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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단우 May 15. 2020

입사 2주 만에 동물병원에서 탈출했다.

아니, 어린이집 선생님이 소아병동을 왜 간 거예요?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일상은 로테이션에 맞춰 계속되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느 무리에 속해서 끼니를 챙겨야 할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한 속내로는, 아무 편에도 서지 않고 뭘 먹는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근무 내내 하는 업무라고는 케이지에서 배변패드를 갈고 벽에 눌어붙은 똥 찌꺼기를 떼어내는 일이었는데, 아무리 깨끗이 씻었다한들 그 손을 바로 음식물을 섭취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비위가 상하는 일이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것과 배설물 냄새를 인내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깨달아가고 있었다.




  “우리 집 애 똥 냄새는 참겠는데 남의 집 애 똥 냄새는 인간적으로 참기 힘들죠.”




  언젠가 들었던 말이 참이었다. 이 말은 곧 내 개한테도 통하는 말이었다.



  인턴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똥 치우고 오줌 치우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으니 당장 쓸모 있는 일거리랄 것이 그런 것뿐이었다. 아이가 배설을 하면 케이지에서 꺼내어 빈 케이지에 넣어둔다. 분무기에 리필된 산화전위수를 케이지 내벽과 바닥에 분무한다. 그리고 나면 걸레로 박박 문질러 닦아낸다. 이때, 말라비틀어진 똥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배변판이 젖어있거나 느낌이 이상하다 싶으면 즉시 청소에 돌입한다.




  “쌤, 얘 똥 쌌어요.”




  수의사 선생님이나 테크니션 선생님들은 케이지 안으로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비릿한 똥냄새가 진동을 했다. 한 녀석의 케이지 유리가 활짝 열려있었다. 선배 테크니션 선생님이 나를 보고 ‘쟤 똥 쌌다’고 말했다. 산화전위수와 걸레를 들고 냉큼 달려갔다. 파들파들 떨고 있는 아이의 엉덩이에 설사가 묻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문댔던 케이지 바닥 곳곳에도 그 흔적들이 있었다. 인수인계 직전이라 스무 여 명의 사람들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지만, 변 냄새를 맡고 있었지만, 아무도 케이지 안에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 온전히 내 몫이었다.



  숨을 흡 하고 들이쉬고 약 10초 정도 참았다가, 다른 쪽을 쳐다보고 흡 하고 들이쉬었다. 한 손으로는 분무질을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똥 묻은 걸레를 빠르게 움직였다. 개를 사랑하지만 똥까지 사랑하기는 어려웠다. 아픈 개의 설사똥 냄새는 참기 어려웠다. 헛구역질을 간신히 참아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아이는 똥 묻은 발로 내 품에 안겨서 바둥거리느라 유니폼이 더럽혀졌다. 품에서 쉬를 지리는 아이도 있었다. 자신이 배변판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힘듦도 높은 이상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대망의 꿈을 안고 구입해서 매일같이 공부했던 동물간호학.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배변 청소가 아니라, 안락사 직전의 아이를 마주하는 것이었다. 출근 첫날, 인수인계를 받기 전에 유니폼을 갈아입고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하얀색 붕대로 둘둘 감긴 고양이를 봤다. 고양이는 치워질 쓰레기처럼 한쪽 구석이 빗겨있었다. 처음에는 이 하얀 물체가 뭔지 몰랐는데 3초 만에 번뜩임이 왔다. 이건 고양이의 사체이다!



  인수인계 때, 선생님들끼리 차갑게 식은 사체를 고갯짓으로 가리키면서 수군거렸다. 쟤가 밤에 죽은 걔야? 응, 바로 걔야. 한 시간 후에는 동물 사체 폐기업자가 방문해서 한 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다. 업자는 한 손으로 고양이를 들더니 가방에 담아 갔다. 마치 물건처럼.



  충격과 공포의 고양이 목격 사건 이후에도 잔인한 현실은 계속되었다. 케이지 속의 아이들은 근무 로테이션을 돌고 오면 계속 남아서 진료를 받거나, 아니면 퇴원해서 돌아오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아이들은 케이지 안에 넣어지고 밖으로 보내지고를 반복했다.



  순환 속에서 선택받지 않은 소금이. 소금이는 하얀색 고양이었는데 중환자 케이지에 갇혀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모래판 위에 누워서 콧수염 하나도 흔들지 않았다. 아이의 정수리에는 바느질 같은 수술의 흔적들이 있었고, 코 주변에는 산소 호스가 밴딩 되어 있었다. 전에 호흡곤란으로 달려온 강아지는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기능이 떨어져, 급하게 산소 호스를 코에 갖다 대고 심폐소생술을 해서 극적으로 살린 경험이 있었는데... 소금이는 그런 호흡의 의지, 삶의 의지를 체념한 듯 눈빛이 흐리멍텅했다.



  어느 날 소금이의 보호자가 밤에 찾아왔다. 보통은 아침 혹은 한낮에 방문하곤 하셨는데 오늘만큼은 저녁 9시가 다 되어 방문하셨다. 보호자님은 소금이의 볼을 어루만졌다. 애닳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선생님들은 자리를 피해드렸다.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해서 선배 테크니션 선생님께 물었다. 선배들끼리는 업무 공유가 되어 다 아는 눈치였다.




  “보호자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소금이 안락사하실 거래요.”


  “네?”


  “진작 그랬어야 했는데 너무 오래 끄셨죠...”


  “아...”




  일반적인 상황인 것처럼 그네들은 다시 일상 얘기를 시작했다. 보호자님이 나올 때까지 눈치껏 웃는 소리를 죽이면서 깔깔거렸다. 어색하게 웃는 둥 마는 둥 하며 벽에 기대섰다.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삼십 분에 다섯 번 이상 똥오줌을 닦아내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안락사를 마주해야 하는 일은 참기가 어려웠다.




  “아니, 어린이집 선생님을 하셔야 할 사람이 대체 왜 소아병동에 간 거예요? 괜찮겠어요?”




  취업소식을 들은 지인이 함께 좋아해 주기 전에, 먼저 걱정하는 눈빛을 보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녀의 우려가 참으로 현실적이고,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마주하는 죽음들은 내가 견딜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똥오줌을 치우는 딱 그 정도에서만 사랑할 수 있었다. 비겁했지만 양단우는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내일 출근하면 소금이를 만날 수 있을까?
소금이와 눈을 마주칠 수 있을까?
내일은... 소금이가 살아 있을까?
그때 그 고양이처럼...




  그 날 저녁은 오랜만에 악몽을 꾸었다. 다음날 인수인계 때는 소금이의 안락사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내일이면 정말 소금이를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원장님. 저... 그만 두면 안될까요?”


  “왜죠?”


  “아이들이 아픈 것은 제가 어떻게든 돌보고 힘든 것도 다 참을 수 있는데... 내일은 소금이가 없을 거잖아요. 내일 볼 수 없는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무서워요.”


  “그래요. 그런 언제까지 근무할 수 있어요?”


  “선생님, 저는 못 견디겠어요.”




  퇴근 준비를 하려는 원장님을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비겁하고 찌질 해 보여도 그만두고 싶다고 징징거렸다. 공포에 질린 뇌 때문에 상황 분간이 되지 않았다. 빨리 병원을 탈출하고 싶었다. 숨이 가빠오고 눈 앞이 아찔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선생님들에게 인사하고 가세요.”




  감사하게도 원장님은 햇병아리 민폐녀의 징징거림을 이해해주셨다. 진료실에 남아있는 두 명의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유치원 아이처럼 끅끅거렸다. 다행히 선생님들은 그나마 나를 잘 받아주시는 분들이어서 마음을 헤아려주셨다.




  “괜찮아요, 쌤. 원래 이 쪽이 힘들어서 못 견디고 나가는 분들이 많거든요. 아이들 좋아하시면 꼭 병원이 아니라도 다른 길이 많으니까 그쪽으로 나가시면 되어요.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선생님들은 등 뒤를 토닥여주었다. 90도로 허리를 숙여서 몇 번이나 죄송하다 감사하다 인사를 했다. 유니폼을 곱게 개어 넣고 짐을 챙겨 나왔다. 넋이 나간 듯 터덜터덜 걸어갔다. 집에 돌아오니 가족들이 수고했다며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동물병원에서의 짧은 시간들은 강력한 기억만 남기고 마무리되었다. 며칠 뒤에는 디디를 데리고 단골 동물병원에 방문하면서 먹을 것들을 바리바리 싸갔다. 감사하다고, 감사하다고, 몇 번을 인사드렸다. 내가 포기했던 길을 누군가는 견디고 견디면서 버티고 서있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 일을.



  아직도 많은 소금이들이 생사를 오가면서 동물병원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겠지. 소금이들을 돌보는 손길들도 있겠지. 생명과 죽음이라는 한계 가운데서 저울질하며 버티고 있을, 소금이들과 선생님들. 비록 내가 입사했던 병원이 그리 썩 좋은 문화를 가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나를 험담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이었다 할지어도... 모두 모두 힘을 내라고 그냥 그렇게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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