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자격증이라도 그게 어디입니까 라고 했지만... 냉정한 현실같으니!
그 해 봄에는 취업에 실패했다. 정확히는 취업에 성공은 했지만 약 3개월 정도의 수습기간만 버티고 추노 했다. 벌써 이렇게 방황한 지 3년 째로 접어들었다.
이후의 삶도 실패의 연장선이었다. 이력서를 넣으면 나이 때문에 떨어지거나, 아니면 붙더라도 면접 때 창피를 당하거나, 그도 아니면 그냥 출산 가능성 때문에 아예 나가라고 면박을 주는 면접관도 있었다. (심지어 그는 노무사였는데... 허허...) 취업이 실패하면서 생계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멘탈도 심각하게 흔들렸다. 마침 등록했던 여성취업과정에서 5개월 가까이 열심을 다하며 관련 직종 국가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취업시장에서 30대 여성은 웬만한 경력직이 아니고서야 여간해서 기회조차 쥐기 어려웠다. 우리끼리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경기도에서 예산을 지원하는 취업동아리를 개설하고 공모전 활동을 하고 매주마다 모여서 자소설을 썼다.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그냥 국가사업의 어떤 실패사례 중 하나가 되었을 뿐이었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도, 용납하는 것도 잘할 수 없었다. 차라리 직종을 전환해서 다른 쪽의 커리어를 쌓자는 생각이 들었다. 토익점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격증만 줄줄이 있는, 경력 없는 중고 신입을 받아줄 자리가 없다면 그냥 내가 자리를 만들어나가자 하는 당돌하고 무모한 생각을 품게 되었다.
다시 취업과정을 들었던 센터로 가서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증 과정을 신청했다. 그래,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강아지를 돌보는 일이니까 이게 가장 최선의 길이라고 마음먹었다. 실제로 어딜 가든 강아지들이 잘 따르는 류의 인간이니까. 디디로서 내 자격은 충분히 증명된 셈이니까. 신청서를 작성하고 교육비를 납부했다. 교육비는 16만 원이었다. 저렴한 편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개강일이 되었다. 강사님은 업계에서 꽤 잔뼈가 굵
은 분이었다. 아로마 마사지 지도사를 하고 계셨고 여기저기 출강을 하시고 계셨다. 다견가정이셔서 행동교정에 대한 이해와 펫티켓에 대한 설명도 사례를 들어 쉽게 설명해주셨다.
곤욕스러운 것은 개의 종류가 너무 많은 것이었다. 그걸 다 외워야 합격할 수 있냐고 강사님께 울먹거린 적도 있었다. 디디는 믹스견이기 때문에 각 종마다 가지고 있는 특징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때때로 무슨 종이 섞여있기 때문에 시력에 주의해야 하고, 또 어떤 종이 섞여있기 때문에 탈모에 조심해야 하고 이런 주의만 병원에서 듣는 게 전부였다. 개의 종류와 그에 따라 각각 케어법이 다르다는 건 별세계와 같았다. 무식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런가 하면 쉬는 시간마다 강사님께 하소연을 했다.
“제가요, 선생님. 여기서 취업 과정을 밟았는데 취업에 실패했거든요.ㅠㅠ 취준을 하다가 방향을 전환해서 이 쪽으로 일을 하려고 하는데요. 저 같은 생계형한테는 무슨 직업이 좋을까요?”
“음... 일단, 단우 씨와 같은 상황에서 전문적인 직업군을 추천하자면 수의 테크니션이 가장 좋고요. 아니면 펫시터를 하시는 걸 추천드려요. 약욕 관리 쪽도 좋긴 한데... 천천히 배워가면서 맞는 분야로 넓히는 게 좋으실 것 같아요!”
몇 주 동안 이어지는 고민상담 및 진로상담을 받으며 관련 업계로 어렵지 않게 취업할 수 있었다. 동물병원 수의 테크니션으로 말이다. 교육 과정 중의 취업이라 자격증이 없었지만, 지금 듣고 있는 이 교육과정이 하나의 ‘스펙’이 되어서 취업에 용이하게 작용했다. 아직 국가 자격증이랄 것이 없기 때문에, 민간 자격증 중에서 그나마 자주 활용되는 ‘반려동물관리사’가 장기 취준생의 인생반전을 도와주었다. 취업 중이라 남은 교육일정이 걱정되었지만 1주에 1번만 수강하기 때문에, 근무 로테이션만 잘 맞추면 괜찮겠다고 여겼다.
“선생님, 저 취업했어요! 그때 말씀드린 그 동물병원이요!”
“단우 씨, 축하드려요! 어떻게 취업된 거예요?”
“면접 때 여기 교육과정을 듣고 있어서, 2주만 있으면 시험을 보고 자격증이 나온다고 했더니 채용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면접에서 이것저것 물어보셨는데 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들이었어요.”
강사님은 함께 뛸 듯이 좋아해 주셨다. 드디어 앞길이 뚫렸다면서 함께 기뻐해 주시고, 동시에 본인이 병원에서 근무하며 얻었던 이러저러한 팁들도 설명해주셨다. 무척 들떠 있어서 잘 듣지 못했지만.
병원에서 퇴근하는 날이면 일찍 집안일을 끝내고 공부를 했다. 병원의 약품들을 공부하는 동시에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증도 공부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즐거웠다. 새로운 인생길에 오른 스스로가 어느 성장물 드라마의 주인공같이 느껴졌다.
“저, 여기 들어오려고 반려동물관리사 공부했어요. 이제 2주만 있으면 시험이에요.”
“아아, 그거 공부하시는구나. 저도 그거 공부했는데.”
“진짜요? 언제요?”
“3년 전에 했었나? 아직 자격증을 따지는 못했어요. 병원일이 워낙 바쁘다 보니까. 그때 한... 80만 원 주고 공부했을까...”
“헉! 엄청 비싸게 등록하셨네요.”
저녁 로테이션 때, 잠깐 짬이 나서 선배에게 자격증 썰을 풀었다. 선배는 같은 자격증을 온라인 과정으로 등록하면서 80만 원이나 지불했다고 밝혔다. 대학교 수업도 아닌데 이렇게 지나치게 비싼 비용을 들여 준비를 하다니. 이렇게까지 공신력 있는 자격증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증 있으면 뭐해. 민간자격증인데. 쓸모가 없지.”
옆에서 대화를 엿듣던 선배가 끼어들었다. 속으로 대꾸했다.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그런 노력이라도 해보겠다는 게.’
퉁명스럽게 속에서 대꾸를 하며 바쁜 척 딴 곳으로 가버렸다. 사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민간자격증은 어느 분야의 관심이 있다는 증표일 뿐이지 어마어마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아직 동물 쪽에서는 국가 자격증이라고 불리는 것이 수의사 외에는 전무하다시피 하고, 이 직종으로 근무하기 위한 필수조건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일단 ‘뭐라도 했다’는 노력의 흔적 정도로 이해되면 좀 좋을까? 그의 비아냥에서 내 노력과 고민의 시간들이 허튼 것처럼 느껴져, 무척이나 슬퍼졌다.
2주 뒤, 드디어 기다리던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증 수험을 치렀다. 생각보다 조금의 난이도가 있어서 ‘돈만 주면 다 따는 자격증’은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 하자는 결심으로 끝까지 엉덩이를 붙였다. 결과는 합격이었고 자격증은 일주일 뒤에 받았다.
무쓸모 자격증, 민간 자격증. 안다,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나의 ‘열심’을 증명하고 사장되지 않으려 발버둥 치려는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이제 겨우 취업에 성공했는데 속사정을 다 들어보지 않고 그것은 쓸모없다고 하면 얼마나 허무한지 헤아려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아직 동물 관련 업종에서는 과제들이 많다. 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더 개선되어야 하고, 근로인에 대한 복지도 더 개선되어야 한다. 개선해나가야 할 것 투성이니, 이 쪽에 진출하려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길을 헤매거나 매우 혼란스러워한다. 조금의 날개짓을 시도하는 많은 분들에게 제발 민간자격증 취득부터 시작해서 무엇인가라도 발돋움판이 있었으면 좋겠다. 대신 터무니없는 ‘80만 원’ 같은 소리는 말고. 그리고 다른 이의 노력을 업신여기는 소리는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