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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태연 May 25. 2020

애견훈련소에서 당했다!

들뜬 마음으로 애견훈련소를 찾았다. 앞날의 시련은 예상하지 못한 채...

  “으허억!”




  허공에서 비명소리가 맴돌았다. 눈 앞에 있던 까만색 래브라도가 정면으로 안면을 강타했다. 녀석은 해맑게 꼬리를 살랑이며 웃었다. 녀석은 나를 공격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저 이 훈련이 '놀이'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빨리 놀자며 박치기를 들이받은 것이었다. 입술에서 알싸한 피 맛이 났다. 나중에 화장실에서 거울로 보니 입술 안쪽이 찢어져서 피가 흘렀다.






  펫시터 훈련 중에 산책 실습을 위해 한 애견훈련소를 찾았다. 애견훈련소에는 소형견사, 대형견사로 나뉘어 있는데 우리팀은 대형견사에서 훈련을 했다. 훈련소에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멍멍 짖는 소리가 났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제 시작이구나'하는 긴장감, 흥분 그런 감정들이 올라왔다. 이미 저 멀리에서부터 대형견들이 울타리 위로 훌쩍 발을 올리고는 웃고 있었다.



놀아줘! 나랑 놀아줘용! 훈련? 그거 먹는건가?







   "기다려."




  훈련사님을 따라 들어온 실습장에서는 훈련견이 눈을 반짝이며 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훈련견은 훈련사님의 명령에 따라 이리로 오기도 하고 저리로 가기도 하면서 간식을 쏙쏙 받아 먹었다. 훈련사님은 우리가 한 명씩 나와서 자신과 똑같이 해볼 것을 권하셨다. 한 명, 두 명, 세 명, 드디어 내 차례! 긴장이 되다보니까 아이를 붙잡고 있는 리드줄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초보티를 내지 말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지만 떨림을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기다려. 가자. 잘했어!"




  훈련이 잘 된 아이는 어설픈 주문에도 곧잘 따라와주었다. 아이는 훈련사님이 던진 공을 물어와서 발 앞에 내려놓고 꼬리를 살랑이며 기다렸다. 훈련사님은 보상으로 트릿이나 사료 등을 주면서 아이를 칭찬하셨다. 훈련사님은 산책할 때도 마찬가지로 보상이 반드시 있어야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힘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무작정 말을 듣지 않는다고 디디에게 짜증냈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했어'하는 칭찬과 간식 보상을 동시에 해야 효과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파블로프의 개'의 원리에 대해 자세히 풀어 설명해주셨다.



난 여기서 기다릴래! 일단 간식을 주면 내려가겠다, 집사야.







  실내 훈련이 종료되고 점심시간을 가졌다. 점심시간 이후에는 대형견 아이들과 함께 야외 산책 훈련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이 훈련을 통해 산책 테스트를 진행하고 비로소 펫시터 활동의 자격 유무가 결정된다고 했다. 시험이라는 생각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밥이 목구멍에 들어가지 않아 몇 입 먹다 다 남기자, 훈련사님이 '그렇게 드시면 나중에 허기져요. 힘 많이 쓰셔야 하는데...'라고 하셨지만, 원래 조금 먹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드디어 실외 산책 훈련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씩 견사에서 풀려나와 운동장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우리는 각각 한 마리씩 담당하며 나란히 산책을 걷는 훈련을 했다. 서로를 교차하며 지나가면서 억지로 바디블로킹 (몸으로 아이의 시야를 가리는 기술)을 사용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지나칠 수 있도록 우회하는 방법으로 산책을 진행했다. 아이가 억지로 리드줄을 끌고 가려고 할 때, 주도권이 도그워커(나)에게 있음을 알리기 위해 리드줄을 반대로 당기는 훈련도 했다. 이건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잘 하는 실수인데, 나도 훈련을 받으면서 그동안 디디에게 주도권을 주면서 걷고 있었구나 하는 실수를 깨달았다. 심지어 리드줄을 쥘 때도 실수들이 꽤 있어서 자꾸 지적되어 교정받았다.



훈련사님의 유혹에 거뜬히 넘어가는 아이와 컨트롤 하는 실습생.  유혹을 잘 이겨낸 아이에게는 간식보상과 무한한 쓰담쓰담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책 훈련을 하면서 중간중간 아이들을 쉬게 하고 목을 축이게 했다. 착하게도 아이들은 훈련을 잘 따라주었다.



  산책훈련이 2시간 정도 지났을까? 이제 본격적인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는 아이의 견사로 들어가 목줄을 채우고 나와서 어질리티 놀이처럼 장애물을 요리조리 지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중간에 잠시 기다리도록 한 뒤,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산책돌봄 때, 보호자에게 전송할 사진을 찍는 연습이었다. 세 번째는 실습생들이 간식이나 터그놀이 장난감 등으로 유혹하면 아이를 잘 컨트롤해서 목적지까지 도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어렵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머리속의 시뮬레이션과 현실은 달랐다. 아이는 목줄을 피해서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기도 하고 멋대로 견사를 탈출하려고도 했다. 다른 실습생들의 얼굴이 십 년은 더 늙은 듯 해보였다.



  마지막 순번으로 내가 나설 차례가 되었다. 떨리는 손으로 견사의 문을 짚었다. 훈련사님들과 실습생들의 시선이 등 뒤로 느껴졌다. 동시에 옷 속으로 땀들이 구슬처럼 또르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산책가자~"




  긴장감을 감추려 억지 웃음을 지었다. 거친 호흡 때문에 필터 마스크가 입술에 붙었다가 떨어지지 않았다. 까만 래브라도는 이전에 실습생들과 숱한 훈련을 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약간 힘이 빠져있는 느낌이었다. 얼른 아이의 목에 목줄을 걸고 조임 정도를 체크했다. 견사 문을 열고 나오면서 아이가 먼저 문 밖으로 튀어 나오지 않도록 조심했다. 아이는 순순히 잘 따라와주었다. 1차 관문인 장애물 피하기는 성공적이었다. 중간에 아이와 잠시 멈춰서서 사진을 찍는 과제도 성공이었다. 아이는 매우 예쁘게 사진 찍혔다. 이번에는 아이가 외부 자극에 반응하지 않도록 컨트롤 하면서 산책하는 것이었다. 고도의 집중력과 힘이 필요한 과제였다. 무엇보다도 이 코스를 무사히 지나야만 합격이 가능했다.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유혹에 무너졌다. 아이의 눈 앞에 간식이 흔들리자 아이는 그쪽 방향을 향해 무작정 내 몸을 휙 하고 이끌었다.




  "어어... 안돼. 가자. 가자니까. 까망아 가자."




  아이의 고개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낑낑대는 꼴을 보더니 훈련사님이 다시 시작하자고 도와주셨다. 그렇게 다섯 차례. 머리는 백짓장처럼 멍해지고 더이상 온 몸에 아무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심지어는 리드줄을 잡는 방향도 엉터리로 하고 있었다. 눈이 풀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이가 내 주변을 빙빙 돌면서 줄을 잔뜩 꼬아놔서 자칫 넘어질 뻔 하기도 했다.


  훈련사님이 이상한 감을 눈치채고 천천히 하자고 가이드 해주셨다. 곁에서 관찰하시면서 필요한 부분을 교정해주셨다. 한 번에 잘 따르지 못하고 같은 부분에서 어버버거리고 있으니 차분히 따라올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셨다.





  이윽고 아이를 견사까지 넣고 목줄을 제거하면서 완전히 훈련이 끝났다. 물론 아이는 마지막까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목줄을 빼내려 하는 내 얼굴에 정면으로 박치기를 들이 받았다. 훈련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살펴보니 입술 안쪽과 잇몸이 찢어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무튼 훈련을 끝내야 하니, 아이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제자리에 앉히고 목줄을 조심스레 빼냈다. 녀석은 지쳐서 헥헥거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고생했다고 나지막히 속삭여주었다.



  우리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의 산책을 진행하는 일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였다. 개를 20년 이상 기르면서 매일 산책을 나갔던 것도 모두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개에 대해서 알고 있던걸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겠다며 반성했다. 훈련사님들도 테스트 결과를 보고 이대로는 안되겠는지 일단 대형견 말고 소형견부터 차근차근 업무를 시작하자고 제의하셨다. 나도 산책 경험을 더 쌓은 뒤에 대형견을 맡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쉽지않은 시작이었고, 꽤나 곤욕적이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산책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대로 과연 펫시팅이 가능할까? 불안감이 엄습하는 가운데,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첫 의뢰가 들어왔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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