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에서 울리는 감미로운 컨츄리 음악소리에 눈을 떴다. 서 교수님의 전화였다.
창틈으로 비치는 눈부신 햇살이 새로운 아침을 알리고 있었다.
“예, 교수님. 윤준노입니다. 잘 계셨습니까!”
“그래 자료 수집은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네.
끼니는 거르지 않고 있나? 타지에 나가서는 먹는 것만큼은 잘 챙겨서 먹어야 하네.”
“교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전화드려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경황이 없었습니다.”
“죄송은 무슨… 그건 그렇고 자료 수집은 어떤 방향으로 하고 있나?
영사관의 도움을 받기로 한 걸로 아는데…”
“교수님, 사실은 이곳에서 우리 동포 향토사학자 한 분을 만나게 되어서 그분으로부터 도움을 받을까 합니다. 영사관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거 잘됐네. 안 그래도 자네가 영사관에서 짜주는 일정표대로 고지식하게 움직일까 봐 난 그게 걱정이 돼서 전화했던 참일세.
영사관이라는 데가 걸핏하면 외교적 관례나 운운하면서 도통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고지식한 데라서 말이야.
자네같이 융통성 없는 사람은 제대로 된 도움을 받기가 힘들 거야.
아무튼 거기서 일은 자네가 잘 알아서 하고, 건강하게 잘 있다가 돌아오시게. 돌아오면 내가 술 한 잔 삼세.”
“고맙습니다, 교수님. 돌아가서 뵙겠습니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삼일째다.
온통 머릿속에는 은하 생각으로 가득하다 보니 자료 수집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오늘은 대표적인 고구려유적지인 집안시를 둘러보기로 은하와 약속되었다.
내일과 모래는 은하가족과 함께 백두산 일정이 잡혀있고, 백두산을 다녀온 다음날은 북한접경지역인 압록강과 두만강변의 단동과 삼합일대를 둘러볼 계획이다.
당초의 일정표대로 움직였다면 사실은 어제 국내성이 있는 집안시를 둘러보았어야 했다.
하루를 빼먹었으니 오늘 하루는 그만큼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시간을 보니 벌써 아침 아홉 시가 가까워졌다.
서둘러서 카메라와 간단한 필기도구만을 챙긴 후 호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은하에게 연락했다.
배 교수도 모시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버지께 여쭈어 달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아침식사도 같이 할 겸 사무실로 들려 달라고 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해 보니 최 씨가 방금 전에 사무실 바닥 청소를 했던지 밀대를 옆에 세워둔 채 신문을 읽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반색하는 표정으로 반갑게 맞이한다.
“어서 오시오, 윤 선생. 아직 식사 안 했죠? 방으로 들어갑시다.”
미리 차려진 밥상에는 반찬과 수저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은하가 부엌에서 방금 지은 밥과 된장국을 쟁반에 담아 왔다.
이렇게 해서 오늘 처음으로 은하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게 되었다.
“윤 선생. 찬은 부족하오만 많이 드시오. 우리 은하가 애 엄마를 닮아서 음식솜씨는 정갈한 편이오.”
굽고 있던 생선이 다 익었던지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조기사촌쯤 되어 보이는 생선구이를 한 접시 들고 오면서 은하가 하는 말이다.
“미처 준비를 못해서 찬은 부족하지만 많이 드십시오. 선생님께서 오실 줄 알았으면 장을 좀 봐 두는 건데…”
앞치마를 두른 모습으로 얌전히 무릎 굻은 채 은하가 수줍게 얘기할 때, 난 매일 아침 은하가 차려주는 아침 밥상을 상상해 보았다.
생각만 해도 행복한 감정이 물밀듯 몰려왔다.
“이만하면 아침 식사로는 아주 훌륭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배 교수의 말대로 은하가 차려준 음식은 내입에도 잘 맞았다.
정갈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부산에 있을 때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 오늘 집안시에 가보실 생각이시라고요?”
“예. 교수님을 모시고 함께 다녀왔으면 합니다. 어떻게 시간이 되시겠습니까?”
배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락의 뜻을 표시했다.
“집안시야 여기서 멀지도 않으니 함께 가 드리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오만, 내가 따라가서 괜스레 성가시지나 않을지 모르겠소?”
식사를 다 마친 배 교수의 밥그릇에 은하가 숭늉을 담아주었다.
숭늉으로 입안을 씻는지 요란하게 숭늉을 마신 배 교수가 인사치레로 건네는 말이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제 교수님께서 제게 들려주신 말씀들은 저의 보고서 작성에도 귀중한 자료로 쓰일 겁니다.
오늘부터 며칠 동안 교수님의 고견을 듣고 싶으니 바쁘시더라도 동행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내일과 모레는 배 과장님이 교수님 모시고 백두산을 방문할 계획이시라고 하던데 저도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최 씨도 식사를 마치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숭늉을 마셔댔다.
그 옛날 우리 할아버지들이 그러셨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숭늉을 다 마신 최 씨가 거드는 말을 하려는지 끼어들었다.
“배 교수 그리하소. 유적지 방문이야 우리 배 교수가 안내를 해드려야지. 그 분야에선 최고의 전문가 아니요.
은하야 내일 백두산 갈 때는 나도 같이 가는 거다. 창우도 그러라고 하지?”
최 씨가 은하를 돌아보며 말할 때는 당연히 함께 간다는 듯이 말했고, 은하도 그렇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예, 아저씨. 오빠가 아저씨도 꼭 모시고 간 됐습니다.”
“허허허, 오랜만에 도라지 주 한잔 하게 생겼네. 그 맛이 기가 막히거든. 생각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네.”
걸걸하면서도 맛깔나게 말하는 최 씨의 입담은 영락없이 인심 후한 우리 고향마을의 시골 아저씨를 닮아 있었다.
창우의 말에 의하면 며칠 동안 딸을 찾겠다고 시내의 온 노래방을 다 뒤지고 다녔다는데, 허탕만 쳤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내가 본 최 씨의 모습에선 그 어디에서도 어두운 그림자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때 밖에서 최 씨를 찾는 손님이 왔고, 최 씨는 나에게 천천히 일어나라고 말하면서 방을 나갔다.
“교수님, 환인시도 둘러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루 만에 가능하겠습니까?”
“글쎄요, 집안시만 해도 원체 넓어서 다 둘러보려면 하루는 잡아야 할걸요?, 꼼꼼하게 둘러보려면 아마도 힘들 것 같은데. 그래도 일단 움직여 봅시다.”
은하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서 저녁때까지 대절하는 조건으로 흥정을 시작했다.
역시 북경에서 관광 가이드생활을 했던 노련한 협상 덕택에 적당한 가격 선에서 택시를 세낼 수 있었다.
은하를 앞자리에 태우고 배 교수와 내가 나란히 뒷자리에 앉았다.
택시는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을 지나며 압록강의 서쪽에 위치한 집안시를 향해서 내달렸다.
어느 지점을 지나갈 때, 옥수수 밭 사이로 낡은 주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배 교수가 그중 한집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 집이 자신의 집이었는데, 몇 년 전에 팔았다고 말했다.
동북삼성에서도 메주콩으로 유명한 마을이라고 하면서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윤 선생, 자본주의가 무섭기는 무섭더만요.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언젠가 집단농장을 다 폐쇄했지요.
폐쇄할 때 경작권을 인민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채 삼 년도 안 돼서 도루아미타불이 돼버렸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말한 후 그는 차창으로 멀어져 가는 자신의 옛집을 향수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옛집이 저만치 멀어져 가자 그는 고개를 돌리며 다시 하던 말을 계속했다.
“중국은 집단농장을 인민공사 체제로 운영했었거든,
1958년의 대약진 운동 때 중국농촌 전 지역에서 인민공사가 설립되었다가 아마도 1982년도에 공식적으로 폐지됐지요,
그때 인민공사가 해체되면서 농민들한테 자경을 조건으로 골고루 토지를 나누어서 임대해 주었단 말이지,
여기 단위로는 만 평씩이니까 한국 단위로는 한 삼천 평씩 돌아갔을 거야 아마. 그런데 3년을 채 못 넘기더군. 그것 참, 허허허!”
이 말과 함께 배 교수는 너털웃음을 터트렸고, 또다시 차창을 바라보며 뭔가를 회상하는 모양이다.
“자기네들끼리 사고팔고 하더니만 한 삼 년쯤 되니까 결국은 몇 명의 손에 몽땅 다 넘어가고 마는 거야.
아직까지도 분배받은 자기 땅에서 소작을 붙이며 여기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도회지로 나가 날품들이나 팔고 있지.
이들이 바로 중국의 농민공들 아니겠어요? 기가 막힐 노릇이었어.”
삼 년이라는 말에 나 역시도 자본주의의 역동성에 놀라고 말았다.
“그런데 교수님, 중국에서도 토지매매가 합법적으로 가능합니까?”
배 교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래도 명색이 공산당이 지도하는 정치체제인데 그건 안 될 말이지.
건물은 소유권을 인정해 줘도 토지만큼은 매매가 금지된 국유재산이란 말이거든.
법적으로는 경작권의 개인 간 거래도 엄연히 불법이지만 사실상 당국에서 알면서도 묵인해 주는 거지.
인민공사 해체 후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여 주고는 너희들끼리 알아서 한번 살아보라고 했지만, 개중에는 똑똑한 놈이 있는가 하면, 또 멍청한 놈도 있었지.
잘 살아보겠다고 악착같이 일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허구한 날 술이나 퍼마시고 마작이나 하려는 놈도 있더란 말이지.
그리고 하는 일마다 운 때가 좋아서 잘되는 놈이 있는가 하면, 또 반대로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놈도 있고,
하였든 이 세상은 종류가 다른 사람들이 섞여 있다 보니 중국공산혁명 이전의 불평등 경제구조로 환원하는데 고작 삼 년이 걸리지 않았거든.
그래서 자본주의가 무섭더라는 거예요.”
아버지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던 은하가 뒤를 돌아보며 말벗을 자청하고 나섰다.
“아버지, 중국은 형식만 공산주의지, 내용은 한국보다도 더한 자본주의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개인 간의 토지매매를 금지하는 법은 이미 사문화된 법이지 않습니까?”
“그런가? 개인 간 거래하다가 처벌받은 사람은 아직 못 봤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윤 선생, 어쨌든 중국에서는 또다시 대지주와 소지주, 소작농, 이농자가 생겨나서 공산혁명 이전의 농촌상태로 되돌아가버렸단 말입니다.
하기 좋은 말로 중국식 공산주의네 중국식 자본주의네 하지만, 중국이 다시는 인민공사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듯이 적어도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공산주의 경제이념은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 있지요.”
배 교수의 말을 들으면서 구소련이 해체되고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위풍도 당당하게 서있던 레닌의 동상이 수난을 당하던 날, 서 교수님께서 들려주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공산주의 경제이념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 이념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핵심인 자율적 의지라는 것은 사실은 인간의 타고난 본능인 욕심의 다른 말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이라는 본능의 지배를 받는데, 이 본능이 작동하는 현실에서는 공산주의는 자본주의한테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똑같이 일해서 똑같이 분배한다는 것은 욕심이라는 본능이 존재하는 인간 세상에서는 열심히 일할 동기부여가 상실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생산성과 창의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었다.
자율성보다는 도식적인 평등을 앞세운 20세기 이후의 공산주의 경제실험은 창의성과 생산성의 낙후로 인하여 실패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인간의 타고난 욕심, 바로 그 욕심이라는 본능이 화근이라고 진단하셨다.
물론 혁명의 초창기에는 혁명 전사들의 뜨거운 열정이 살아있었어 지도층이 솔선수범하는 모범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시적으로만 가능했던 일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당원들 스스로도 본능에 제압당하게 되면서 이것은 곧 지도층의 부패로 나타났고, 이로써 교육만으로는 더 이상 타고난 본능을 억누를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2,500년 전 석가모니께서도 욕심이 화근이니 욕심을 버리라고 말씀하셨을까?
그러나 사람이 어찌 욕심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의 타고난 본능인 것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배 교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이건 내 생각인데, 어쩌면 북한도 남북한의 체제경쟁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을 내부적으로는 인정하고 있을 거라고 봐요.
90년대 고난의 행군시절을 거치면서 모두가 인정했다고 보는 거지.
문제는 그 패배를 공식적으로 시인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한국에 흡수통일 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단 말이에요,
과연 한국 사람들이 같은 동포로서 동등한 대접을 해주겠느냐는 우려가 있을 거라고 봐요.
흡수통일을 당하는 쪽에서 보자면 사실상의 항복을 의미하는 것이거든,
한국 사람들로부터 멸시받고, 차별받고, 천덕꾸러기 취급이나 당하는 2등 국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강한 우려가 있을 거란 말입니다.
아마도 그런 것이 두려워서라도 쉽게는 손을 들지 않을 겁니다.
내가 아는 북한 사람들 중에는 전쟁을 했으면 했지 굴욕적인 삶을 살겠다는 사람들은 별로 없거든!
이 사람들이 걸핏하면 자신들은 고구려의 후예라고 하는데 그만큼 자존심들이 대단하다는 걸 알아야 해요.
이것을 한국 사람들이 명심해야 합니다!”
방금 배 교수가 한 말은 나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한국이 체제경쟁에서 이겼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언젠가는 북한을 흡수통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의 말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동포를 따듯하게 포용하는 동포애를 발휘하지 않는다면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얼마 전 한국에 정착하여 살아가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처벌만 하지 않는다면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응답한 탈북자가 40퍼센트가 될 정도로 그들은 한국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외롭다고 했다.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차가운 시선을 느꼈으면 또다시 미국이나 영국으로 망명을 신청하는 탈북자들이 늘어나고 있겠는가.
그들을 외롭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차가운 분위기를 생각해 볼 때 방금 배 교수의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탈북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자로 방치된다는 사실은 통일한반도의 앞날에 적지 않은 부담이 틀림없다.
같은 민족으로서의 포용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자칫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에 주저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2등 국민으로 전락할 바에는 차라리 배가 고프더라도 자존심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영구분단을 지지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서 소름이 돋아났다.
한참을 달려온 택시가 어느덧 집안시에 도착했다.
이곳이 바로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로서 400년간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함께했던 국내성이 있던 곳이다.
잠시 택시에서 내려 고구려의 유적지를 한눈에 들어오도록 만들어놓은 대형 관광안내판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고구려는 중국의 변방에 있던 소수민족으로서 중국의 지방정권임을 분명히 했다.
천 년 동안이나 중원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자랑스러운 유적지에 왔다는 생각보다는 차라리 동북공정의 거대한 교육장에 왔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런 참담한 현실에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고 배 교수 특유의 울분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보시오! 윤 선생. 중국은 이렇게 단 한 번도 동북공정을 포기한 적이 없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은 아직까지 동북공정이 단순한 학술적 차원이네 아니네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이냐 말입니다.”
그의 말에 마치 마치 중죄인이 된 심정으로 난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왜 우린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있을까? 그것은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배 교수는 특유의 톤 높은 목소리로 통탄할 일이라며 격정적으로 울분을 토로했다.
순간 그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은하가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 아버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배 교수는 은하의 손수건을 받아서 눈가를 다시 닦은 후 천천히 돌아서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오. 윤 선생. 내가 너무 흥분했던 모양이오. 나이 먹은 사람이 주책없이…”
배 교수는 손수건을 은하에게 돌려주며 허탈하게 웃고 있었고 그 웃음은 차라리 허무에 가까웠다.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다시 올랐다.
창문을 모두 내리고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이하자 우리 일행의 침울했던 분위기도 다시금 원래 상태대로 돌아왔다.
서문 쪽의 도로를 따라가면서 최근에 지은 청파정(淸波停)이라는 2층 누각을 볼 수 있었다.
차에서 다시 내려 모두 정자에 올랐다.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에 버젓이 중국식 정자를 지은 이들의 의도는 뻔할 것이다.
고구려는 중국의 변방민족이었고 그 사실을 확실하게 해 두려는 치졸하게 계산된 의도가 분명하다.
이때 통구에 놓인 다리너머로 북한 땅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황량한 고립무원의 모습으로 생동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배 교수의 말대로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자구책도 없이, 다만 버티고 있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곧 매서운 엄동설한이 몰려올 텐데 강 건너로 바라보이는 황량한 고립무원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 민족의 절반 북한이 처한 현실이다.
이러한 비극의 시작은 민족의 분단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문제의 해결은 통일뿐인데도 그 여정은 결코 간단치 않다.
은하가 보이지 않아 주변을 두리번거렸을 때 화장실 방면으로 걸어가는 은하의 모습이 보였다.
나도 참고 있던 소변을 해결할 작정으로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이때, 배 교수가 서있는 자리로 바바리코트를 입은 웬 사내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사내의 얼굴이 하도 험상궂게 생겼기에 배 교수도 흠칫 경계하는 눈치다.
이 사내가 배 교수의 얼굴 가까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밀착시키고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웃었다.
그러더니 배 교수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이봐, 영감! 우리가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거 명심하고 있지?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도 항상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영감은 여기가 한국인 줄 착각하는 모양인데 여기는 중국이야, 중국!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사내는 씹고 있던 오징어 다리로 배 교수의 얼굴을 톡톡 치더니 이내 사라졌다.
별안간 벌어진 이 황당한 상황에 배 교수는 그저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허탈하게 웃기만 할 뿐이다.
난 배 교수가 방금 무슨 일을 겪었는지 까마득히 모른 채 담배를 피울 요량으로 건너편의 정자나무 밑으로 갔다.
은하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눈치를 보는지 그대로 서 있기만 할 뿐이다.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돌아왔을 때, 그제야 배 교수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향해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윤 선생, 소련이 경제적인 문제로 무너졌을 때를 생각해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안에 있던 소수민족들이 모두 독립해 나가면서 초강대국이었던 소련이 졸지에 2등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이 모습을 지켜본 중국이 소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자국 내의 소수민족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는 공정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고 봐야 합니다."
배 교수는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린 뒤 구둣발로 짓이겼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봐요. 만약에 한국이 북한을 흡수통일해서 북한이 잘 살게 된다면, 길림성 조선족 자치주에 있는 우리 조선족들이 동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신장자치구의 위구르와 서장자치구의 티베트도 덩달아서 동요할 수 있는 문제란 말입니다.
중국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이유로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어떤 식으로든 반대하려고 할 겁니다, 단순히 반대만 할까요?
글쎄요, 중국은 생각보다도 훨씬 무서운 나라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이 점을 잘 알아야 해요.”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불현듯 하버드대학의 마크 바임턴 박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최근 들어 중국정부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소수민족이 바로 동북지역에 있는 조선족이라고 전제하면서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
“중국은 한국이 통일된 후 옛 고구려 땅의 일부였던 간도일대를 한국영토라고 주장할 것에 대하여 걱정하고 있다고 본다.
이렇게 될 경우 중국의 입장이 실제로 수세에 몰려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중국은 동북지역의 3개 성인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이 중국의 영토라는 것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1949년까지 단 한 번도 중국 중앙정부가 장기적으로 통치한 적이 없었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이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가 힘들어지는데 중국인들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고, 동북쪽 국경을 유지하며 영토를 보존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아래서 나는 중국이 티베트 역사를 편입시키는 서남공정에 이어 동북지역의 문제를 다루는 동북공정을 시작했다고 본다.“
다시 택시는 한참을 달렸고, 얼마를 더 이동하자 우리 눈앞에 동방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웅장한 모습의 장군총이 나타났다.
차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높이가 13미터인 장군총은 그 보존상태가 너무나도 완벽하여 내 눈을 의심하게 했다.
더 걸어가자 광개토대왕릉으로 짐작된다는 태왕릉이 나타났다. 그 규모가 장군총보다 네 배는 더 커 보였다.
다시 조금 더 걸어가자 높이가 6미터도 넘어 보이는 그 유명한 광개토대왕릉비가 우리들 앞에 우뚝 서있었다.
웅장한 광개토대왕릉비를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그런데 동북공정의 마지막 단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중국 남서부에 있는 티베트의 서남공정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어요. 그 끝이 어디인가를 말입니다.
동북공정의 최종목적지가 어딘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일종의 거울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한반도의 통일 이후를 대비하여 간도지방을 계속 관할하기 위한 포석도 분명히 있습니다만, 다른 의도도 가지고 있다고 봐야 됩니다.
만약에 북한이 어떤 사정으로 급격하게 붕괴된다면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우선권을 주장할 것인가 하는 음모도 숨어있다고 나는 확신하지요.”
순간 두려운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북경대학에서 교환연구원으로 공부하고 있을 때 그 대학의 왕소부 교수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했을 당시 그 땅은 중국 고대영토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곳은 중국의 지방민족이자 지방정권인 고구려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그 지방을 점령하기 전에는 한사군, 낙랑군 같은 것이 있어서 중국이 직접 통치하는 상황이었다.
낙랑군은 중국의 영토였다.”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북부와 중국의 역사적 연관성에 대해서 이 같은 논리로 설명하며 왕소부 교수는 고구려의 영토였던 한반도의 북부까지도 중국의 고대영토라고 주장했다.
한 번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갑자기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미국인 학자 스티븐 모션이 자신의 저서 헤게먼<Hegemony>에서 밝힌 내용도 생각났다.
“정 위원장 정권이 붕괴하면 중국은 군대를 북한으로 이동시켜서 괴뢰정권을 수립하거나 자국의 조건에 따라서 한반도 통일을 조정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정권수립을 포함한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나는 조용히 티베트의 현실을 떠올려 보았다.
1986년부터 십 년간 진행된 서남공정으로 티베트의 역사는 이제 완전히 중국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자 티베트가 동북공정의 거울이라는 배 교수의 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았다.
순간 온몸이 떨려오는 전율이 느껴지면서 소름이 돋아났다.
나는 태왕릉과 장군총을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큰 칼을 높이 치켜든 채 무덤을 박차고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쳐부수기 위해서 고구려의 용맹한 십만 대군을 이끌고 먼지 뻘뻘 날리며 만주벌판을 말 달리는 환영이 내 앞을 지나갔다.
상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새어 나왔다.
광개토대왕릉비를 보는 것으로 집안시의 유적지를 둘러보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우린 다시 택시에 올라 압록강 변을 내달렸다.
이천 년 전 만주대륙을 지배했던 우리 민족의 영광이 집약되어 있는 국내성이 이토록 처참하게 변해버린 현실 앞에서 난 가슴이 아팠다.
유적지마다 설치된 안내문과 각종 관광안내 책자 그리고 기념품에 이르기까지 고구려는 한반도와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주장으로 도배가 되었다.
고구려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일개 지방정권에 불과했다고 선전하고 있는 중국, 너무도 속이 훤히 내다보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목격하면서 대국답지 못한 옹졸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중국이 차라리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제 겨우 다섯 시를 넘긴 시간인데도 압록강 너머로 석양이 붉게 물들고 있다.
그 옛날 고구려 땅에서 그 옛날 고구려 땅으로 지고 있는 노을이 어쩐지 낯설게만 느껴지면서 울적한 마음이 물밀듯 몰려왔다.
택시는 갈 때에 비해서 두 배는 쏜살같이 달려왔고, 어느덧 배 교수의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배 교수와 은하를 먼저 내리게 한 후 아침에 합의했던 요금을 정산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기사는 오늘 수입이 짭짤했던지 연신 즐거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몇 번씩이나 인사를 한 후 사라졌다.
배 교수가 지갑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윤 선생, 오늘 지출이 과하신 것 아닙니까?
내가 너무 떠드는 바람에 환인시에도 못 가보고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늦었지만 들어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가세요.”
별로 시장기도 없었고 또 늦은 시간 폐가 될 것 같아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아닙니다. 내일 백두산일정도 있고 하니 그냥 가보겠습니다.
교수님께서도 피곤하실 텐데 어서 들어가십시오. 오늘은 정말 여러 가지로 유익했습니다.”
배 교수는 내일 보자며 악수를 청한 후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워하는 은하의 손을 이끌다시피 기어이 함께 들어갔다.
여기서부터 백산호텔까지는 걸어서도 삼십 분 남짓, 나는 연길시의 야경도 구경할 겸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배 교수가 은하와 함께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보니 방은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최 씨가 방바닥을 걸레로 닦으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배 교수, 도둑이 들었나 봐! 손님하고 현장에 다녀왔더니만 방이 이렇게 되어 있었지 뭔가.
없어진 물건이라도 있는지 찬찬히 한번 둘러보게나.”
배 교수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방이야 뭐 훔쳐갈 것이나 있겠나 마는 이 자들이 이제는 아예 이성을 잃어버렸어.
하다 하다 이런 좀스런 패악질까지 저질러 다니…”
배 교수의 이 말은 자신들의 소행임을 분명히 하려는 듯 범인의 흔적을 확인한 후 하는 울분이었다.
벽면에 붙어있던 ‘고토회복지역’이라고 적어놓은 대형지도가 조각조각으로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있었고,
그 자리에는 붉은 매직으로 ‘중국인으로 살기 싫으면 중국 땅을 떠나라’는 경고성 문구가 버젓이 적혀있었다.
웬만큼 상황을 정돈한 뒤, 배 교수는 최 씨와 함께 오늘일의 찹찹한 마음을 달래고자 순두부집으로 들어섰다.
배 교수가 들어서자 탁자하나를 차지하며 막걸리를 마시던 젊은 사내들이 모두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몰골이 한눈에 보기에도 형편없었다.
한 명은 왼팔에 깁스를 하고 있고, 또 한 명은 머리통에 열십자 모양으로 반창고가 붙어있다.
또 한 명은 왼쪽다리를 깁스한 채 목발을 짚고 있었는데 눈두덩이와 입술 주위까지 시퍼렇게 멍들고 퉁퉁 부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여긴 웬일이십니까?”
한 달 전 분기토론회 때 사회를 보다가 봉변을 당했던 성주가 왼팔에 깁스를 한 채 배 교수와 최 씨를 바라보면서 반갑게 말했다.
배 교수가 잔뜩 애정 어린 따듯한 표정으로 이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하는 말이다.
“아이고 이 사람들아, 그래 몸들은 어떤가? 많이 상하지는 않았고?”
눈두덩이가 시퍼런 채 다리에 깁스까지 하고 목발을 짚고 있던 경태가 말했다.
“이제 웬만큼은 나다닐 만합니다,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식사하러 오셨습니까?”
“아니야, 답답한 일이 있어 막걸리나 한잔했으면 하고 왔더니만 자네들도 와있었구먼?”
성주가 잘되었다는 표정으로 자신들의 맞은편자리에서 의자 두 개를 마련하더니 자리를 권하면서 말했다.
“그럼 잘되었습니다, 저희들과 함께 하시지요, 최 사장님도 같이 앉으시죠?”
이렇게 해서 탁자하나에 다섯이 둘러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성주가 배 교수와 최 씨에게 막걸리 한잔씩을 가득 따뤄준후 주인아주머니를 불렀다.
“아줌마!, 우리 교수님 아시죠?”
차분하면서도 후덕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다가오더니 배 교수에게 깍듯이 인사를 한다.
“암요!, 우리 배 교수님을 모르면 제가 조선 사람이 아니지요,
그나저나 교수님!, 요 앞전 분기 행사 때는 마음 많이 상하셨지요?,
우리 조선사람들이 그 일로 해서 더욱 단합하자고 말들이 많습니다,
교수님께서 잘 이끌어주십시오, 저희들은 그저 교수님만 믿고서 따라가겠습니다!”
배 교수가 자신의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켠 후 주인아주머니에게도 자신의 잔을 건네며 반잔만 따라주었다.
“고마운 일입니다, 우리 동포들이 이렇게 단합하는 모습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머리가 깨어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팔이 부러지더라도 결코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 단합해서 꿋꿋하게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통일될 때까지 우리 동포들이 이 시련을 잘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잃어버린 우리 간도땅을 되찾을 수가 있어요, 우리 동포들이 장해요, 암요 장하다마다요!”
잠시 후 오늘은 주인아주머니가 배 교수에게 대접하겠다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김치 한 접시와 막걸리를 아예 큰 주전자로 가지고 왔다.
최 씨가 이들의 몰골을 찬찬히 훑어보면서 하는 말이다.
“자네들 그 몸으로 술들을 마셔도 괜찮겠는가?”
머리에 반창고를 붙인 기수가 막걸리 한 사발을 남김없이 들이키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인제는 괜찮습니다, 교수님 제잔도 한잔 받으시지요?”
배 교수는 기수가 따르는 잔을 받으며 다시금 이들을 훑어보고 있다.
“나와 사제지간으로 인연을 맺은 후로 자네들이 고생이 많음일세!”
성주가 펄쩍 뛰는 표정으로 배 교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들은 교수님과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여간 든든하지가 않습니다."
이번에는 기수가 무슨 은밀한 말을 하려는지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나저나 교수님!, 들리는 말로는 그때 그 패거리들이 장백산천지회란 소문이 있습니다."
이 말에 최 씨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장백산천지회라면 그 악명 높은 삼합회조직을 말하는 것이 아니네?,
그럼 이것 보통 큰일이 아닌데, 보통일이 아니란 말일세, 큰일이야!”
“쉿!, 최 사장님 좀 조용히 말하십시오!, 남들이 듣겠습니다!”
채 열 평도 안돼 보이는 식당 안에는 실제로 이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사안이 사안인지라 성주가 호들갑을 떨고 있던 최 씨를 다급하게 자중시키고 있었다.
그제야 최 씨가 주변을 돌아다보더니 자신의 왼손으로 입을 다물게 한 후 조심하겠다며 머리를 몇 번이고 끄덕인다.
기수의 말을 듣고 나서야 배 교수는 최근 그 자신 주변에서 벌어졌던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상황들이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다.
들고 있던 막걸리 잔을 단번에 들이켠 후 오른 손등으로 입을 닦으며 하는 말이다.
“이 자들이 지금 여유를 잃어가고 있어, 무엇이 그리도 초조한 지 대국으로서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단 말일세,
그것이 걱정이야!, 우리야 힘이 없으니 밟으면 밟힐 수밖에,
그런데 말이야, 전에도 자네들에게 인동초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우리 민족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세찬 겨울바람을 이겨낸 인동초와 같다고 볼 수 있지.
바람이 불면 눕고 밟으면 밟히고, 세찬추위에는 하얗게 잎이 말라버리는 볼품없는 잡풀에 불과하지만 봄이 되면 또 오뚝이처럼 꿋꿋하게 되살아난단 말이야!,
진정한 승리자는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될 것이야!,
우리 모두 지금은 힘들겠지만 이 모진겨울을 이겨내자고! 그래서 희망찬 새봄을 맞이해야 되지 않겠나?”
기수가 배 교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교수님!,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천지회가 단순한 삼합회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힐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모르긴 해도 교수님을 집중적으로 괴롭힐 것 같은데 교수님께서도 모쪼록 몸조심하셔야겠습니다”
이때 의자 옆에 세워둔 목발이 쓰러져 그것을 똑바로 일으켜 세우던 경태가 거들고 나섰다.
“천지회는 삼합회와 연결된 극우단체라고 합니다,
동북삼성지방 일대에서 활약하는 중화주의 극우단체이기 때문에 우리 조선동포들이 과녁이 될게 뻔합니다,
저들은 동북공정을 방해하는 세력을 주타깃으로 삼아서 무지막지하게 테러를 가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모두들 조심해야 될 것 같습니다, 특히 교수님께서 더욱 조심하셔야 됩니다!”
자신의 손으로 입까지 틀어막고 있던 최 씨가 입방아를 찧고 싶어 도저히 못 참겠던지 어느새 머리를 쏙 들이밀었다.
“도대체 천지회 가들은 뭣 땜시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그 난리라 하던가?”
성주가 최 씨를 정색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최 사장님!, 부동산에 놀러 오는 분들 앞에서도 오늘 있었던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저자들이 교수님 주변에 끄나펄을 붙여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저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더욱 가혹한 테러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절대로 말조심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이 사람들이 사람을 뭘로 보고 이러시나!, 나 이래 봬도 입무거운 남자야”
최 씨의 이 말에 모두는 큰 소리로 폭소를 터트렸다.
“내 지금 이 순간부터 오늘 들었던 이야기는 모조리 잊어버림세!. 그럼 됐는가?”
배 교수가 최 씨의 등을 두드리며 말한다.
“그래 이 사람아, 우리 모두 조심하세나”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었던지 배 교수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착잡한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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