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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태연 May 14. 2020

동물병원에 취업했다.

꽃길만 걸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인간 간호사 세계만큼의 텃세가 기다렸다.

  동물 관련 직종에서 전문적인 커리어를 쌓으려면 수의 테크니션이 적절할 것이라는 추천을 들었다.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증을 준비하던 도중에 취업성공패키지를 신청했고, 곧장 취업 담당 선생님과의 상담이 잡혔다. 취업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담당 선생님은 정성껏 지원해주셨다. 상담 도중에 도루스와 사람인, 잡코리아 등을 함께 탐색하면서 어떤 병원에 지원하는 것이 좋을 지 논의했다. 작성해 온 이력서를 코칭받아 비문을 삭제하고 좀 더 전문적인 느낌이 강하게 수정했다. 센터에 방문하지 않는 날에도 이력서를 써내려가고 메일로 첨삭을 진행했다. 선생님은 이력서를 보낼만한 병원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자격요건이나 근무조건 등을 꼼꼼히 살펴주시고 나에게 면접 연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덕분인지 경력이 전무한 30대 신입사원임에도, 몇 번의 면접 기회가 주어졌다. 고양이 보정법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묻는 원장님이 많았다. 아니면 노령견이나 환자견의 돌봄 경험, 반려기간, 다견가정 여부, 알고 있는 질병 종류, 입사 후의 근무태도 등 다양한 사항들을 물어보셨다. 면접 과정에서 진땀을 흘리며 압박하는 일은 없었고 대체적으로 친절히 대해주셨다. 바보같이 버벅거릴 때에도 차분히 말하라고 기다리시는 선생님도 계셨다.



  합격 통보들을 받았는데, 집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인 병원으로 결정했다. 출근일은 일주일 후 부터였다. 그 길로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증 과정 강사님과 취업성공패키지 담당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렸다. 취업 성공 사례로 기록이 남았고,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예전에 다른 과정으로 함께 취준하던 동료들로부터 축하세례를 받았다.



병원 마스코트견 앵두. 보호자가 치료 후에 병원에 버리고 간 녀석이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양단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당찬 인사말을 연습해갔는데... 이런! 정작 출근하자마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층 원무과로 가서 데스크 접수 선생님들에게 첫 출근자라고 말씀드리니 3층으로 곧장 올라가서 아무거나 유니폼을 입으라는 설명을 들었다. 비어있는 사물함 속에서 퀘퀘한 냄새의 진분홍색 유니폼을 꺼내 갈아 입었다. 어색한 옷차림을 셀카로 기념하고 2층 진료실로 내려왔다. 진료실로 들어가자 굳은 표정의 테크니션 선생님 두 분이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저... 안녕하세요..."


  "아? 오늘 출근하시기로 하신 선생님이세요?"


  "네, 안녕하세요."


  "조금만 있으면 인수인계 할테니까 기다리세요."


  "네..."




  숨막히는 정적이 5분 동안 진행되었다. 그동안 유리창 케이지 안에 있는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유리벽면에는 아이의 이름, 나이, 성별, 영어약어로 표기된 병명, 특이사항 등이 굵게 기재되어 있었다. 차트로 보이는 파일철에는 매 시간별로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도록 촘촘한 칸이 그려져 있었다. 낯선 공기, 낯선 기분. 보호자로 갔을 때 보였던 친절함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모든 상황이 불친절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건 느낌만이 아니었다. 감은 확실한 현실이 되었다.




  "자, 인수인계 시작할게요."




  어디 있었는지 모르게 20명이 넘는 수의사 및 수의테크니션 선생님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수의테크니션 선생님들은 한 눈에 봐도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려보였다. 30대 초반의 나는 '늙다리'였다. (나중에 벽면에 걸려있는 비상연락망과 생년월일을 훑어보니까 이미 과장 직급을 달고 있는 수의사는 나와 동갑이었다.) 그래도 기죽지말고 성실히 임하자는 생각에 수첩을 펼치고 펜을 쥐었다. 무리의 맨 뒤에 서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모든 말들을 적어 내려갔다.

 


  약 20분의 인수인계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인수인계'라 함은 약 1~2주 정도의 시간을 갖고 사수에게서 업무사항을 배운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업종에서의 인수인계는 근무 로테이션이 바뀌면서 각종 주의사항과 처치사항 등을 보고 및 전달하는 것을 의미했다. 원장 선생님은 인수인계를 끝내면서 짤막하게 내 소개를 해주셨다.




  "오늘부터 근무하게 된 양단우 선생님입니다. 잘 가르쳐주세요."




  짧은 소개를 마쳤지만 인사라든지 뭐 그런 류를 발언할 기회는 없었다. 소개가 끝나자마자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그저 망부석처럼 자리에 꼿꼿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가만히 서있기가 어색해서 다른 테크니션 선생님한테 조용히 다가가 물었다.




  "선생님... 저는 뭘 하면 될까요?"


  "음... 첫날이니까... 뭘 시키지? ㅇㅇ쌤, 우리 뭘 시키면 되죠?"


  "글쎄... 아직은 인턴이니까 그냥 구경하세요."


  "넵, 알겠습니다."




  구경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솔직히 뭘 구경해야 하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괜히 코반이 채워져있는 통을 열었다 닫았다 하기도 하고, 케이지 안에 있는 아이들과 시선을 마주치며 온 곳곳을 훑었다. 쫄래쫄래 따라다니면서 뭔가를 받아적거나 가르침을 받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첫 출근이 마무리 되었다.


  두 번째 출근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보려고 노력했다. 인수인계가 끝난 직후에 선생님들에게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하고 물어재끼면서 파헤쳐나갔다. 알쏭달쏭한 것들 투성이였지만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점심 때는 삼삼오오 모여서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서 나갔다. 멍청이처럼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이자 수의사 쌤들이 챙겨주셨다. 수의사 쌤들은 재력이 있는 분들인지 모르겠지만... 점심에 횟집을 가셨다. 속으로 눈물이 흘렀다.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흙수저는 흙흙하고 웁니다.' 최저임금에 기준하는 월급 175만원 중에서 3개월 수습 비용까지 고려하면, 분명히 150 얼마쯤 밖에 안나올텐데... 점심시간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세 번째 출근에서는 낯선 얼굴들이 속속들이 보였다. 24시간 로테이션 근무다보니 못 본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 못 본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처음 본 선생님의 뒤를 따라다니며 각 용품들의 명칭과 보충하는 법을 배웠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려 했건만 기억력이 좋은 편에 속한게 아니라서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 싫은 소리는 좀 나은 편인데... 코반의 mm를 다 기억하지 못해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조금씩 옮기는 와중에 한숨소리와 함께 한심하다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에는 헤파린 주사기 제조, 케이지 청소 등을 진행했다. 하루는 원장 선생님이 수의테크니션 선생님들에게 프린팅 종이를 나눠주셨다. 종이를 받아 보니까 각종 처방식과 약물에 대해 간략히 설명된 페이퍼 자료였다. 원장님은 다음주에 시험을 볼거라고 하셨다. 원장님이 가고 나신 후에 다른 테크니션 선생님께 질문했다.




  "여기는 시험도 보세요?"


  "네."


  "아, 그렇구나. 그런데 종류가 꽤 많네요. 이거 정말 다 외워야 하는거죠?ㅠㅠ"


  "쌤은 인턴이니까 안외워도 될거예요."


  "정말요?"


  "나야 모르죠."




  입사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테스트를 본다는 것도 신기했는데, 원치 않은 퉁명스러움 혹은 태도의 불편감에 쑥 움츠러들었다. 내가 만약 거북이였으면 온 힘을 다해 등껍질 속으로 들어가버렸을 것이다. 선생님들은 진료실 의자에 앉아 끼리끼리 모여서 페이퍼를 암기했고, 나는 벽면에 기대서서 페이퍼를 암기했다. 하지만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면 조금의 암기가 진행되지 않는, 전형적인 문과적 성향에는 이 페이퍼를 전혀 암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는데 테스트에 관련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또 까먹었나봐."


  "그럴 줄 알았어. 난 아예 안외웠는데 ㅋㅋㅋㅋ"


  "귀찮아죽겠어. 이런걸 왜 하라는거야, 짜증나게."


  "그러니까 욕을 먹지."




  테크니션 선생님들은 시험의 압박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딱 3초만 즐겼고, 나머지 시간에는 수의사 선생님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헐뜯는 얘기들을 했다. 그 속에도 나는 끼어들 공간이 없었다. 물론 남을 욕하는 일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그러다 한 선생님이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사람이 앞 뒤가 다르대."




 라며 낮게 수근거리는 모습을 봤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해 그렇게 지껄이다니. 20대 중후반인 그녀들의 입에서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단순히 '어리다'라는 품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모른 척 핸드폰을 매만지다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하고 자리를 피했다.



  화장실 거울을 보면서 ' 나이에 왕따라니'하고 처지가 재밌어 피식피식 웃었다. 일반 간호사의 세계도 동물의 왕국인 양 텃세가 엄청나다고 하는데 동물 간호사의 세계도 별 다르지 않다니. 참 재밌는 일이었다. 화가 나기 보다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작자들의 그릇이 이렇게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실에서 퇴원을 기다리는 녀석들. 이쪽은 일반환자실이라 금방 퇴원하는 녀석들이 많았다.



  그들의 공격이 거셀수록 자아가 꺾여질 일은 없었다. 둔감해보이는 외면보다, 내면의 자존감은 무척 높은 인간이니까. 무엇보다도 내겐 여기서 버텨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까. 나는 여기서 경력을 채워서, 추후 공인될 수의테크니션 관련 국가 자격증을 준비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자격증을 획득하고 보다 더 많은 폭의 의료경험을 통해 미개척지와 같은 국가에서 동물보건 신장에 대한 기여를 하고 싶었다. 그런 이상이 있었다. 아주 훌륭하고 완벽한.



  이상을 되새김질 하고 높이 쌓아갈수록 현실에서 맞받아치는 냉혹함은 더욱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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