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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Oct 05. 2022

가지런하지 않은 옷가지

비스듬하게 햇볕이 들어오는 시간 빨래를 널고 싶다. 조금 있으면 수직으로 햇볕이 베란다에 쏟아질 테고 그 아래서 건조되는 옷가지를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청소기를 돌리다가도 나는 몇 번이나 가지런하게 널어진 옷가지가 있는 건조대에 시선을 둔다.


방과 후 공개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 주중 내내 분주했다. 1학기에 이어(남편이 반차를 네 번 내어 참석했다.) 2학기인 지금 두 번째 열리는 거라 나도는 불편해하고, 아빠 일정은 휴가를 내기 어렵고. 저번에 갔으니까 이번에는 엄마 안 가면 어떨까. 소리에게 물으니 엄마가 안 오고 내가 수업하는 모습을 봐줄 사람이 없으면 속상해.


첫날은 남편이 반차를 내어 가뿐하게 혼자 참석했으나 나머지 삼일은  나도와 동행했다. 학교 앞에 세워둔 나도의 자전거가 보이지 않아 울먹이는 아이를 안아 올리기도 했고, 방과 후 선생님이 수업을 위해 가져온 거북이를 더 보고 싶다고 울음 터진 나도를 달래기도 했다. 낯설고 불편한 감정을 잘 견디지 못하는 나도가 공개수업이 열리는 교실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텨서 이십 분은 복도에서 서성거리다 교실로 진입하기도 하고. 학교에서부터 집까지 나도를 안고 왔더니 팔이 빠지겠어, 욱신욱신 쑤신다. 저녁 먹는 시간에 남편에게 하소연도 했다.


마지막 공개수업 참관 후 편의점에 들러 소리는 까르보불닭볶음면을, 나도는 복숭아 맛 음료수를 사서 집에 도착했다. 냉동실에 있던 순대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고 소리가 먹고 싶다던 까르보불닭볶음면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아이들의 컵을 꺼내 나도가 고른 복숭아 맛 음료수를 따른다. 매운 걸 먹지 못하는 소리는 빨간 소스는 콩알만큼 넣고 하얀 소스는 듬뿍 넣어 물을 따라낸 볶음면에 넣고 섞는다. 남은 불닭볶음면 빨간 소스에 순대를 찍어 먹으며 내가 맵다고 말하니 매우면 물먹어야지, 나도가 일어나 정수기에서 컵에 물을 받아 내 앞에 놓아준다.


나도야, 감동이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엄마가 물 달라는 말도 안 했는데.

나도 진짜 착해, 하얀 소스 범벅인 불닭볶음면이 맵다고 손부채질하며 소리가 말한다.


휘 둘러본 집안은 가지런하지 않다. 아이와 외출하기 위해 급하게 준비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중간중간 아이를 안고 이동하느라 팔에 힘은 빠지고 혹시라도 작은 아이가 형아와 누나의 수업을 방해할까 잔뜩 긴장하면서 수업을 참관했는데.(우유맛 캐러멜과 잘 가지고 노는 장난감 피규어를 가방에 넣었다. 언제 끝나 지루해할 때 캐러멜을 입에 넣어주고 나가자고 손을 잡아끌 때 피규어를 꺼내 줬다.) 뜻대로만 상황이 흘러가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함께 한다는 건 즐겁기도 해. 나도가 내 앞에 놓은 물 한 잔에 기운이 솟아난다.


파랑새는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다기보다는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움직이다 보니 알겠다. 비스듬하게 쏟아지는 햇살 아래 가지런하게 걸리지 않은 세탁물도 아름답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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