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괜찮은 날

by 북남북녀


구름 낀 하늘 아래 모내기를 마친 논과 이파리가 커지는 초록 밭이 펼쳐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들려오는 꼬끼오 소리. 식물이 자라고 꽃은 피어 난다. 자주 걷던 길이지만 겨울과는 다른 풍경. 습하고도 차가운 바람이 얼굴과 팔을 스친다.


찌푸리는 일이 있었고 웃는 일도 있었다. 반갑지 않은 사건에 약한 두통이 며칠 이마를 누르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인사 건네며 앞서 걷는 이. 앞에서 걸어오며 지나가는 이. 저 멀리서 쿠르르릉 열차가 지나고. 타인의 발걸음을 어찌할까, 내 걸음을 걸을 수 있을 뿐. 들숨과 날숨으로 생각은 순환되고 지저귀는 새소리로 귀는 맑아진다. 기운은 모두 빠져나가 지친 팔과 다리로 집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다.


초록잎이 말리며 쪼그라든다. 집 안의 식물이 말라간다. 싱크대로 가져가 물이 흐르는 수도꼭지 아래 두고 쳐진 잎을 닦는다. 무리 없이 단단하고 찢기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잎의 감촉. 하루 만에도 수북하게 쌓이는 먼지에 아랑곳 않고 자라는 식물들.


걷기에 괜찮은 날은 흐린 날이다.

바람이 세게 불고 곧 비가 내릴 것 같은 날

비 맞으며 걷는 것도 좋으리라.

온갖 것이 비와 만나 내뿜는 향기를 들이마시면서


다른 날 보다 느리게 밝아지는 아침.

공복에 마시는 잎차 향의 달콤함과 씁쓰레한 맛의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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