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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단우 May 01. 2020

보호자님,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디디가 쓰러졌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란다.

  “큰일 났어! 디디가 이상해.”


  “뭐? 무슨 일이에요?”


  “디디가 밖(옥상)에서 너무 안 들어오는 것 같아서 봤더니 못 걷는 거야. 그래서 엉덩이를 툭툭 쳤는데 옆으로 넘어지더라고.”


  “뭐?!”


  “근데 넘어지고선 못 일어나는 거야. 막 바닥에서 못 일어나겠는지 바둥바둥거렸어. 이상해서 디디를 들어 안았는데 고개가 축 처졌어. 지금 데리고 병원 왔어.”


  “어떡해!”


  “진료하려고 왔으니까 이따가 전화할게요.”




  이윽고 디디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통화는 끊어졌다. 핸드폰을 쥐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하필 어느 모임의 지방 행사에서 리더를 맡고 있었다.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차는 고사하고 면허도 없는 뚜벅이어서, 행사가 끝날 때까지 내가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일정 중에 걸려온 남편의 전화에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남편은 울먹이면서 디디의 소식을 전했다. 그런 반면, 나는 눈물도 나지 않고 덤덤히 전화를 끊었다. 그렇지만 충격을 받은 몸은 빠르게 반응했다. 나는 헛구역질을 하고 발열감에 시달렸다.




  ‘빨리 전화 좀 하지...’



  “곧 일정 시작합니다.”




  타임키퍼가 부르는 소리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갔다. 다행히 나는 발의할 기회가 없던 때라 침묵하며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10분 정도 지났을 때, 마침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나는 조용히 장내를 빠져나갔다.




  “어, 지금 병원 나왔고. 디디가 치와와 쪽 믹스여서 유전병이 있대. 뇌수막염이라고. 지금 나이가 있는 상황이라 일단 약물 치료를 시도해보고, 안되면 수술이든 하자고 하시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한대. 디디가 약물 치료로 나을 확률이 20% 정도밖에 안된다고 하셨거든.


  “마음의 준비...


  “집에 데려왔는데 목을 못 가누고 못 일어나서, 이불 위에 눕혔어요. 약 먹이는 주사기 가져왔으니까 이따가 약 먹일게요. 밖에 있는데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해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내가 돌볼 테니까.”




  전화를 끊고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물리적인 환경 때문이 아니라도 이틀 간의 약물치료에 효과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디디가 자력으로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을 빌어야 했다. 디디를 보기 위해서는 1박 2일의 일정을 소화한 뒤여야 했고, 그 안에 아이가 떠나더라도 나는 무조건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남편은 디디의 거의 모든 순간들을 사진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일부러 영상을 보내 내 마음의 곁에 디디가 함께 하도록 배려해주었다. 나는 잠잠히 기도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모든 일정이 종료되었다.




  “디디!”




  누워있는 디디를 보면서 감사기도가 나왔다. 디디는 연신 꼬리를 위아래로 파닥거렸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자꾸만 고꾸라졌다. 오른쪽 앞 발에 힘을 주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움직이지 않는 왼쪽 때문에 미끄러져서 바닥에 누워버렸다.




억지로 반기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있어도 돼.
너는 그냥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위로가 되니까.




  나는 반절밖에 움직이지 않는 왼쪽 발이 힘없이 까닥거리는 꼴이 기가 막혔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같이 40분 정도 산책을 다니던 아이였는데. 하루아침만에 반신불수가 된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남편의 바통을 이어받아, 디디의 수발을 책임졌다. 착각일지 몰라도 디디가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다.



  아니,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디디가 파닥거리며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그 조그만 생명은 살기 위해 억지로라도 한 발씩 내디뎠다. 디디는 살아있음을 표현하려고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나 살아있어요!”




  나와 남편은 디디의 몸부림에 박수를 쳤다. 그래, 디디야! 넌 살아있어! 넌 살아있다고! 마음껏 움직이렴. 답답했던 만큼 더 열심히 말이야. 디디는 흔들리는 앞 발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조금씩 걸음을 시작했다. 한 발짝, 두 발짝, 세 발짝. 그렇게 걷더니 이내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걸로 됐다. 충분하다. 디디는 살고 싶다는 의지를, 살아있음의 의지를 혼신의 힘을 다해 표현했다. 이것만으로도 디디의 마음을 알았다. 나는 디디의 마음이 따뜻하고 고마웠다. 기특함보다 감사함이 더 컸다.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몸을 일으키려는 그녀의 결연함이 영혼 깊숙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디디를 토닥이며 안심시켰다. 토닥임에는 고맙다는 인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몇 번의 시도, 꽤 많은 수의 실패. 디디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그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작은 생명의 의지가 갸륵했는지 이틀 동안의 약물치료로 디디는 상당한 호전을 보였다. 처음에는 앞발에 힘이 들어갔고, 얼마 안 되어 뒷다리에도 힘이 단단하게 들어갔다. 내원했더니 선생님은 16살의 노령견에게서 대단한 생의 의지를 볼 수 있다며 놀라워하셨다. 몇 주 정도는 경과를 지켜보면서 재발 유무를 확인하자고 하셨다.



  디디는 다시 쓰러지지 않았다. 다시 쓰러진다면 아마 또다시 밤새 일어나는 연습을 할런지도 모른다. 디디는 그런 녀석이니까. 고집이 센 노인네니까. 사람으로 말하면 심한 중풍이 온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이것을 생에 대한 간절함과 의지만으로 이겨낸 저 개가 참으로 신기하고 감사하고 기쁘다.



  드르렁 거리며 코를 골고 있는 그녀가 나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무엇이건 간에 생은 무조건 소중한 거라고. 그러니 어떤 경우에라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오늘도 디디에게서 삶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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