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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Sep 21. 2022

모기 잡는 사람, 안 잡는 사람

간지럽다. 왼쪽 눈두덩이 붉게 부어올랐다. 양다리, 양팔, 오른쪽 볼, 등에 이어 눈까지 공략당했다. 나뿐만 아니라 요 며칠 아이들의 몸에도 모기 물린 자국이 열 군데는 넘을 듯싶다. 양다리, 양팔, 발바닥, 배꼽 밑 복부. 이런 중에도 남편은 한 방도 물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모기 잡는 사람은 남편이다.


윙~~ 귓가에 들리는 모깃소리가 거슬렸으나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남편이었다면 얼른 일어나 환하게 불을 켠 뒤에 벽 어딘가 붙어 있을 모기를 잡기 위해 구석구석 살펴봤을 텐데. 여름도 지나가는 시기인데 바깥의 모기가 안으로 피신해 오는 건지. 얼마 전에는 새벽에 모깃소리에 불을 켠 남편이 네 마리를 잡았다고 말해 놀랐다. 네 마리라고? 요즘 모기에 물리는 이유가 있었구나.


*가을까지 살아남은 모기를 슬픈 모기라 한다고, 가여워서 모깃불은 피우지 않는 법이라는 구절을 본 기억이 있는데. 이렇게 전투적으로 공격하는 모기를 가여워하기는 힘들다. 가여움보다는 귀찮음으로 한 번 물리고 말지, 두는 편인데. 물린 자리를 긁느라 아이들이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붉게 부풀어 오른 내 왼쪽 눈두덩을 보면서 모기장을 구입해야 하나 뒤늦게 고민한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가뿐한 마음으로 누웠는데 귓가에 울리는 윙~~ 소리 때문에 다시 일어나 모기와의 사투를 벌이고 싶지는 않다.(그럴만한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것이 힘든 사람이랄까) 그러다가는 잠에서 반짝 깨어 모기는 잡더라도 밤을 꼬박 새워야 하는 비극이 발생할 수도 있다.(가장 나쁜 상황은 모기는 놓치고 잠은 깨어 어영부영 밤 시간을 견디다가 비몽사몽 다음날 아침을 맞이하는 것) 모기들아, 알아서 사라져 주지 않겠니. 이만큼 물었으면 양심상 그만 물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 정도 생각을 하다가 모깃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드는 것이 모기를 향하여 쓸 수 있는 내 에너지 전부다.


불을 끄고 식구들이 모두 누운 시간. 윙~~ 어김없이 모기가 나타났다. 손으로 두세 번 쳐내는 데도 이 대담한 모기는 내 살 어딘가에 침을 꽂을 계획을 변경하지 않는다. 나는 일어나고 싶지 않다고! 잡고 싶지 않은데. 아이들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하며 남편을 부른다. “여보, 모기” 번쩍 눈을 뜬 남편이 방문을 닫고 형광등을 켠다. 날카롭게 주변을 살피는 한밤중의 긴장감이 눈을 감고 있는 내게도 전달된다. 탁! 잡았다.


모기 잡는 사람(모기 잡는데 기꺼이 에너지를 쓰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네, 안심하고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내일은 눈두덩이 가라앉아야 할 텐데. 설마 반대쪽 눈두덩이 부풀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에이, 귀찮은 모기들!


*“가을까지 살아남은 모기를 슬픈 모기라 한단다. 모깃불은 피우지 않는 법. 가여우니까.”

다자이 오사무 <만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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