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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Sep 12. 2024

백두산 가는 길

14회

토요일 오전, 끝없이 펼쳐진 비포장도로를 따라 먼지구름 펄펄 날리며 차는 쏜살같이 달리고 있다.

연길시내에서 백산시까지는 족히 다섯 시간이 걸린다고 다.

운전대를 잡은 창우는 차가 덜컹거리건 도로가의 사람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건 개의치 않는다는 듯 무섭게 내달렸다.

도로 주변의 마을사람들도 이미 익숙한 광경인지 인상을 찡그리거나 항의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순박한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조수석에는 은하가 앉았고, 그 뒷좌석에는 배 교수와 내가 각기 차창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맨 뒤 칸은 최 씨의 전용좌석인지, 그는 아예 담요와 베개까지 준비하여 편안히 누운 채 코까지 골며 자고 있다.

아마도 여러 번 이 차를 타고 장거리 역행을 해 본 경험이 있었던 모양이다.      


연길시내를 빠져나온 지도 두어 시간은 된 것 같았다.

창밖의 풍경은 여기가 중국이라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다.

작은 상점의 간판마저도 어디를 가나 위에는 한글, 그 아래에 한자로 써놓았다.

조선족 자치주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률적 행위라고 했다.     


지나치는 길옆의 마을 풍경은 마치 70년대의 우리네 시골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간간히 도로공사를 하는 모습이며 공장건물을 짓고 있는 모습, 그리고 노후한 건물을 헐어내고 연립주택을 짓고 있는 모습에서 중국의 거대한 개발붐이 이 시골 마을까지 미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오지마을이 더 많아서인지 한적한 시골풍경을 감상하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창우야, 담배 한 대 태우고 가자.”      

배 교수의 이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두 시간을 넘게 비포장도로를 달려왔더니 그 피곤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다.     


창우는 인적이 없는 한적한 숲길 가에 차를 멈추었다.

옆에는 울창하게 가지를 뻗어 넓은 나무그늘을 형성하고 있는 오래된 정자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배 교수는 정자나무를 둘러친 석축 쪽으로 다가가 앉았고, 창우와 난 십여 미터 떨어진 숲길로 걸어가면서 각자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일회용 라이터가 말을 잘 듣지 않는지 연속적으로 라이터를 켜더니 겨우 담배에 불을 붙이는 배 교수에게 은하가 물었다.      

“아버지, 아저씨도 깨울까요?”      

배 교수가 차 안에서 자고 있는 최 씨 쪽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냥 둬라. 저 사람은 남이 깨우는 걸 싫어하는 성미니까 일어날 때가 되면 일어나겠지.”      


창우와 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방향에서 앞쪽을 바라보니 허름한 민가가 한 채 있었다.

그 앞에서 아기를 업은 젊은 아낙네가 좌판 위에서 커피와 삶은 옥수수를 팔고 있다.

그렇잖아도 커피 한잔이 생각났던 터라 창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배 과장님. 우리 저쪽으로 가서 커피 한잔 할까요?”     

“좋죠, 커피 한잔하고 갑시다.”      

   

창우는 우리 쪽으로 다가오던 은하를 바라보더니 피우던 담배를 땅바닥에 내던지며 구두앞창을 좌우로 비벼 됐다.      

“은하야 요즘도 아버진 커피 안 드시네?”      

“예, 커피는 안 드십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여쭤보겠습니다.”      

은하가 아버지 쪽을 바라보며 커피 드시겠느냐고 큰소리로 물었지만 배 교수는 담배를 집은 오른손을 좌우로 흔들어 보이면서 싫다는 표시를 했다.      

“아버진 원래 커피를 안 좋아하시니까 녹차가 있으면 좋겠는데…”      

함께 좌판 쪽으로 걸어가며 은하가 독백처럼 하는 말이다.


리어카를 개조한 좌판에는 방금 삶은 옥수수들이 큰솥에 담겨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었고, 일회용 커피를 탈 수 있는 재료들이 준비돼 있었다.      

우리가 걸어오면서 한국말을 하는 것을 들었던지 아이를 업은 아낙네가 연변사투리로 반갑다는 인사를 했다.

이곳에서 계속 들어온 말이지만 북한 억양과 엇비슷한 정감이 가는 구수한 말이다.      

   

“어서 오시라요. 방금 삶은 맛 나는 찰옥수수입니다. 커피도 있습네다.”      

“동포 아주머니시네요. 반갑습니다. 배 과장님, 커피 하실 거죠? 은하도?”      

내가 계산할 요량으로 좌우에 서있던 창우와 은하에게 묻자 모두들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주머니, 커피 석 잔 주시고요. 혹시 녹차도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몇 잔이나 드시겠습니까?”      

   

아낙네는 당연히 있다고 웃으며 말했고 이 말을 들은 은하가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최 씨 아저씨도 드셔야 하니까 두 잔 주십시오.”      

그리고 은하는 최 씨 아저씨가 특별히 좋아한다며 옥수수도 몇 개 싸달라고 했다.

창우가 계산하려는 것을 내가 제지하며 얼마냐고 물었다.

등에 업힌 아기는 두세 살 정도로 보였는데 포대기에 싸여서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얼굴은 새까맣게 탔지만 아기의 표정만큼은 이 세상 어느 아이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한국 돈으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커피와 녹차는 천 원씩이고, 옥수수는 한 개에 이천 원씩입니다.

커피와 녹차가 다섯 잔이고 옥수수가 세 개니까 합해서 만천 원인데 오늘은 제가 기분이 좋아서 특별히 만원만 받겠습니다. 만원만 주시라요.”      

아낙네가 만 원이라는 말에 은하와 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만, 창우는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라는 듯 옆에서 실실 웃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다.


내가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고 있을 때 은하가 가만있어보라며 나를 제지하더니 아낙네에게 항의하듯 따졌다.  

“아주머니, 커피 한잔에 천 원씩이나 받습니까?

또 옥수수 하나에 이천 원이나 받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은하의 항의에 아낙네의 답변은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한국 사람들한테는 다 그렇게 받고 있습네다.”       

은하가 같은 연변사람임을 알아본 아낙네가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투로 하는 말이다.


그러자 은하도 이대로 물러설 수만은 없었던지 다시 따져 물었다.      

“그럼 나에게는 얼마씩 받으십니까?”      

아낙네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다가 생각해 보니 화가 나던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남들도 다 그렇게 받는데 왜 그렇게 따지듯 묻습니까?

한국에서 오신 분이 없었고 애초에 아가씨가 주문했더라면 내가 그렇게 받겠습니까?

또 아가씨가 그렇게 주겠습니까?

한국 사람들한테는 몇 배로 받는 건 여기서는 다 기본이란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같은 연변사람들끼리 참 너무합니다.”      


이 말을 들은 은하도 더 이상은 대꾸하지 못했고, 옆에서 웃고 있던 창우가 그냥 가자고 말하며 혼자서 먼저 걸어갔다.

난 곧바로 아낙네에게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고 은하의 어깨를 밀면서 창우 쪽으로 따라갔다.      

좀 전에 같이 담배를 피웠던 그 자리에서 창우는 또다시 담배 입에 물었고, 나도 창우 옆에서 은하가 건네는 커피를 받아 들었다.


숲 속의 맑은 공기와 구수한 커피 향, 그리고 커피와 함께 마시는 담배연기는 방금 전에 있었던 씁쓸한 일들도 모두 잊게 했다.      

창우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딱 벌어진 체구와 우락부락한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가끔씩 이렇게 희죽거리며 웃는 순박한 모습이 이채로웠다.       

요즘 중국에서는 돈이 미덕이고 돈 많은 사람을 최고로 친단 말입니다.  

연길에서 백두산을 가자면 이 길이 유일한 길이거든요.

산골 오지에 사는 이곳 사람들도 돈을 벌려고 환장들을 하지요.

특히 조선족들은 교육열이 높아서 한족들보다는 오히려 더하단 말입니다.

연변 어디를 가나 한집 건너서 한국에 돈 벌러 안 간 사람들이 없을 지경인데 어떤 마을은 아예 통째로 텅텅 비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여기같이 산골 오지에 사는 저 아주마이 같은 사람도 돈을 벌려고 눈이 벌겋다고 봐야 됩니다.

특히 윤 선생 같은 한국 사람들은 완전히 봉입니다, 봉!”      

   

창우는 봉이라는 말을 하며 무엇이 재밌는지 내 시선을 피한 채 한참을 웃었다.

나도 그의 말을 들으며 씁쓸한 표정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사람이 봉이라고요? 그것 참 재밌는 말입니다.”      

“이게 다 따지고 보면 한국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겁니다.

한국 관광객들한테는 천 원이 어디 돈입니까.

커피 한잔을 마시고 천 원씩을 주어 버릇하다 보니, 이 사람들도 이제는 한국 사람들한테는 천 원씩 받는걸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단 말입니다.”      


여기까지를 말하던 창우가 이제 그만 출발하자며 먼저 일어났다.

이때 차 방향으로 걸어오던 나를 발견한 배 교수가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최 씨가 어느새 일어났던지 정자나무 아래에서 은하가 준 옥수수를 벌써 두 개째 먹고 있었다.


배 교수는 나를 자기 옆으로 앉으라 하면서 그의 오른쪽 귀를 땅바닥에 갖다 대며 말했다.      

“윤 선생, 여기 앉아서 이 땅의 숨결을 느껴보시오!

고조선부터 자고이래로 이 땅의 주인은 우리 민족이었단 말입니다.

자세히 들어봐요. 우리 민족의 숨소리가 느껴질 테니…”      

배 교수의 다소 엉뚱한 행동일지라도 나에 대한 격의 없는 선의로 생각하고 맞장구를 쳐주고 싶었다.

그의 맞은편에서 땅바닥 위에 무릎 꿇은 모습으로 배 교수처럼 오른쪽 귀를 땅에다 바짝 밀착시키고는 과연 그렇다는 표정을 지어 주었다.


이때 최 씨는 다 먹은 옥수수를 숲 속으로 내던지며 자리에서 일어서던 은하에게 물었다.      

“은하야 옥수수 하나에 얼마씩 받데?”      

은하가 장난기 섞인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최 씨를 돌아봤다.       

“아저씨, 맛이 어떻습니까?

고거이 하나에 한국 돈으로 이천 원씩이나 받는 비싼 금옥수수입니다.”   


 말을 들은 최 씨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벌떡 일어섰다.

날강도도 아니고 옥수수 하나에 어떻게 이천 원씩이나 받느냐며 따지러 가겠다는 걸 내가 제지하며 나섰다.

은하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최 씨에게 다시 말했다.      

“아저씨, 녹차는 맛이 어땠습니까? 고거이 한잔에 천 원입니다.”      

두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고 있던 우린 폭소를 터트렸지만 배 교수는 정색한 표정으로 일어나면서 화난 말투로 말했다.     


“한국 사람들이 순진한 조선족들 다 버려 놓았어.

돈 몇 푼 있다고 천한 마음으로 적선이나 하더니만 꼴좋게 되었단 말일세.

우리 동포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볼썽사납게 되었는가.

동포 간 위하는 마음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으니 에이 몹쓸 사람들.”      

배 교수의 두툼한 검정색 뿔테안경 속으로 비친 눈동자에는 한가득이나 서글픔의 감정들이 서려 있다.

못 볼꼴을 봤다며 빨리 출발하자는 배 교수의 독촉으로 우리는 모두 차에 올랐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 뒤 은하가 뒤를 돌아다보며 아버지의 기분을 풀어주려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아버지가 이해하세요. 얼마나 살기가 고달프면 그러겠어요.

어린애를 등에 업고서 장사하는 모습이 여간 고달파 보이지 않았어요.”      

배 교수는 차창을 통해서 멀어져 가던 그 아낙네를 가엾다는 표정으로 돌아보며 은하의 말에 화답했다.      


“그 아낙네야 무슨 잘못이 있겠나.

내가 화가 나는 건 우리 동포들이 언제부터 서로가 서로를 속여 먹는 관계가 돼버렸냐 말이야,

동포 간에 서로 위하는 마음이라곤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볼 수가 없는 처지가 돼 버렸나 말일세.      

이게 다 값싼 동정이나 베풀면서 같은 동포를 2등 국민 취급하는 천민자본주의 근성 때문이겠지.

이런 못난 마음을 우리 민족이 극복하지 못한다면 고토회복은 고사하고 통일조차도 요원한 일이 되고 말 것이야.

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배 교수의 말이 끝나자 우린 모두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고 분위기는 어색하게 변해갔다.

그때 창우가 테이프 하나를 골라 카오디오에 꽂았다.

어제 북한식당에서 들어 익숙한 경쾌한 음률의 북한음악이 차 안에 울려 퍼졌다.      

   

차를 타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배 교수와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창우가 나를 돕기 위해서 작심한 듯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모든 잘못을 한국 사람들에게만 돌리시는데 아까 아주머니건만 해도 그게 어디 한국 사람들 잘못입니까?

터무니없이 바가지 씌우는 그 아주머니가 잘못되었지.       

그리고 아버지! 수교초창기 일부 한국 사람들이 연변에서 저지른 짓거리들을 생각하시는 모양인데요.

지금은 그런 일 없어요. 제발 생각 좀 바꾸세요!”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이중인격자쯤으로 바라보는 배 교수의 편견을 깨뜨려야만 은하와 나와의 관계도 진전이 있을 것이다.

방금 창우가 한 말은 나를 돕기 위해서 한 말이었지만 창우의 평소 생각이 그렇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자지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최 씨가 끼어들며 말했다.      

“그래 배 교수. 윤 선생 같은 분은 믿음성이 가는 정직한 사람 같은데, 윤 선생 보는 데서 자꾸 그러면 분위기가 이상해지잖아.

인제 마음 풀고 좋은 이야기나 하면서 가자고.”      

자기 말이라면 무조건 편들어 주던 최 씨마저도 거들고 나섰으니 배 교수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최 씨가 은하에게 금옥수수 하나 더 달라고 말하자 차 안은 모처럼만에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윤 선생, 오해 마시오.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니깐.

그렇지만 우리 민족의 중심역할을 해야 하는 건 분명 한국이지 않소.

통일을 주도해야 할 한국 사람들이 돈 좀 있다고 동포를 우습게 알고 동포들 눈에 피눈물이나 흘리게 하는 그런 천한 마음 상태로는 통일을 주도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지금의 북한사람들이 한국주도의 통일에 동의하겠어요?

미국이나 일본 유럽에도 우리 동포들이 많이 있다지만 중국에 사는 우리 조선족들과 러시아에 있는 고려인들 그리고 탈북자들과는 그 대응하는 방식이 다르지 않소이까!   

그래서는 자존심하나로 버티며 살아가는 북한사람들의 동의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지.

한국에서는 동남아에서 돈 벌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과 우리 조선족들을 똑같이 취급한다면서요?

그래서 내가 천민자본주의라고 말하는 겁니다.

동포 귀한 것을 알아야지 어떻게 된 게 매사에 돈으로만 사람을 평가하려고 하니, 그런 것이 천한 마음이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      


배 교수의 말이 끝나자 또다시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모두들 말은 안 했지만 그동안 창우가 무엇 때문에 아버지와 사사건건 대립하는지 알 수 있었던 배 교수의 고집불통에 다들 고개를 내젓는 표정들이다.

 

불현듯 어제 집안유적지를 가면서 배 교수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자국민을 먹일 식량마저 부족한 북한으로서는 다만 버티고 있을 뿐 낡은 체제경쟁은 이미 결론이 난 마당이다.

하지만 세계로부터 고립된 북한이 자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 문제는 그다음의 진행상황이다.

배 교수의 충고는 우리가 천민자본주의의 못난 근성들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한 결코 북의 동포들이 동의하는 평화통일을 주도할 수 없다는 말이다.      

     

“교수님의 충고는 지당하십니다.

재외동포들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개선할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과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 차별적인 인상을 주는 것 자체가 분명히 잘못된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의식 문제인데, 배 과장님 말씀대로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니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만 더 개선되어야 한다는 배 교수님의 말씀에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두 입장을 두루두루 배려하는 나의 중재 덕분인지 차 안의 분위기는 조금 전보다는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로 반전되었다.

마침 휘파람이라는 경쾌한 북한가요가 흘러나오자 모두들 들썩들썩하는 분위기로 바뀌었고 최 씨가 볼륨을 조금 더 올리라고 한다.

테이프가 다 돌아갔는지 카오디오에서 테이프를 꺼내던 창우가 무슨 음악이 듣고 싶은지 은하에게 물었다.

핸드백 속을 뒤지던 은하가 70년대 유행했던 컨츄리음악 테이프를 창우에게 건넸다.

평소 내가 컨츄리 음악을 즐겨 듣는다는 사실을 은하는 잘 알고 있었다.

북경에서 은하와 만날  항상 휴대용 카세트를 갖고 다니면서 컨츄리음악을 듣곤 했었다.


뒷자리에서 혼자 편안히 누워 휘파람까지 불면서 장단을 맞추던 최 씨가 일어나며 점심을 먹고 가자고 하여 창우가 백미러로 최 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 작년에 갔던 그 한정식 집 어떻습디까? 그쪽으로 모실까요?”      

“조선족이 한다던 그 집 말이지? 거기도 좋고 아무 데나 가자고.”       


잠시 후 차는 정원이 잘 가꾸어진 아담한 식당 앞에 도착했다.

최 씨가 화장실을 간다기에 벌써부터 소변을 참고 있었던 나도 함께 따라나섰다가 화장실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만 돌아서고 말았다.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한다는 길거리에 있는 재래식 중국 화장실은 나지막한 칸막이만 있을 뿐 문도 없었고 심지어는 정화조도 없어 오물들이 그대로 하천으로 흘러들었다.


나는 눈치도 없이 하마터면 구역질을 할 뻔했다.      

“선생님, 식당에도 화장실이 있습니다. 거기를 이용하세요.”      

은하였다. 지켜보던 은하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식당 마당에 있는 화장실로 안내했다.

수세식은 아니었으나 다행히 깨끗한 우리네의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같은 재래식이라도 중국과 한국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확인하는 것 같아 새삼 선조들에게 감사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식당 안은 백두산을 여행하러 온 한국인들로 북적거렸다.      

식사가 끝나고 은하가 준비해 준 커피를 받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내가 권하는 국산 담배를 받아 든 창우는 정원에 흐드러지게 피워있는 코스모스를 만지작거리는 은하가 귀엽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윤 선생, 우리 아버지라는 분 알고 보면 참 불쌍한 분이지요.

자신이 무슨 역사적 사명을 타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대학을 박차고 나와서는 저 고생을 하는지 벌써 몇 년 되었죠,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시작되던 해가 한일월드컵을 하던 해였으니까.

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 주도했다지만 동북 3성의 성위원회가 지원을 했으니 사실상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합작품이라고 봐야 합니다.

사실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도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알만큼은 아는 편이오.      

그런데 아버지가 학생들을 선동하며 동북공정의 음모가 어떻다느니 반대운동을 참 많이도 하셨지.

지역신문에도 고구려사 왜곡의 부당성을 알린다며 여러 번 기고도 하지 않았겠소.

조선족 지식인들을 규합해서는 간도 땅 찾기 운동을 벌이자며 선동까지 하고 다녔으니 당에서나 공안에서 가만있었겠어요. 난리가 났지!

하마터면 나까지도 출당조치를 당할 뻔했으니 아버지는 대학에 남아있기가 힘들었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합니다.”     


가슴이 답답하던지 창우는 나에게 담배한대를 더 달라는 시늉을 했다.

“고등학교 때 정말 어렵게 공산당에 입당했더니만, 그날로 아버지가 집을 나가라고 하더군.

그렇게 해서 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집을 나온 후로 우린 정말 거의 원수지간처럼 지냈어요. 그래도 어쩌겠소? 날 낳아준 아버진데.

요즘 들어서는 기력이 빠진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지 않겠소.”      

   

창우가 하는 이야기를 먼발치에서 듣고 있던 은하가 색깔별로 꺾은 코스모스 꽃잎 중에서도 유독 노란색 코스모스를 한번 맡아보라고 내 코 앞으로 바짝 들이밀었다.

나는 코스모스의 향내보다는 오히려 은하의 향기가 더 좋았다.

   

“이젠 오빠가 아버지를 좀 이해해 주세요.

여태 재가도 안 하시고 엄마 없이 우릴 키우시느라 고생도 많이 하셨는데 너무 불쌍하시잖아요.

전 이제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힘들고 고달픈 길이지만 평생을 올곧은 민족사학자로 살아오신 분이지 않습니까?

학자로서의 양심을 지키시기 위해서 고난의 길을 자처하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창우는 나를 바라보며 살며시 웃었고 그 웃음은 동생이 대견하다는 의미였다.

“그래 오빠는 다른 욕심은 없어. 단지 우리 식구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거지.

아버지도 이젠 힘든 길을 그만 가셨으면 좋겠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우리 은하가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이야. 윤 선생, 내 말 알겠죠?”      


어느새 지긋지긋하던 비포장도로도 끝이 났다.

이제 광활한 벌판을 시원하게 가로지른 국도 위를 창우의 4륜구동 자동차는 거침없이 내달렸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무료하게 달려가는 것 같아 배 교수의 말벗이나 되어줄 겸 고개를 돌렸다.       

“교수님, 고구려를 계승하고 있다는 북한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하여 침묵하는 것은 대체 무슨 사정이겠습니까?”      

 

말벗을 자청하는 나에게 배 교수가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정이라면, 오늘날의 북한 사정으로 볼 때 고구려사 왜곡문제를 거론할 만큼의 여유가 없다고 봐야겠지.

내부의 경제적인 사정으로 보아도 그렇고, 국방상의 사정으로 보아도 그렇고, 모든 것이 역사문제를 거론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이야기 아니겠어요?      

일전에 내가 잘 아는 북한 학자가 연변대학에 세미나 차 왔을 때,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 북한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그렇잖아도 한국학자들과 협의를 했다는 거야.

독도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이 좀 세게 나가줄 테니 중국한테는 한국이 도맡아서 대응을 해달라고.

무슨 말인가 하면 북한도 중국의 의도를 다 알고 있다는 거예요.

다 알면서도 대놓고 대응을 못하는 그들의 속사정을 달리 표현한 말이지 않겠어요?”      

   

이 말을 듣고 있던 창우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북한의 생명줄을 틀어쥐고 있는 건 중국이라고 봐야 됩니다.

식량도 식량이지만 원유공급만 중단시켜 버리면 북한은 그야말로 암흑천지가 돼버린단 말입니다.

흑룡강성 대경유전에서 출발한 대북송유관이 평안북도 봉화화학공장까지 모두 지하로 매설돼 있지요.         

이 송유관을 통해서 북한에서 사용되는 원유의 90퍼센트를 중국이 무상으로 공급한단 말입니다,

이것만 중단시켜 버리면 모든 게 올 스톱이지요.

탱크는 석유 없이 움직여집니까?

북한 내 산업시설의 가동률이 현재도 30퍼센트 밖에 안 되는 실정인데 그마저도 모두 멈추어야 한단 말입니다.      

전에 대포동미사일 사건이 터졌을 때, 원유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에 갑자기 문제가 생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평소의 절반 이하로 원유공급이 줄어들었지요,

그런 일들이 우연처럼 보이지만 천만에요!

누가 목숨 줄을 틀어쥐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던 겁니다.

이런 형편에 북한이 중국을 상대로 역사논쟁을 벌여요?

어림반 푸릇 치도 없는 소리죠. 북한의 사정이 그렇게 한가롭지가 않습니다.”    


북한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창우의 말이었으니 모두는 고개를 끄득였다. 

대북 무역사업을 관장하는 실무책임자다 보니 한 달에 한두 번은 북한으로 들어가고 자연히 친분이 두터운 북쪽의 고위층 인사들도 여럿 있었다.

이러한 자신의 직무 때문인지 그는 동북공정과 관련된 문제라던가, 예민한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지만 부득이 발언할 때도 언제나 중국당국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의 말씀 중에는 발해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북방사에 대해서는 오히려 북한이 주도한 측면이 많다고 하셨는데요,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북방사에서 찾으려는 이유도 그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배 교수가 차창으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흐트러진 머리를 바로하며 내 질문에 답했다.      

“6, 70년대에 북한은 고조선과 고구려를 계승했다면서 정권의 정통성을 주장했지요.

이렇게 되니까 당시 한국은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를 강조하면서 거기서 통일의 기백을 찾으려고 했단 말입니다.

자연히 한국에서는 우리 민족의 북방사를 소홀히 다루게 되었고, 사대주의와 친일잔재의 산물인 반도사관으로 그 역사관이 축소되어 갔던 거라고 봅니다.      

94년 당시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시절이었지 않았습니까?

북한은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인민들이 굶어 죽던 그 시절에도 단군릉을 완성했어요.

그만큼 그들은 정권의 정통성을 우리 민족의 북방사에서 찾으려고 노력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전번 한일 월드컵 때 보니까 요즘 한국청년들의 기상도 대단합디다.

붉은 악마 응원단이 치우천왕(蚩尤天王)을 자신들의 상징물로 들고 나온 걸 봤는데 그 기상이 훌륭하잖아요?     

난 그때 눈물이 핑 돌더구먼. 얼마나 대견스러운 일이야.”      


창우는 웬만한 신호등은 아예 무시하면서 차를 몰았다.

계기판의 속도계는 시속 150킬로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달려오기를 두어 시간, 드디어 길림성 백산시에 들어섰다는 안내 표지판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백산시에서 1박을 하고 내일 아침에 백두산을 올라갑니다.

작년에 왔던 그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창우가 작년에 왔던 그 호텔로 모시겠다고 하자 최 씨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작년에 왔던 그 호텔 말이지? 좋지, 좋고말고!

참, 은하는 처음 가보겠구나. 배 교수! 우리 오래간만에 백두산 도라지주 한잔하자고.”      

최 씨는 벌써부터 신이 난 어린아이마냥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창우가 아버지와 최 씨를 모시고 작년에도 백두산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중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 간에도 신구세대의 갈등상이야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창우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극진한 그 무엇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방에 장백산이라는 큰 팻말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부터 백두산으로 들어서는 길인 모양이다.

우거진 숲 뒤로 계곡물이 흐르는 경관 좋은 자리마다 여기저기 호텔들이 들어서 있었다.

차는 다소 한적한 자리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호텔 앞마당에 정차했다.    


개량한복 차림에 콧수염이 잘 어울리는  중년의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창우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뒤따라서 내리는 배 교수와 최 씨에게 허리를 깊숙이 구부리며 인사하는 말투에서 간간히 일본 억양이 섞여 있었지만 우리 동포가 틀림없어 보였다.    

  

창우는 이 사람에게 나와 은하를 소개했다.      

“이 사장님! 이쪽은 내 동생 은하, 그리고 여기는 한국에서 연구원으로 계시는 윤 선생입니다.

이분은 이 호텔의 주인이신데 조총련계열의 우리 동포 사업가이십니다.

나와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로서 이곳에 올 때마다 이 사장님의 신세를 많이 지고 있습니다. 자, 인사하세요.”      

그러자 이 사장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허리를 깊숙이 구부리며 악수를 청한 후 창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배 과장님, 신세라뇨? 신세는 오히려 제 쪽에서 지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두 분, 반갑습니다. 저는 이정태라고 합니다.

편하게 지내다 가십시오. 우선 안으로 드셔서 여장부터 푸시지요.”      


그의 안내로 2층 객실로 올라갔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최고의 성수기라 할 수 있는 가을의 주말이지만 호털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좌측으로 나란히 붙은 객실 세 개를 비워두었다.      

“윤 선생, 피곤하실 텐데 샤워부터 하시죠.”      

“아닙니다. 전 자기 전에 씻을 테니까 배 과장님부터 먼저 씻으세요.”      

“그러시겠어요? 그럼 주변경치가 일품이니 은하와 같이 산책이나 다녀오세요.

여섯 시경에 식사가 준비될 테니 그때까지만 오시면 됩니다.

참 단단히 챙겨 입고 나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창우의 권유가 없었더라도 백두산주변의 경치도 구경할 겸 산책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은하와 함께 다녀오라는 창우의 배려까지 있어 벌써부터 기분이 들뜨기 시작한다.

난 처음부터 간편한 등산복차림이었으므로 그냥 나오려다가 단단히 챙겨 입으라는 창우의 말에 혹시 몰라서 준비해 온 겨울외투까지 끼어 입었다.

나오면서 은하를 부르고 싶었지만 배 교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로서는 아쉽지만 혼자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부터가 백두산이란 말인가!

우거진 숲길을 따라서 천천히 걷다 보니 그야말로 대자연의 온갖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무소리, 새소리, 다람쥐소리,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백두산이 살아 숨 쉬는 장엄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색찬란한 천연색깔로 치장한 가을 백두산자락의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황홀한 감동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가슴이 벅차고 눈이 부시어서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이때 익숙한 향기가 다가왔다. 흙의 향기, 나무의 향기, 산의 향기, 그리고 또 다른 향기?

평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그녀의 향기가 서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혼자 걸으시니 재미가 있으십니까?”      

날 따라잡느라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던 모양이다.

은하의 콧잔등에는 몇 방울의 땀이 배어있고 얼굴에는 볼그스레한 홍조까지 피어 있다.


은하를 생각하고 있었지. 은하 생각하며 걸으니 재미가 있네.”      

“농담도 잘하십니다. 오빠가 가보라고 일러주어서 여기로 와 봤습니다.

걸어가시는 모습이 영락없는 선생님 모습이어서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고, 은하도 머리를 내 어깨에 살며시 기댄 채 따라 걸었다.  


위에 있는 저 계곡이 유명한 장백폭포입니다.”      

족히 1킬로는 더 가야 할 곳인데도 그곳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우렁찬 물소리가 나의 귓전을 때리기 시작했다.

“은하 오빠가 우리 사이를 많이 도와줘서 정말 다행이야,

오빠마저 우리 사이를 반대했다면, 정말이지 난감할 뻔했는데.”     


홍조 뛴 볼에 싱그러운 표정까지 더한 은하가 수줍게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가 선생님을 잘 보신 것 같습니다. 사회활동을 폭넓게 하다 보니 대인관계도 풍부하고,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세상 물정에도 밝아서인지 사람 보는 안목과 판단력이 빠른 편입니다.

사실은 제가 연변을 떠나 북경으로 가게 된 것도 넓은 세상에서 살아보라는 오빠의 권유가 컸었습니다.      

관광회사도 오빠가 주선해 주었고, 북경생활을 하면서도 편리를 많이 봐주었습니다,

오빠는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에 제가 뚜렷한 미래도 없이 그냥 그냥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기 연변에서는 제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오빠는 판단한 것 같습니다.”      


드문드문 우리를 앞질러가는 관광객들이 있었지만 늦은 시간 때문인지 내려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아직도 폭포는 저 멀리 있었지만 폭포수에서 튕겨 나오는 물방울이 날아와 은하의 얼굴에 한두 방울 묻었다.

그것이 재미있는지 은하는 두 팔을 하늘로 뻗으며 폭포수에서 튕겨 나오는 물방울을 온몸으로 맞이했다.

마치 아버지의 높디높은 벽으로 쌓인 근심을 털어내려는 듯 두 팔을 벌린 채 스스로 폭포수를 맞이하기 위해 달려갔다.  


마침내 목적지에 다 달았을 때 옷을 흠뻑 적실정도로 장백폭포의 위력은 대단했다.

폭포수 주변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장엄한 광경 앞에서 탄성을 자아냈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장백폭포라 부르지만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비룡폭포라 부르기도 했고, 천지폭포, 백두폭포로도 불렀던 바로 그 폭포다.


어느덧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폭포수 주변의 그 많던 사람들도 하나 둘 빠져나가고 이젠 우리 둘만 남게 되었다.

나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만지다가 돌연 와락 끌어안았다.

이제 내 귀에는 폭포수의 우렁찬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은하의 심장소리만이 가슴을 타고 전달될 뿐이다.

내 품에 안긴 은하도 내 허리를 감싸며 더욱 힘을 주었고 어느 사이에 우린 그렇게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 가슴에 파묻힌 그녀의 얼굴에서 뜨거운 감촉이 느껴진다.

굳이 물어보지 않더라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행복한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리라.

내가 사랑하는 여인은 날 참 많이 사랑한다는 고백을 이렇듯 고루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보다도 보폭을 넓게 했다.

은하와 내가 식사시간에 나란히 늦게 나타난 것을 배 교수가 보게 된다면 아무래도 자리가 어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텔 마당에는 투숙객들을 위한 통돼지 바비큐가 준비되고 있었다.

다행히 창우만 자리를 잡고 앉아 있을 뿐 배 교수와 최 씨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종업원들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하던 이 사장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처음 볼 때와 마찬가지로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인사했다.        

“윤 선생님, 은하 씨, 어서 오십시오. 산책 다녀오시는 모양입니다.  

여기로 앉으세요. 어떻게 주변의 경치는 둘러보셨습니까?”      

“예, 천지폭포를 구경하고 왔습니다. 정말 대단한 장관이더군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창우가 특유의 미소 뛴 얼굴로 짓궂게 은하를 놀려댔다.      

“그래 데이트는 잘하셨소? 오호라, 우리 은하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보니 어디서 뽀뽀라도 하고 온 모양이네.”

“오빠, 남들이 듣겠습니다. 무슨 그런 망측한 농담을 다하십니까?

우린 그저 폭포만 구경하고 왔습니다.”         

창우의 넉살 좋은 농담에 은하가 과민반응을 일으키자 창우는 더 큰 소리로 웃으며 놀려댔다.      


“역시 온천수는 백두산 온천수가 최고야!

창우야, 뭣이 그리 재미있네? 혼자만 웃지 말고 말 좀 해보라우”      

때마침 최 씨가 목에 수건을 걸친 채 다가오면서 큰소리로 웃는 이야기를 말해달라고 졸라댔다.     

창우는 최 씨를 바라보며 불에 달구어져서 기름을 뚝뚝 흘리며 돌아가는 통돼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하하, 아저씨. 저 통돼지의 얼굴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자세히 보세요.”      

“뭐가? 난 모르겠는데…”      

   

그러자 창우는 한바탕 더 신나게 소리 내어 웃었다.

최 씨는 표정 없이 달구어진 통돼지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재미있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 사장이 창우를 따라서 웃자, 은하와 나도 창우의 재치에 고마워하며 함께 웃었다.      

이때, 배 교수도 온천을 했던지 뽀얗게 둔갑된 얼굴로 최 씨 옆자리로 다가왔다.


종업원들이 완두콩이 섞인 밥 한 대접에 시래깃국, 깍두기, 김치, 양파와 반찬들을 가져와 가지런히 세팅하기 시작했다.

이 사장이 직접 통돼지바비큐의 뒷다리부위를 테이블 위에서 자르고 있었을 때 최 씨가 이 사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이 사장님, 작년에 먹던 백두산 도라지 주 있지요? 고거 한병 부탁합니다.

셋이 먹다 둘이 죽어도 모를 도라지 주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았다우.”      

차 안에서부터 노래를 부르며 찾던 그 술을 최 씨가 입맛을 다셔가며 간사스러운 말투로 주문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던지 모두의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네, 밤새 드셔도 될 만큼 많이 담아놓았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최 씨가 그토록 찾는 도라지 주가 도대체 무슨 맛인지 은근히 기대하게 되었을 때 창우가 부연설명을 자청했다.      

“윤 선생, 이 집의 도라지 주가 특별한 것은 백두산에서 직접 캔 자연산 도라지로 술을 담는데 말입니다,

한 일 년쯤 묵혀서 귀한 손님들한테만 내놓지요. 다른 집에서는 이 집 술맛을 감히 흉내도 못 내요.

최 씨 아저씨가 작년에 한번 맛을 보고는 껌뻑 가셨지요. 통돼지 바비큐하고는 한마디로 찰떡궁합입니다.

돼지고기하고 같이 마시면 아무리 마셔도 다음날 머리 아픈 게 없어요. 좀 있다가 우리도 한잔합시다. 맛이 죽여요, 죽여!”      


고기를 다 쓴 이 사장이 잠시 후 주방을 다녀오더니 큰 술병 하나를 가지고 왔다.      

“자 백두산 도라지 주가 왔습니다. 우리 집에 오신 귀한 손님들이시니 제가 한잔씩 따라드리죠.

배 교수님부터 그리고 최 씨 아저씨, 다음은 한국에서 오신 윤 선생님,

그리고 존경하는 우리 배 과장님, 그리고 ~ 또 아름다운 은하 씨도 한잔하시고요.”      

   

이 사장이 은하 이야기를 할 때는 나를 흘긋흘긋 바라보면서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마도 나와 은하 사이를 약혼자 정도로 오해하는 눈치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따르는 도라지 주는 소주 댓 병 크기의 투명한 유리항아리에 담긴 술이었다.

그 안에는 엄청나게 큰 백도라지 서너 뿌리가 마치 인삼인 냥 도도한 자태를 뽐내며 들어앉아 있었다.       

   

이 사장의 제의로 모두는 잔을 부딪쳤다.

단숨에 한잔을 들이켜 진한 도라지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면서 은은한 깊은 맛이 몸속으로 퍼져나갔다.      

단 한잔만으로도 아무 데서나 맛볼 수 없는 귀한 술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산삼도 인삼도 아닌 도라지로 이토록 깊은 맛을 우려내는 술을 만들 수 있다는 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에는 잘려나간 엄지손톱 모양의 초승달만 저 홀로 외로이 떠있어 자욱이 깔린 어둠을 감당하기가 벅차보였다.

하지만 마당 여기저기 둥근 공 모양의 흰색가로등이 주변을 밝히고 있어 초승달의 부족분을 능히 감당했고, 두 빛의 조화로운 어울림으로 삼삼오오 통돼지바비큐를 즐기는데 그 운치를 더하고 있다.

그런데 어디를 둘러봐도 중국산 맥주 아니면 포도주만 보일뿐, 백두산 도라지주는 우리 테이블 말고는 없었다.     


주변정리를 끝낸 이 사장이 이제 막 구운 돼지고기 한 접시를 더 내어 왔다.      

“배 과장님, 오늘은 저도 한잔해야겠습니다.”      

창우가 이 사장을 자신의 옆자리로 앉으라고 하면서 말했다.      

“그래요 이 사장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자 한잔 받으시죠.”      

창우가 따러준 술잔을 단번에 비웠던 이 사장이 이번에는 최 씨가 따러준 술잔마저도 다 비웠다.

그런 후, 뭔가 고민이 있는 듯 심각한 표정으로 창우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 고민을 털어놓을 태세다.   


한참을 망설이던 이 사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우리 호텔을 포함하여 북문 쪽의 호텔을 대상으로 장백산보호개발구 관리위원회에서 철거통지문을 보내왔습니다.

계약기간도 아직 32년이나 남았는데 뜬금없이 나가라고 하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연말까지 자진철거를 하지 않을 경우 철거비고 뭐고 한 푼도 없이 강제철거를 시키겠다고 하니…

협상도 한 번 없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니 도대체 무슨 협박을 당하는 기분입니다.”      


창우가 이 사장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도 알고는 있습니다만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백두산의 관리권한이 조선족 자치주에서 길림성으로 이관되었기 때문에 제가 특별히 도와드리기도 그렇고….

어쨌든 이 문제는 나중에 저하고 따로 조용히 얘기하도록 합시다.

사실은 저도 이사장님과 협의할 내용도 있고 하니 말입니다.”      

   

창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최 씨는 이게 무슨 소리냐며 특유의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다.      

“장사가 좀 될 만하니까 중국 사람들이 직접 운영할 욕심이 생긴 게 아니네?

이 사장! 절대로 만만하게 물러서면 안 됩니다.

나중에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일단은 무조건 못 나간다 하고 세게 나가야 됩니다!

그래야 나중에 보상이라도 충분히 받을 것 아닙니까?”      

배 교수의 헛기침 한 번으로 최 씨의 호들갑은 일단 진정되었다. 배 교수의 제지가 없었더라면 최 씨의 호들갑은 한동안 계속되었을 것이다.


이 사장이 이번에는 맥이 풀려버린 표정으로 최 씨를 바라봤다.      

“예, 지금까지 투자한 비용에 대한 보상은 해주겠다고 합니다만, 백두산을 세계자연문화유산에 등재하겠다는 것과 우리 호텔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저희들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서문 쪽이나 남문 쪽의 호텔은 그대로 놔두고 북문 쪽의 호텔만 철거를 하겠다고 하니 더욱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말을 마친 후에도 이 사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길림성 정부의 처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 씨가 또 나서려 했지만 이번에도 배 교수의 헛기침이 위력을 발휘했다.  


술잔을 만지작거리던 창우가 단 번에 술잔을 비운 후 이 사장의 말을 받았다.       

“길림성 정부의 목적은 백두산을 친환경적으로 개발하여 유네스코에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것입니다만 이 사장님으로선 참으로 답답하시겠습니다.

그동안 고생고생하시다가 이제야 자리를 잡을 만한데 말입니다.”      

창우는 길림성의 분명한 의도와 향후의 계획까지도 알고 있는 듯했지만 그 또한 길림성 조선족 자치주의 고위공무원으로서 길림성이 내세운 명분 이상의 말은 할 수 없는 듯했다.      


이때 잠자코 듣고만 있던 배 교수가 도저히 한마디 안 하고는 안 되겠던지 화난 표정으로 두꺼운 검정색뿔테안경을 벗었다.      

“뻔한 의도를 가지고 무슨 말들이 그리도 많아!

친환경개발이니 세계자연문화유산이니 쇼들을 하고 있으면 그 좀스런 발상을 우리가 모를 것 같아?”      

   

창우가 배 교수를 정색한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아버지! 또 뭐가 뻔한 의도라는 겁니까? 제발 잘 모르시면서 함부로 말씀 좀 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말씀하실 때마다 제가 가슴이 벌렁거려 아주 죽을 맛이란 말입니다!”      

   

창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배 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면서 고함을 질렀다.

삽시간에 얼굴색이 새하얗게 변해버린 은하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서 쳐다보고 있다.       

   

“뭣이 어쩌고 어째? 내가 쥐뿔도 모른다고! 그래 이놈아! 너 말 한번 잘했다.

이 사장! 여기 북문일대에서 호텔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모두 우리 동포들 아닙니까?”      

이 사장은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살벌하게 변해버렸다고 자책을 하는지 몸 둘 바를 몰라하며 배 교수의 질문에 겨우겨우 대답했다.      

“네, 네. 맞습니다. 모두가 따지고 보면 우리 조선동포들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철거통지를 받은 다섯 개의 호텔 중 네 개는 한국 분들이 운영하고 있고, 그리고 하나는 제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 일대의 호텔들은 몇 해 전만 하더라도 한국관광객이 손님의 대부분이었으니까요.

조선 사람들 말고는 호텔을 운영할 엄두를 못 냈습니다.

요 몇 년 사이 중국관광객이 많이 늘기는 했습니다만…”      


배 교수가 다시 책상을 내리치며 창우를 노려봤다.      

“그러니까 내가 이 작자들 하는 짓이 좀스럽다는 겁니다.

백산시 홈페이지에 백두산개발에 대한 목적을 뭐라고 해놨는지 아십니까?

고조선 고구려 발해문제와 간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버젓이 적어놓았어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정치적인 음모가 있다는 겁니다.      

황산만 해도 1990년 유네스코에 등재가 됐어요. 그런데 황산 맨 꼭대기에 버젓이 호텔이 서있어요.

세계자연문화유산하고 호텔 하고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겁니다.

이 사장!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똑바로 잘 들으세요!

이 작자들의 의도가 뭐냐고 하면, 한마디로 백두산에서 우리 민족의 흔적을 지워버리겠다는 겁니다.

이것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서 백두산공정을 하겠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조선인들이 운영하는 호텔을 없애버리겠다는 저의를 숨기고 있다 겁니.”      


배 교수와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는지 의식적으로 이 사장만을 바라보며 창우가 또 나섰다.      

“이 사장님!, 동북공정이니 정치적 음모가 어떠니 하는 우리 아버지 이야기는 정말이지 새겨들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야기고요.

아무렴 길림성 정부에서 그런 의도를 가지고 이러겠습니까?      

관리위원회에서 보낸 통지문 그대로입니다.

백두산을 친환경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곳 호텔들을 부득이 철거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아버지! 내용도 잘 모르시면서 과격한 말씀을 함부로 하시고 그러십니까!

남들도 있는 자리니만큼 오늘은 제발 그만 좀 하세요!”      


늘 있어왔던 부자지간의 대립이 또다시 등장하자 은하가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창우에게 그만하라는 눈짓을 보냈지만 창우도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배 교수는 창우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노려본 후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 사장!, 내가 보기에 이것은 틀림없는 음모가 분명합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우리 동포들이 운영하는 북문 쪽은 싹 밀어서 친환경적으로 개발한다고 하면서 지금 서문 쪽에는 창바이 공항을 만들고 있어요.

호텔뿐만 아니라 관광산업에 필요한 각종 인프라 시설들이 엄청나게 건립되고 있단 말입니다.      

남문 쪽은 또 어떻습니까?

국제규모의 스키장들이 들어서고 있지 않습니까?

서문과 남문 쪽을 개발해서 백두산을 최고급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철저하게 장백산으로 바꾸겠다는 거예요.

우리 민족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리겠다는 정치적인 음모가 있다 이 말입니다!

조선족 자치주에서 백두산을 관리할 때는 길거리며 상점이며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 한글이 있었어요.

그런데 중국정부가 직접 관할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백두산 일대에서 우리 한글이 모조리 사라졌지 않습니까?”     

배 교수는 울분을 참지 못하겠던지 술잔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그 기세가 어찌나 험악하던지 창우마저도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창바이 공항이 생겨보세요? 

연길에서는 다섯 시간 이상이 걸리던 것이 삼삽분이면 여기를 올 수 있단 말입니다.

앞으로 누가 연길을 거쳐서 백두산을 가려고 하겠습니까?

백두산관광 산업이 우리 조선족 자치주의 6대 산업 중 하나인데 이렇게 되면 연길시의 경기도 말이 아닐 겁니다.

어디 공항뿐입니까? 중국 각지와 연결되는 철도, 고속도로까지 만들고 있어요.

바이허 역 공사장에 가보세요?

칭창철도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일류철도를 만들자는 현수막이 버젓이 걸려있어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티베트를 중국화 했듯이 우리 민족의  백두산을 중국의 장백산으로 만들겠다는 노골적인 의도가 아니냐 말입니다.

지금 중국은 백두산과 우리 민족의 연관성을 철저하게 없애고 있어요.

바로 이것이 중국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백두산공정이에요.

백두산에서 우리 민족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리겠다는 정치적인 음모가 숨어있다 이 말입니다.

창우 저 자식은 분명히 알고 있겠지만 말입니다.”      


배 교수가 열변을 토로하는 동안 창우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배 교수의 이야기가 끝날 즈음 자리에 돌아와 앉으면서도 아버지와는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최 씨가 술이 꽤 올랐던지 두 손을 턱에 기댄 채 배 교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배 교수!, 중국 애들이 고구려가 지들 역사라고 우긴다며?

왜 우리 조상을 자기네들 조상이라고 우겨? 지들이 제사도 안 지내 주면서.”      

최 씨의 말투가 어찌나 재미가 있던지 모두는 소리 내어 웃었다.


만약에 중국이 고구려를 한국사라고 인정해 버리 통일 이후 문제가 발생한단 말이야,

간도 땅에 대한 영토분쟁이 일어났을 때, 간도 땅의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하는 데 있어 통일한국의 논리에 밀리게 돼있지.      

그래서 중국은 정치논리에 의해서 간단명료하게 가기로 결정했던 것이야.

한마디로 오늘날의 중국 국경 안에서 벌어졌던 모든 이민족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억지논리를 만들어 냈던 거야.

티베트도, 위구르도 자고이래로 중국과는 떨어질 수 없는 중국의 소수민족이었기 때문에 중국의 역사라고 우기듯이, 마찬가지의 논리로 동북삼성지역을 주 무대로 활동했던 고조선 고구려 발해도 한반도와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말이야.      

오늘날의 한반도는 신라와 백제를 계승한 고려 조선으로 이어졌을 뿐, 고구려와는 역사적으로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억지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지.

이 얼마나 소름 끼치는 억지 논리냐  말이!”      


최 씨가 고기 한 점을 씹어가면서 큰소리로 떠들며 말했다.      

그럼 간도만이 문제가 아니잖아.

고구려가 몽땅 거리 지들  땅이라면 나중에는 북조선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 아니네?”  

자칫하면 간도 땅을 되찾기는커녕 북조선까지도 다 빼앗기는 것 아니네?

그 동북공정이라는 놈이 보통 고약한 놈이 아닐세 그려.”     


“바로 그것이야! 바로 거기에 동북공정의 제3단계 목적이 숨어있다고 봐야 돼.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으니 우리 조선 사람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데,

오늘날의 북한은 인민들 끼니도 제대로 못 먹이는 꼬락서니를 해서는 저 모양 저 꼴이고, 한국은 아직도 동북공정을 한가로운 역사논쟁쯤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닌가 말이야.”     


이 사장이 마지막 남은 고기를 백김치 한 접시와 함께 들고 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배 교수가 자리에 앉는 이 사장에게 마음고생이 많겠다며 연민의 표정으로 바라봤다.      

“힘드시겠지만 여기서 물러나시면 안 됩니다. 이겨내셔야 합니다!.

이 사장이 백기를 든다면 동위토문 서위압록이 다 무너지게 됩니다.

숙종임금 38년 때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삼는다는 백두산정계비를 우리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명운이 걸린 문제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민족의 고토는 영원히 잃어버릴 수 있단 말입니다.

그렇잖아도 중국은 그전부터 토문강을 두만강의 만주식 이름이라고 하면서 억지를 부렸거든.

그런데 부릴 억지가 따로 있지 토문강과 두만강은 엄연히 다른 강으로서 명나라 때의 요동지에도 나와 있고,

이건 중국 사람들이 봐도 도무지 말이 안 된단 말이지.      

그러니 백두산을 세계자연문화유산에 등재한다는 명목으로 이번 참에 송화강으로 흘러가는 토문강의 지류를 두만강으로 돌려버리던지, 그도 저도 아니면 아예 토문강의 흔적을 지워버리겠다는 무서운 의도가 있는 겁니다.

이런 엄청난 음모가 숨어있기 때문에 백두산일대에서 호텔사업을 하고 있는 우리 동포들을 축출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사장!, 속지 마세요. 친환경개발이니 하는 말은 모두 허울 좋은 명목에 불과한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백두산과 우리 민족 간의 모든 연관성을 지워버리겠다는 의도입니다.      

두고 보시오! 친환경 개발이니 하며 여기 호텔들을 모조리 부수고 나서는 나중에 슬며시 다시 짓나 안 짓나.

그때는 아마 모조리 중국 사람들이 운영하게 될 겁니다. 

중국 사람들이 인제 좀 먹고살만하니 여기 북문을 이용하여 백두산을 관광하는 중국인들도 늘어났고, 그래서 직접 호텔을 운영해도 되겠다는 자신감도 생겼을 거예요.”      


창우는 배 교수의 말을 도저히 못 듣고 있겠다는 표정이다.

“이 사장님! 지금 우리 아버지는 완전히 소설을 쓰고 있어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완전한 오버 픽션이니까 새겨들을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귀담아듣지 마십시오!

걱정은 되시겠지만 어쨌든 우리 아버지가 생각하는 그런 의도로 진행되는 일은 아니니까 다른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이 문제는 나중에 나하고 따로 조용히 얘기합시다.”      

  

이제 그만 마칠 때가 되었는지 종업원들이 주변을 정리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일 즈음 우리도 하나둘 자리를 파하고 객실로 올라왔다.      

객실 창밖은 옥외 조명등 하나만이 창우와 이 사장의 주변을 밝히고 있었고, 이들이 나누는 긴밀한 대화를 단풍으로 물든 늙은 나무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엿듣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부터 그들이 나누게 되는 긴밀한 이야기는 여기로 출장 온 창우의 진짜 목적이 아닌가 싶다.    


백두산 온천물이 펄펄 쏟아지는 욕조에 한참 동안 몸을 맡기고 있으니 그간의 피로가 물밀듯이 씻겨 나갔다.

뽀송뽀송한 침대시트 위에 지친 몸을 누인 후 옆방에서 자고 있을 은하를 생각해 보았다.

별안간 천지폭포에서 포옹했던 그 감촉이 느껴진다. 그렇게 행복한 느낌으로 어느새 백두산의 따듯한 품속에 안겨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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