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정비사가 준비한 국군의 날 지원 이야기 1
지난 정권, 처음으로 공군에서 국군의 날 행사를 열었다. 장소는 11 전투비행단, 영공 방위의 최전선이자 하늘의 방패라 불리는 대구에서 말이다. 사실 그 이전까지 국군의 날 행사를 지원해 본 적이 없어서 우리 비행단에서 행사를 지원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가늠이 잡히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이 많았다. 더러는 귀찮은 일이 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고.
실제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는 기관정비사들에게 꽤 바쁜 시기다. 엔진 water wash 때문이다. 수행해야 하는 엔진은 정해져 있고 일정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일선 부서부터 시운전 부서까지 엔진을 장탈하면 세척하고, 세척한 엔진을 다시 장착하면서 다른 엔진을 장탈하면 또 세척하는 시간의 반복인 것이다.
거기에 환절기면 언제나 결함이 발생한다. 주로 말썽을 부리는 부분은 유압계통이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외부 기온도 바뀌면서 유압계통이 터지거나 손상되는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보통 가을에서 겨울, 혹은 겨울에서 봄처럼 급격하게 기온이 바뀌는 계절에 많이 발생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계절에 터지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신경 쓸 요소가 늘어난다.
그리고 또 하나, 가을이 되면서 늘어나는 새, 그로 인한 버드 스트라이크 사고와 이에 대한 정비 대책 마련까지.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니 푸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어쨌든 이런 일련의 계획된 일들 와중에 국군의 날 준비라는 새로운 업무가 생겼다. 공군에서 보낸 최초의 국군의 날, 오늘은 그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국군의 날 행사가 공군에서 개최되기로 발표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국군의 날 계획 문서가 떨어졌다. 위치는 늘 그렇듯 정비공장 앞 활주로 인근이다. 사실 모든 행사는 그 장소에서 이뤄진다. 1월 1일 기념 신년 비행 및 촬영 행사도 정비공장 앞 활주로, 스페이스 챌린지 행사도 정비공장 앞 활주로, 병사의 날 지원 행사도 정비공장 앞 활주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행사가 있을 때면 그 근방 작업자들이 고통스러워진다. 정비공장을 사용하는 대다수의 부품정비대 소속 정비사는 물론이고 인근에 있는 기관 정비사들까지도 귀찮은 일에 자꾸 노출된다는 의미다. 사람이 필요할 때 찾아다 쓰고, 엔진을 이송하려는데 해당 위치에서 무언가 준비 활동을 하고 있고, 때로는 행사 준비 중이니 우회하라는 이야기를 들어 엔진을 강제로 우회시키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점들은 모두 이번 국군의 날 행사 준비에 비하면 귀찮다고 할 수 있는 것들도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이 정도는 늘 겪던 일이니까 별 거 아니라는 듯 넘길만한 요소뿐이었다. 이번에는 아주 신박한 일이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사건의 시작은 지휘관 회의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공군 최초의 국군의 날 행사인데 거뭇거뭇한 바닥의 정비공장을 보여줄 수 있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군의 날 행사 이전에 정비공장을 청소해보자는 의견이 채택되어 시행하게 되었다는데, 누가 계획했는지는 몰라도 탁상머리에서나 나올법한 계획이었다고 생각한다.
보통 이런 청소 작업은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 봄이 오는 시기에 하고는 했다. 겨울이 되면서 상대적으로 작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여름은 작업이 가장 많은 시기, 바쁘고 힘든 시기다. 하지만 국군의 날 행사는 가을에 있으니... 일단 그 소식을 들은 해당 정비공장 내의 정비사들은 작업을 최대한 당겨서 처리했다고 한다. 당길 수 있는 작업은 당기고 미룰 수 있는 작업은 미루고. 주기검사 일정은 무슨 수가 있더라도 맞춰야 하기에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거겠지.
예정된 날짜까지 밤낮없이 일하던 그들은 예정된 청소날이 되자 모든 작업물과 항공기를 다른 이글루 및 정비고로 이동시킨 후 다른 부대원들과 함께 청소를 진행했고 내가 부대에 전속 온 이래로 처음, 빈 정비공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공간이 넓었던가. 빈 공장을 보고 처음으로 후배에게 했던 말이었다. 늘 항공기가 2대, 3대, 많게는 4대씩 들어있던 공장이 텅 비니 생활감이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정말로 삭막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애초에 기계가 가득했던 곳이었지만 거기에서는 그만큼 수많은 정비사들이 함께했으니까 여러모로 활기가 넘쳤는데.
청소가 끝나자 상부에서 각 중대에 연락이 떨어졌다. '내일 중대 별로 병사, 하사 인원을 최대한 동원해서 정비공장으로 집결하라. 그리고 전 대대원은 집에 남는 수건이 있으면 가져와라.' 집에 남는 수건이 있으면 가져오라니? 생각해 보면 웃긴 연락이었다. 참고로 추후에 모인 수건은 전부 사용했다. 선배들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보통 이런 연락은 걸레로 쓸 수건이 필요한데 없으니 십시일반 해서 모아 오라는 명령이라고 한다. 이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을 법도 한데 90년대, 00년대 시절에도 하던 짓을 아직도 하고 있다고, 걸레 살 돈도 없어서 모아달라고 부탁하냐고 툴툴거리던 선배들이 기억에 남는다.
어쨌든 다음 날 수건을 들고 많은 이들이 모였다.
"우리 뭐 한대?"
"바닥 닦는다는데요?"
"바닥 닦는데 사람이 사오십 명씩 필요해?"
바닥을 닦는데 정말 이만한 인원이 필요한가. 아니면 윗선에서 중사급 정비사들은 좀 쉬면서 후배들 관리하라는 배려 차원에서 모은 인원인가. 우리는 그 당시에만 해도 정확히 뭘 할 거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에 저마다 예상되는 것들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해봤자 바닥에 묻은 기름이나 좀 닦고 말겠지, 그게 대다수의 의견이었고. 각자 저마다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행정장교 한 명이 나타났다. 가슴팍에 들고 있는 인원철과 뒤따라오는 물통, 그리고 그 물통 안에 쌓인 수많은 걸레, 모두가 입을 다물고 그에게 시선을 모으자 단상 위에 선 장교가 입을 열었다.
"오늘 정비공장 바닥에 칠해진 왁스를 전부 지울 예정입니다."
아, 이게 군대였지. 무식한 놈들.
나는 그때 나름 재미있게 청소를 했지만 모두가 그렇게 즐겁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군대라는 장소에 정말 어울리는 작업이었다. 생각하지 않고 막 하는 청소. 당시 아래 계급에게까지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할지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고, 다들 당일이 되어서야 왁스를 지운다는 소식을 들었다. 왁스를 지우는 걸 왜 우릴 시키지, 외부 업체 안 쓰나. 당연하지만 그런 생각도 했었고.
그게 군대였다. 외부 업체의 도움은 받지 않고 최대한 돈이 들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하는 장소. 다음주에는 아마 청소 이야기가 가득할 거 같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돈을 들이지 않기 위해 왁스를 닦으라 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업무도 많이 밀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