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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May 11. 2024

잡초와의 전쟁 대신 공존을 선택했다

십 년 전, 풀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제초매트라는 회심의 신무기로 방어막을 쳤지만 승전보를 안겨다 준 것은 고작해야 3년 남짓,

그다음부터는 연전연패의 연속이었다.


철떡 같이 믿었던 방어벽이 무너졌으니 하는 수없이 싸움의 방식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겸업농부를 바라보는 전업농부들의 매서운 눈초리를 의식하며 잡초의 뿌리까지도 박멸한다는 글라신이라는 가성비 좋은 제초제로 무장하여 새벽 기습작전에 나섰다.

4월부터 10월까지 매달 반복적으로 살포해야 하는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단기전에서는 눈에 띄는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한번 출전할 때마다 20킬로에 육박하는 무거운 말통을 어깨에 짊어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농약의 기운을 맡으면서 그것도 몇 시간을 작업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곤욕이 아니다.

언제까지 이런 식의 전쟁을 지속해야 되는지 깊은 회의를 느끼던 차 장마철의 집중호우를 핑계 삼아 딱 한번 새벽작전을 건너뛰는 요령을 부렸다.


그런데 그 딱 한 번의 농땡이 결과는 한마디로 참혹한 결과로 나타났는데 그야말로 구제불능의 폐허가 되고 말았던 다.

장마기간 삽시간에 자라난 풀들의 광란으로 더 이상은 나무를 보호하면서 제초제를 살포할 방안이 사라져 버렸다.


    


기왕에 할 거면 똑바로 하자는 결심으로 추석연휴부터 시작한 비정상의 정상화작업은 연말이 되어서야 결실을 보게 되었다.

드디어 트랙터가 농장 안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일반적인 모습으로 돌아오자 그 어렵던 퇴비살포도 동계전정도 동계방제도 한결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태껏 제대로 된 가지치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유튜브에 소개된 각종 과일나무의 동계전정 영상을 시청하면서 점차 그 원리를 터득해 나갔다.

하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 막상 전동가위를 들고 나무 앞에 나서자 선뜻 자를 자신이 없어 머뭇거리게 되었다.

이때 유튜브에서 자주 들었던 숙련된 조교의 말이 떠올랐다.

'가지는 아무리 잘라도 죽지 않으니 겁먹지 말고 일단 잘라라! 자꾸 자르다 보면 터득하게 된다!'

  

우선 심호흡부터 크게 한번 하고 나서 무지막지하게 잘라나갔다.

'햇볕을 가리는 놈은 적군이다' 하늘로 치솟은 도장지는 인정사정없이 싹둑!

중앙에 자리 잡아서 통풍에 방해되는 놈도 가차 없이 싹둑!

영양분을 독점할 우려가 있는 형제 가지들에 비해서 굵은 가지도 매몰차게 싹둑!

전동톱으로 자른 굵은 가지들은 화덕용 땔감으로 따로 쌓아두었는데 그 량이 족히 몇 년 치는 되었다.

문제는 어마무시한 량의 잔가지들인데 매번 농촌기술센터에서 파쇄기를 임대하는 것도 번잡스럽고 하여 고민 끝에 부식의 속도가 빠른 대추나무의 특징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몇 토막으로 짧게 자른 잔가지들을 그대로 바닥에 깔면서 가지치기를 진행했는데 나중에 트랙터를 이용하여 한꺼번에 로터리를 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한번 트랙터가 지날 갈 때마다 땅바닥에 수북이 쌓인 잔가지들이 잘게 분쇄되면서 골고루 땅속에 파묻혔다.


바로 이것이 자연의 부산물을 다시 자연으로 되돌려주어서 자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자연의 이치다.

자신을 키워준 나무의 영양성장에 보답하기 위하여 잔가지들은 흙속에서 훌륭한 퇴비로 승화될 것이다.

.

풀과의 전쟁이라는 구호가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10년의 시행착오 끝에야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풀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풀이 자랄 수 없다면 그 흙은 죽은 흙이라는 말이다.

풀이 자라야 흙이 사는 것이고 흙이 살아야 풀이 자란다.

이러한 자연의 공생관계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당연한 이치이거늘 우매한 인간은 감히 자연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고 말았다.

값비싼 제초매트로 무장하여 철옹성을 쌓기도 했고 뿌리까지 박멸한다는 맹독성의 제초제를 어깨에 짊어매고 새벽기습작전을 나서기도 했다.


이제 전쟁은 끝이 났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친환경농법으로 변신한 것인데 어쨌든 자연의 일부인 풀과의 공존을 시도하려고 한다.  

적당한 크기인 20∼30㎝ 정도까지 자랐을 때 두둑의 풀은 예초기로 베어내고, 바닥은 트랙터를 동원하여 로터리를 치는 방식으로 농장의 풀을 다시 천연퇴비로 되돌려줄 것이다.


이럴 때 '자연을 닮은 사람들'(자닮)을 알게 되었다.

어렵게 개발한 제조비법을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특허를 출원하여 상업적 용도로 활용했을 테지만 모든 지식을 공개함으로써 친환경농법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따듯한 그 마음에 진정성이 느껴져 그날로 자닮의 팬이 되었다.  

그동안의 십 년 겸업농부생활 탓에 얼랑 뚱땅 손재주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얼랑 뚱땅 손재주를 발휘하게 되었다.

천연살충살균제의 방제 효과를 높이려면 빗물과 같은 연수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자닮의 가르침대로 농업용 연수기제작에 나섰다.


기왕 시작한 거니까 겸업농부의 얼랑 뚱땅 추진력은 천연살충살균제인 자닮 유황과 자닮 오일까지 직접 제조하기에 이른다.

자닮에서 원재료를 공동구매하여 교육동영상에서 알기 쉽게 재현하는 그대로 실행했더니 어렵사리 만들 수 있었다.

천연살균제를 만드는 성분으로는 유황과 가성소다 천매암 황토 천일염을,

천연살충제와 전착제를 만드는 성분으로는 식물성 기름인 카놀라유와 가성가리를 사용한다는 발상은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제조과정에서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자닮 유황을 만들 때는 불로 가열하지 않았음에도 혼합한 물의 온도가 100 가까이나 상승하면서 유황을 녹이는 것을 목격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천연농약을 농민이 직접 제조하여 사용한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는 농약을 살포할 때마다 방독면을 착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농민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다.

둘째는 최소 십여 차례 이상의 고독성 농약을 살포한 과일이라면 과학적인 잔류허용기간을 떠나서 소비자들의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서다.

어쩌면 다음의 세 번째 이유가 우리 농민들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일 수도 있겠다.

연간 수백만 원에 달하는 농약구입비용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닮에서 구입한 20만 원 내외의 원자재비용만으로 1년 치 이상의 천연농약을 제조하였으니 가성비로만 따져봐도 이만한 선택지가 없을 듯하다.


문제는 약효인데 설사 화학농약에 비해서 다소간 그 효능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쾌히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

욕심을 내는 김에  한발 더 나아가 강력한 살충제의 효과가 있다는 백두옹 삶은 물을 얻기 위한 장정에도 나섰다.

할미꽃씨앗을 구입하여 냉동고에서 2주를 다시 냉장실에서 1주를 보낸 후 조심스럽게 포토에 심어 육모장에서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렇다. 우리 사람들의 먹거리를 자연에서 얻고자 함인데 풀과의 전쟁이 웬 말이던가!

서로 공존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자연에서 배울 수 있다면 다소 수확을 덜 한다손 치더라도 그다지 큰 아쉬움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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