일에 자꾸 웃음이 난다. 남편에게 말로 설명해서 아이들 밥을 먹게 하고 물건이나 식재료를 만질 때마다 장갑을 착용하고(얼마나 답답하던지). 유리창에 줄줄 흐르는 빗물을 보고만 있는데도 행복해져서 후유증이 대단하네, 했다. 일상의 일들을 내 손으로 수행한다는 편안함과 기쁨.
하천이 흐르는 길에 날벌레가 무수하게 많아 미안해, 좀 지나가자 말하고 헤치며 나아갔다. 서서히 회복된다.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비 내린 뒤 청아한 향기를 머금고서 또 다른 가을이 오고 있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투덜대며 스토리 위주의 책들을 읽었다. 스릴러 소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애거사 크리스티의 <0시를 향하여> 반전이 인상적이다. 같은 작가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는(정신적인 충격을 겪은 후) 심리소설에 가까운 <봄에 나는 없었다> 행복을 위해서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자신을 속일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사막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 깨닫는 거”라는 구절이 필명 메리 웨스트매콧으로 발표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다른 소설 <딸은 딸이다>에 등장하는데 <봄에 나는 없었다>는 가정주부가 의도치 않게 사막에 머무르게 되면서 깨닫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간코너에서 제목을 보고 뽑아온 온 김가을 저자의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는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방영되는 시기(아주 최근)에 여전히 자행되는 가정폭력에 노출된 가족의 실상을 보여준다.(저자는 아버지 폭력이라고 지칭한다.)
새롭게 만난 작가 GK 체스터튼. 사건을 해결하는 브라운 신부의 시선(관찰력의 중요성)이 멋지고 부럽다. 브라운 신부를 오래 보고 싶어서 아껴서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