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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자씨 Mar 17. 2024

Episode-6: 오로라와 사람들

무작정 퇴사하고 오로라 보러 간 노총각 이야기#7

혼자서 처음 떠나는 여행


혼자서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혼자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시간 여유가 있었던 친구와 동호회 동생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오로라'는 간절하지 않았기에 '오로라'를 보기 위해 그만큼의 시간과 비용은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이다.


'오로라' 보러 가는데 굳이 꼭 누구랑 같이 갈 필요는 없겠지.

오롯이 혼자만의 여행도 나쁘지 않을 거야.

이 멋진 오로라를 사진을 보면 누구라도 가보고 싶을 것 같은데...


낯선 곳에서 인연을 만날 수 있는 확률.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니 주위에서 혹시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인연이 생기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드라마와 영화 탓인지, 혼자 여행을 가면 그런 일이 잘 생길 것 같다는 환상이 있는 것 같다.

심지어는 비행기 옆자리에 대한 환상도 많은데, 해외 출장을 수십 번 다녔지만, 말을 걸고 싶을 만한 여자사람조차 내 옆자리에 탄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해외여행을 혼자 가보지 않았거나, 비행기를 자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그런 환상이 남아 있나 보다.

혼자 여행온 나이 많은 남자에게 누가 함부로 말조차 잘 걸지 않을 것 같기에 이번 여행에서 나는 나에게 그런 일이 절대로 생기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는 그냥 기내식이나 즐기자.


오로라와 사람들


우연한 인연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저 먼 나라 캐나다 북쪽 한가운에 있는 옐로나이프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그 사람들이 왜 오로라를 보러 여기까지 왔을까?

둘째 날 만났던 일행이 찍은 오로라 사진


옐로나이프에 도착한 첫날 마침 혼자 여행온 학생이 있어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로 해서 오로라 빌리지에서 같이 돌아다니며 그나마 오로라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그 친구가 없었다면,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을 것이다.

나이 많은 노총각과 함께 놀아준 그 친구가 너무 고마워서 오로라빌리지에서 컵라면을 사줬다. 비싼 건 아니지만 오로라빌리지에서 즐길 수 있는 별미다.

삼각대도 없이 찍어 흔들렸지만, 너무 선명해서 눈물이 나게 아름다웠던 첫날밤의 오로라.


둘째 날 낮에 개썰매와 스노슈잉 체험을 하러 낮에 오로라빌리지를 가는 버스 안에서 또 다른 여자 대학생을 만났다. 보통 오로라 빌리지로 이동할 때 보통 내 옆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내 옆에 누가 앉아서 살짝 놀랬다.

토론토에 어학연수 왔다가 오로라를 보고 싶어서 옐로나이프에 왔다고 한다. 개썰매와 스노 슈잉체험을 하고 저녁에는 오로라 헌팅을 간다고 했다.

그리고, 개썰매를 함께 탔었던 한 커플은 신혼여행을 왔다고 한다.

오로라 보기가 여자분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이며, 신혼여행을 버킷리스트 즐기는 것으로 하기로 했단다.

무척이나 부러웠다. 혹시나 나도 나중에 이렇게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개썰매 출발 직전,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지만 출발 전에 긴장감을 북돋는다.

둘째 날 저녁에 같은 티피에서 얘기를 나누었던 사람들 줄에 한 모녀가 생각난다.

둘이 함께 캐나다 일주를 하고 있다고 했다. 벌써 여행한 지 한 달째라 한다.

캐나다의 또 다른 유명 관광지인 밴프를 다녀왔고, 다음 여행지는 뉴욕이라고 했다.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은커녕 부모님과 제대로 된 여행을 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 모녀가 너무 부러웠고,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살짝 기분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가져간 화이트와인을 홀짝이며 오로라를 만끽하며 이내 다시 행복감을 되찾았다.

오로라를 사진을 찍는 사진을 찍은 사진
잃어버렸던 짐을 찾아 간이 삼각대 덕분에 둘째 날부터 좀 더 선명해진 사진


세 번째 그리고 마지막 밤


셋째 날 저녁 오로라를 보러 가는 버스. 당연히 내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다른 호텔에서 사람들을 추가로 더 태우는데 누가 내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뭐지 하고 옆을 보니 어제 개썰매 같이 탔던 대학생이었다.

"제 벌써 얼굴 잊어 먹었나요?"

라고 당차게 먼저 인사를 건네던 그 대학생이 이번 여행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눈밭에 드러누워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했던 학생이 우연히 내 사진에도 들어왔다.

오로라 빌리지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한 아주머니는 토론토에 살고 있는 딸이 아기를 낳아 봐주러 왔다가 아기 보기 힘들어서 오로라 보러 왔다고 한다.

그 아주머니와의 인연으로 마지막날 저녁 다른 일행들과 옐로나이프에서 최후의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오로라빌리지에 구비되어있는 간이 의자들
오로라는 아니지만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나온 사진
X 오로라!

마지막 날 밤에는 날이 흐려서 오로라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래도, 2~3일 함께 했던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어서 티피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날 합류한 3대가 함께 여행온 대가족 일행이 있었는데, 역시나 대가족이라 그랬는지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는지, 너무 본인들만 생각하는 언행으로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핫팩도 제대로 안 챙겨 와서 춥다고 하길래 내가 가지고 온 핫팩도 드렸으나, 별로 고맙다는 표현도 없었고, 밖에 오로라 보러 나갔다 오니 난로 근처에 잡은 내 자리도 그냥 빼앗아 버렸음에도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가이드에게 내일 가능하면 티피하나를 자기 가족들 전용으로 아예 통째로 빌려달라는 요구를 했다. 돈은 얼마든지 낼 수 있다며... 그럼 조용히 단 둘이 이야기하든지 오로라빌리지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하던지. 어쨌든 가이드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세상에 재수 없는 사람들은 어디든 존재한다.

희미했던 마지막 날 밤의 오로라

재수 없는 사람들과 더 이상 함께 있기 싫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사람이 없는 언덕으로 가서 눈밭에 그냥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날이 흐려서 별이나 오로라와 함께 하지는 못 했지만, 그 어떠한 소음과 빛도 없는 하늘 아래 눈밭에 누워 있는 그 시간이 꿈만 같았다.

잘 있어라 오로라빌리지, 언젠가 다시 올 수 있기를 바라며...

오로라를 좀 더 볼 수 있었으면 투어시간을 좀 더 연장했을 텐데, 마지막날은 날씨 때문에 선명한 오로라는 볼 수 없어서 예정된 시간에 숙소로 돌아갔다. 내일 새벽에 밴쿠버로 떠나야 해서 짐 싸기도 마무리해야겠기에.


돌이켜보니 첫째 날 오로라가 가장 선명했었다.

가이드가 이야기하길 지난주에는 오로라를 거의 볼 수 없었다고 하니,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운이 좋았던 사람의 캐나다 옐로나이프에서의 여행은 여기서 끝!

오로라! 이리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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