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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Aug 24. 2022

낮잠

아무래도 나는 게으름 인자를 몸속에 듬뿍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눈이 감기고, 책이 여전히 내 손에 있거나 텔레비전이 변함없이 켜져 있을 때 눈 뜨는 걸 좋아한다. 달라진 게 없는데 나만 잠시 다른 곳에 있다가 온 느낌. 환한 방에서 잠드는 게 좋다.


삼십 분은 눈을 감고 있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몰려오고 아무 생각 안 하려고 잡념을 밀어내며 가만히 누워 있는다. 그러니까 가만히 누워있기 위하여 내 심신은 애쓰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잠을 자야 한다, 잠을 자야 한다.


낮잠은 그런 게 없다. 애쓰지 않더라도 스르르 잠 속으로 들어간다. 포근하고 달콤하고 평온하다.


하는 일 없이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때 학교 수업을 끝낸 S가 종종 도서관으로 놀러 왔다. S는 대학 신입생으로 낯선 환경에 설레면서도 걱정이 많을 때였다. 처음 접하는 수업방식과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편안하지 않았던 듯싶다. 오후에 S와 산책하러 도서관 밖으로 나오면 환한 빛에 눈이 부셨다. 안개 낀 듯 뿌연 시각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음료수 캔을 하나씩 들고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도 음료수 캔을 들고 도서관 밖으로 나가려는데 거대한 뱀이 등장하는 영화를 상영한다는 메모를 S가 읽었다. 이 영화 보고 싶었는데, 시간도 있으니 들어갈까. 도서관 무료 상영 영화를 본 적이 없어 나도 흔쾌히 동의해 우리는 처음으로 도서관 상영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드문드문 나이 든 아저씨 몇 명이 앉아 있을 뿐 자리는 여기저기 비어있었다.


공포 영화인가, 시선을 고정하고 화면을 보기 시작했는데 커다랗고 긴박한 사운드에도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반가운 낮잠님이 오셨다. 이게 웬 행운인가 얼른 눈을 감고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누군가 어깨를 톡톡 친다. 주변은 어둡고 급박한 분위기의 사운드로 영화는 여전히 상영되고 있다. 나가자, S가 내 귀에 속삭인다. 금방 잠을 깨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S와 상영관을 나왔다. 왜? 보고 싶다며.

미안, 내가 시간 뺐었지. 너는 보고 싶지 않은 영화인데. 아니야, 나는 영화보다도 잠자는 게 좋아. 끝까지 봐도 되는데. 내가 네 시간을 너무 많이 뺏은 거 같아, 갈게.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짓고서 S는 돌아섰다. 영화 보면서 자는 거 나는 진짜 좋아하는데.


한차례 집안 정리를 하면 열 시쯤이다. 차 한 잔을 놓고 식탁에 앉으면 눈이 감겨오는 시간. 장난감으로 아이가 잘 놀거나 조용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잠깐 누울까 고민되는 시간이기도 하고. 놀이터에 가거나 공원을 산책하는 외부 활동을 계획하지만 삼십 분만 누울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몰아칠 때가 있다. 하늘이 파랗고 맑은 날이면 더욱더. 파란 하늘을 보며 환한 방에서 잠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일어나. 일어나”아이가 내 몸을 흔든다.

“오 분만, 딱 오 분만 더 누워있을게."

“싫어, 일어나, 일어나.”

“그래, 알았어, 알았어.”

눈 뜨니 여전히 파란 하늘, 기분 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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