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사람은 5시 58분에 전화를 한 걸까?”
구름이 낮게 깔리고 곧 비가 내릴 것 같은 날 동생을 만났다. 계란형 얼굴에 동그란 눈, 앵두 같은 입술에 어깨까지 오는 구불거리는 갈색 머리.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밝고 화사한 화이트톤의 카페에 우리는 앉았다.
“그러니까 금요일이었다는 말이지. 연차 낸 사람들이 많아 분위기는 조용했고 다섯 시쯤에는 퇴근을 생각하며 마음이 설렜어. 5시 50분이 됐을 때 신발도 갈아 신고 옷매무새도 가다듬고 사무실 문만 바라봤어. 그런데 언니, 5시 58분에 전화가 온 거야. 말은 또 얼마나 느리게 하는지. 욱하고 짜증이 올라와서 주체할 수가 없더라고. 전화를 끊고 보니까 주변 사람들은 모두 퇴근하고 나 혼자 사무실에 남았는데 6시 4분이었어, 4분이나 지나있었다니까.”
“너희는 칼퇴가 가능한 직장이니까. 그렇지만 사분이니 그 정도쯤이야, 생각하면 안 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너무너무 짜증이 나는 거야, 욱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계획을 세웠는데 갑자기 일이 발생하거나, 어떤 사람이 끼어들어 방해를 받는다면 당연히 짜증이 나지. 침해당한다는 생각이 들어 불쾌하기도 하고. 이런 순간에 어떻게 대응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인성을 드러내는 거 같아.”
“맞아, 나도 내가 성격이 진짜 나쁘구나 생각했어. 사분쯤이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욱하는 마음이 다스려지지가 않잖아. 그러고 보면 병원에 마감시간 임박해서 갈 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아빠가 그랬잖아. 한 욱하는 성격이었는데.”
“그러네, 아빠 생각난다.” 얼음 가득한 아메리카노와 우유 거품 가득한 녹차라테를 앞에 두고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아빠를 떠올리며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새벽 네 시에 눈을 떠 책을 폈을 때 소리가 거실로 나왔다. 눈은 반쯤 감고 정수기에서 물을 받고, 화장실에 갔다 오더니 거실에서 잘게, 엄마.
소파 아래 요를 깔고 책 읽으려 다시 자리에 앉으니 뒤척뒤척이던 소리가 일어나 물먹을게 엄마, 왔다 갔다. 책을 손에서 놓고 소리 옆에 누웠다. 아직 일어나기에는 일러, 조금 더 자자. 눈을 감는데. “왜 여기에 있어?” 나도가 거실로 나온다. 엄마와 누나만 거실에 나와 있는 것이 속상한지 울먹울먹. 얼른 나도를 옆에 누이고 여기서 코 자자, 토닥토닥. 이 순간 내 머리에 떠오른 노래가 있었으니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계획도 연필로 세워야겠네,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아이들의 배를 이불로 덮고, 볼을 한 번씩 쓰다듬는다. 아이들이 다시 잠드는 데 걸린 시간, 한 시간. 다섯 시, 날이 밝았다. 환한 밖을 보니 나가고 싶고, 걷고 싶고,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고 싶고. 오늘 아침 독서는 못하는 날인가 보네, 조용조용 현관으로 나가 운동화를 신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