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편 2 오늘 아침 업무는 돼지머리에 절하기

미신은 안 믿지만 미신을 믿어요.

by 카레맛곰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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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명절, 즐거운 요리. 명절 첫날 가족들과 먹을 전을 준비한다고 식탁 앞에 앉았다. 계란을 깨고, 휘젓고, 굴전으로 시작해 동태전, 육전까지 준비하고 있다 보면 어린 시절 어머니와 이모, 고모들이 대체 어떤 노고를 겪으셨나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게 된다. 해봤자 5인 가족, 사촌들 없이 단출하게 보내는 명절인데도 요리에는 이 정도 노고가 든다.


명절이 오면 병사 시절, 간부 시절 함께 보냈던 명절이 떠오르곤 한다. 희한하게도 명절 당일 근무자 명단을 보면 익히 봤던 익숙한 이름들이 기입되어 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난 설 데이터를 뒤져보면 똑같은 이름이 똑같이 적고는 했다. 누가 억지로 바꿨다기보다는 보통 20명의 근무자가 들어가고 평일은 보통 달에 20일이니까, 그런 이유로 같은 근무자가 비슷한 시기에 근무를 서는 것이다.


대구에 있던 시절에는 그게 내 직속 후배였다. 내 방에 찾아올 때마다 방은 대체 언제 치울 거냐고 한 소리하던 후배,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입대한 녀석을 나는 하사부터 중사까지,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힘든 일이 있으면 같이 저녁을 먹고 기쁜 일이 있으면 주말 점심 치킨의 정을 나누고는 했다. 그 녀석은 잘 살고 있을까. 전역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대구에 찾아갔던 날 부대 앞 카페까지 나와 나를 반겨줬던 녀석에게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고 빨리 알려주고 싶은데, 참 쉽지 않구나.


오늘 해보려는 이야기는 군대, 공군 정비사가 보내는 명절 이후의 이야기다. 군에서 미신을 믿는 사람은 드물다. 군인들은 보통 기독교, 천주교 신자고 가끔 절에 나가 마음을 비우는 이들이다. 혹은 골프장을 라운딩 하면서 머리를 비우거나. 하지만 그런 이들도 꼭 하는 대행사가 있다. 돼지 머리에 돈 꽂고 절하기. 오늘은 그 이야기다.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명절이 끝나고 사무실에서는 년에 몇 번 나눌 수 없는 인사말이 오간다. 다들 익숙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더러는 명절 근무자를 보면서 웃는다. 명절에 고생한 거는 고생한 거고, 놀리는 거는 별개니까,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임에도 남자가 대다수기에 유치해질 수밖에 없는 곳이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해 이제는 가족 같은 이들과 다시금 재회의 인사를 나누면 모두 현실로 돌아갈 것만 같지만 그전에, 정비사들에게는 하나 더 큰 행사가 있다. 엔진을 모아놓고 돼지머리에 절을 하는 행사다. 올 한 해도 사고 없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많은 이들의 염원을 모으는 행사, 오늘만큼은 평소 독실한 크리스천이기에 같이 할 수 없다고 빼는 선배조차 돼지머리 앞으로 모인다.


새로 온 후배는 이 연초를 여는 행사를 보고 쭈뼛거리며 내 옆에 붙는다.



"오늘 무슨 행사 있습니까?"


"연초잖아. 올 한 해도 사고가 없기를 빌어야지. 우리는 특히 사고가 나면 크게 나니까."


"아... 그렇기는 하죠."



사실 이 모든 행사는 불안함에서 올라오는 발로다. 기관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정말 큰 사고가 난다. 톤 단위의 물건을 들고 옮기다 떨어뜨리면, 물건이 부서지는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죽는다. 그렇기에 정비사는 엔진이 무사하길 빌면서 동시에 엔진이 무서워 절을 하게 된다. 누군가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누군가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엔진을 모아놓고 감독관이 돼지머리에 5만 원을 툭, 물리면 준위들이 모여서, 원사들이 모여서, 중사들이 모여서, 하사들이 모여서 절을 한다. 행사에 처음 참여하는 하사들은 이게 무슨 짓인가,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지만 반장, 선임부사관이라 불리는 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절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내 분위기에 동화되어 쭈뼛거림 없이 절을 올리게 된다. 무엇보다 그들도 같은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다. 안전이라는 마음을.


모두 절을 올리면 감독관이 앞에 나와 모두에게 짧은 이야기를 건네준다. 모두의 안전을 빌며 이 행사를 진행했다. 우리는 사고가 나면 큰 사고가 난다. 옆에 있는 동료가 다쳐서, 죽어서, 내일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런 일이 없으면 하는 마음으로 절을 올린 거다. 다들 올 한 해도 행복하면 좋겠다.


짧고도 굵직한 인사말, 무거운 내용이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퍼져나간다. 우리 이제 진짜로 올 한 해를 힘차게 시작할 수 있다. 분명 올 해도 힘든 일, 어려운 일이 있겠지만 이겨낼 수 있다. 함께 나아갈 수 있다.


행사가 끝나고 상 위에는 편육과 간단한 다과, 음료가 깔린다. 독실한 크리스천은 이제야 짧은 기도를 올리고 다과에 손을 뻗는다.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는데 이 작은 다과회로 벌써 봄이 오고 있음을 모두 느끼게 된다. 긴 겨울을 지새고 혹독한 한파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이들에게, 용기가 피어난다.


다과회마저 끝나면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오늘은 엔진 조립 후 출고검사를 할 거야, 오늘 엔진 장탈할 항공기는 300번대 이글루에 있습니다, 시운전팀은 출고 검사 끝난 엔진 끌고 올라가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과의 시작이지만 모두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걸려 있다. 봄이 온다.




오늘은 예전을 추억하며 있던 행사를 짧게 적어봤다. 모두 좋은 명절을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명절은 과거와 다른 개념이 되었다. 모든 가족이 모이는 행사에서 우리 가족이 쉴 수 있는 짧은 시간, 혹은 나 혼자서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짧은 시간. 무엇이 좋다고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애초에 나는 아직 가정을 꾸리지 못한 청년이니까. 답을 내리기엔 많은 것을 보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명절에 대해 많은 이들의 인식이 바뀔 거라 생각한다. 당장 공항에 너무 많은 사람이 와 힘들다고 말하는 내 친구 셰프처럼 명절이 미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명절이 좋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혼자 쉴 수 있어서 행복한 이도 있을 것이고 그래도 예전에 북적거리던 그 시절이 좋았다고 회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모두를 위한 명절이니까, 앞으로 남은 3일 어떤 시선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모두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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