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단우 May 27. 2020

내 새끼는 나한테만 귀여운 겁니다.

내 새끼가 펫시터를 물 수 있어요. 당신의 아이는 무는 개입니다.

  디디 얼굴에 손을 가까이 대시면 갑자기 물 수 있어요! 디디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마시고 그냥 관찰만 해주세요. 아이랑 일부러 놀아주지 않으셔도 괜찮으니 관찰만 해주시고 딴거 하셔도 돼요!



  생애 첫 해외여행이 잡혔다. 무려 5박 6일의 일정이었다. 나는 펫시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펫시팅 고객이기도 해서, 이번 여행기간에도 마찬가지로 펫시터 서비스를 이용했다.


  펫시터님은 지난번 디디의 펫시팅을 맡았던 땅콩님이었다. 땅콩님은 디디와의 돌봄에서 다양한 노즈워크 놀이를 통해 어르신을 즐겁게 해드린 전적이 있었다.

약 1년 동안 꾸준히 펫시팅 해주신 펫시터님이 익숙해지자, 드디어 안면에 손을 가까이 하는 것을 허락했다.
펫시터님이 강아지어플로 찍어서 보내주신 사진 ㅋㅋㅋㅋㅋㅋ 펫시팅 서비스를 이용해봐야 고객 입장에서 어떤 서비스를 원하는지 알 수 있다.

  디디는 노령화에 따라 시력이 약해지면서 확실히 변했다. 얼굴 가까이 손을 갖다대면 흠칫 놀라거나 심한 경우 입질을 했다. 그전에는 절대 입질을 하지 않던 개였다. 이미 나한테까지 입질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남한테는 더 심각하지 않을까? 펫시팅을 의뢰할 때마다 펫시터님에게 주의사항을 강력히, 그리고 세세히 기록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 디디의 펫시팅을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디디가 나이가 들면서 시력이랑 청력이 떨어져서 가까이 손을 대면 입질을 해요. 저한테 입질을 하니까 아마 선생님한테도 그러실 수 있어요. 위험하실 수 있으니까 가까이 가지 마시고 그냥 멀리서 지켜만 봐주세요. 토하거나 쉬야 싼 부분이 있으면 돌돌 말아서 베란다 옆 세탁기 옆에다만 놓아 주시고, 맘마그릇이랑 물그릇은 물로만 간단히 세척하셔서 새로 채워주기만 하면 됩니다. 맘마는 사료 1스쿱, 물은 정수 버튼 누르시고 미온수로 가득히 채워주세요. 돌봄하시다가 궁금한 것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아, 심심하시면 냉장고에 넣어둔 콜라도 드시고 편하게 쉬면서 관찰하셔도 됩니다! :)



  펫시터의 입장에서는 급여방식, 급수방식, 배변처리법, 응급상황 대처법 등 상세한 내용을 기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아이 시팅을 의뢰하고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연락두절이 되어버려 펫시팅이 진행되기 어려운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급수 방법에 있어서 가정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돌봄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내용은 후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


  아무튼 펫시터님의 안전도 중요하기 때문에 아이의 입질 사항에 대해서, 돌봄내용과 함께 기재했다. 그런 덕분에 펫시터님이 아이와 신뢰관계를 쌓은 뒤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할 수 있었다.




  가끔 <개는 훌륭하다>를 보곤 하는데, 보호자들이 ‘자신의 개는 그렇지 않다’고 착각하는 경우를 본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TV 속 보호자들을 욕하지, 자신의 개도 똑같다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얼마 전에 개그맨 이경규의 엉덩이를 향해 돌진하며 콱 물어버린 강아지 편을 봤는데, 생각보다 그런 개는 많다. 보호자가 인정하지 못할 뿐이지...


우리집 무는 개와 함께

  몇 주 전의 펫시팅에서 기겁을 하는 일이 있었다. 고객님의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그 개는 쇼파 위에 앉아 있었다. 굉장히 꼿꼿한 자세를 취하며 경계심을 보이는 아이에게 팍 느낌이 꽂혔다.



  ‘아, 얘는 이 집 서열 1위구나.’



  아이의 정보를 다시 보려고 펫시팅 어플을 켜서 고객님이 적어놓은 글을 훑었다. 낯선 사람과 잘 어울리고 사교적이며 친밀한 성격... 그렇지만 아이는 치아를 드러내고 코를 찡긋이며 공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로이야, 안녕!”



  아이는 인사를 무시하고 꼬리를 치켜 세웠다. 공격 태세였다. 입실을 한 상황에서 펫시팅을 포기할 수 없어서 뒷걸음질 쳐 화장실로 피신했다. 손에 묻은 소독약 냄새를 씻어내고 나오니 아까처럼 으르렁 거리지 않았다. 아이와 인사를 하려고 쇼파 아래에 앉았다. 개는 나를 깔보며 내려봤다. 아하하, 사교적이라면서요. 낯선 사람도 좋아한다면서요. 왜 고객님의 개는 무는 개인걸 인정하지 않나요.


  정해진 돌봄 시간이 지나고 마무리한 뒤 퇴실했다. 돌봄일지에는 아이가 경계하느라 친해지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아쉬웠다, 아이랑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와서 다음 돌봄 때 더 잘 놀아주겠다고 거짓말을 썼다. 그렇지만 속마음은 이랬다.



  ‘보호자님, 아이는 사회성 훈련이 필요해요. 사람을 잘 무는 개여서 위험하거든요. 입질 방지를 위해 머즐을 꼭 구비하셔야 해요. 아마 보호자님한테도 몇 번 입질을 하셨을 것 같아요. 보호자님에게 그러셨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위험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요. 아이는 돌봄보다 훈련이 더 필요합니다. 저도 돌봄시간 동안 5번이나 물렸거든요. 그리고 아이와 놀아주려고 가져온 장난감을 회수하려다가 추가로 몇 번 더 물렸어요. 소유물에 대한 이해와 집착을 해소하는 교육이 필요해요.’




  보호자들은 알아야 한다. 개의 본능에 사냥이 있다는 것을. 모든 개들은 무는 개들이다. 훈련이나 교육이 부족한 아이는 사냥본능이 펫시터를 향할 수 있다. 어찌보면 사람 아이를 양육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 아이가 밖에서 어른을 때렸는데도 ‘우리 아이는 착해요’라고 덮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보호자님들! 펫시팅 전에 우리 개가 사람을 문다는 것을 인정해주세요. 그리고 우리 개가 낯선 사람과 친하다고 판단하기 전에 생각해주세요. 보호자님이 없을 때, 우리 개의 모습은 어떠한지 말입니다. 그게 진짜 우리 개의 모습이에요. 디디의 진짜 모습은 사람을 무는 개입니다.

이전 09화 애견훈련소에서 당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