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처럼

걷기 예찬

by 북남북녀

누군가를 만났고 누군가의 말에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듯한. 날카로운 유리를 머리에 대고 긁는 듯한 통증이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다리에 힘은 풀리고. 몸 안의 것이 곧 쏟아질 듯한 메슥거림, 가슴 답답함. 신체의 힘이 빠져나가듯 혼의 힘이 사라져 가는 망연자실함.


뭐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상처 입은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던 순간들. 비에 서서히 젖어가듯 상처에 푹 잠겨가는 것을 문득 깨닫는 순간들.


지하철에서 내려 터덜터덜 집을 향해 걷다 보니 익숙한 동네 공원이 보였다. 6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흰쌀밥처럼 보인다는 이팝나무의 꽃이 떠올려지니. 새파란 하늘과 나뭇잎을 이리저리 흔드는 바람.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초록 이파리. 바닥에 닿지 않고 공중에서 흔들리던 눈송이 같던 하얀 꽃무리.


킥보드를 타거나 자전거로 공원을 달리는 아이들과 가벼운 복장으로 둥그런 트랙을 무심한 표정으로 반복해서 걷는 성인들. 공원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한 걸음, 한걸음 내딛다가 혼이 다시 돌아오는 듯한 생기가 느껴졌다. 나무의 생기, 공원의 활기가 내게 나누어지고 있네. 반짝반짝 빛나는 이파리의 생기가 내 눈에도 담기네.


체념이나 억지의 괜찮아가 아니라 깊은 곳으로부터 생성되는 에너지로 말하게 되는 괜찮아. 진짜, 진짜 괜찮아졌네. 힘없이 걸었을 뿐인데, 집으로 향했을 뿐인데.


주말이면 한 시간 삼십 분의 도보여행을 떠난다.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시간에 운동화 끈을 바짝 조이고 왼쪽 주머니에는 카드 한 장, 오른쪽 주머니에는 핸드폰을 넣고서. 요즘 가장 먼저 맡게 되는 시든 나뭇잎 냄새, 바짝 마른 식물 향기. 바스락 낙엽을 밟으며 밭을 거치고 논을 지나서 호수에 당도한다. 날카로운 말에 상처 입고 하루의 근심은 끊이지 않고. 근심이 온 에너지를 갉아먹네, 호수 위 잔물결의 일렁임.


한 시간 삼십 분의 도보여행으로 나는 달라졌을까 묻는다면 아니요.

여전히 나는 근심에 차있고 맞으면 아프고 굶으면 배고픈 사람이다. 오가는 말을 무시하고 지나가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 나는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 시간 삼십 분의 도보여행으로 내게는 활기가 장착됐다. 근심에 차 있는 하루를, 상처가 가득한 하루를 즐겁게 감내할 수 있는 활기, 생기. 무기처럼


비록 간단한 산책이라 하더라도 걷기는 오늘날 우리네 사회의 성급하고 초조한 생활을 헝클어놓는 온갖 근심 걱정들을 멈추게 해 준다. 두 발로 걷다 보면 자신에 대한 감각, 사물의 떨림들이 되살아나고 쳇바퀴 도는 듯한 사회생활에 가리고 지워져 있던 가치의 척도가 회복된다. 자동차 운전자나 대중교통의 이용자들과는 달리 발을 놀려 걷는 사람은 세상 앞에 벌거벗은 존재로 돌아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인간적인 높이에 서 있기에 가장 근원적인 인간성을 망각하지 않는다.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에서

몸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를 통해 몸을 인식한다는 것, 그것이 보행과 생산적 노동의 공통점이다.

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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