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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 Feb 13. 2024

교실에서 식물을 가꾸며

<적당한 거리, 전소영, 달그림>

해마다 3월이면 늘 분주하다. 학교의 3월은 일년의 시작이다. 특히 이번 3월은 학교를 옮기는 해여서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이삿짐을 용달차에 가득 싣고 새로운 학교, 새 교실로 이사를 갔다. 밝은 햇살이 넓은 유리창으로 가득 쏟아지는 곳, 4층 남향 교실이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다. 제일 먼저, 아끼는 초록 화분들을 조심조심 창가에 올려놓았다.

‘얘들아, 이제 여기가 너희 집이야. 햇살이 참 좋지?’

한참을 걸려 가지런히 자리를 잡은 초록 식물들에게 기분좋은 인사를 건넸다. 

호야, 스킨답서스, 나비란, 몬스테라, 고사리, 개운죽, 스투키, 고무나무, 금전수...

모두들, 새 교실이 마음에 드는지 바람결에 싱그러운 초록향을 내뿜는다.     

아이들이 아직 오지 않은 이른 아침, 제일 먼저 교실에 들어서면 늘 같은 시작이 반복된다. 초록이들에게 인사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 햇빛과 바람을 맞이하는 일! 

그 순간이 참 행복하다. 식물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고, 시든 잎을 정리해주는 일들은 잔잔한 물결처럼 내 마음을 따스하게 휘감는다. 하루를 햇살과 바람, 초록 식물들과 함께 시작할 수 있다는 건 참, 좋다.     

3월 어느 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짧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왕자와 기사, 상인의 청혼을 받은 소녀가 그들의 마음을 거절하지 못하고, 꽃으로 피어난 이야기. 꽃잎은 왕자가 주고 싶어한 금관의 모습을 하고, 잎은 용감한 기사의 칼을 닮았으며, 뿌리는 돈 많은 상인의 황금을 닮은 꽃, 바로 튤립의 전설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준비한 투명 플라스틱 컵과 튤립 구근을 나누어 주었다. 투명 물컵에 구근을 올려놓고 살짝 물에 잠기게 한 다음, 아이들과 함께 가만히 지켜보았다. 차가운 3월, 그 싸늘한 기온 속에 구근은 서서히 싹을 틔웠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자 드디어 구근은 날렵한 초록 잎을 가진 한 송이 튤립으로 피어났다. 화려하면서도 고결한 튤립, 색색의 향연이 교실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함께 키운 보랏빛 히야신스 꽃들도 은은한 향기로 교실을 채웠다. 창가에 가지런히 피어있는 봄꽃들과 초록 식물들! 봄은 그렇게 우리들 곁으로 찾아왔다. 

봄을 맞은 교실은 그 어느 때보다 따스했다. 튤립의 꽃봉오리를 보며 함께 김지안 작가의 그림책 ‘튤립호텔’을 읽었다. 다 읽고 나자, 한 아이가 우리도 그림책에 나온 것처럼 봄 축제를 열자고 제안했다. 순식간에 온 교실에 튤립 열풍이 불었다. 미술 시간, 색종이로 튤립을 접어 교실을 꾸미기로 했다. 모두들 알록달록 튤립을 접느라 분주할 무렵, 채영이가 다가와 종이 튤립 몇 송이를 선물이라며 내밀었다. 튤립을 받아들고 웃으며, 무심코 말했다. 

 “얘들아, 빨간 튤립 꽃말이 뭔지 아니? 영원한 사랑의 고백이야.”

순간, “오~~!” 하는 탄성과 함께 아이들의 눈이 빛났다. 쉬는 시간, 우리 반 최고의 인기남 지원이는 여자친구 시율이 책상 위에 직접 접은 튤립 꽃다발을 올려두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시율이와 반 아이들의 환호성으로 교실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이후 아이들은 꽃이나 식물들에 대해 더 관심을 보였고, 과학 시간의 강낭콩 기르기 활동과 식물원 체험학습에도 즐겁게 참여했다. 우리 반을 “정글”이라며 다양한 식물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도 많아졌다. 

교실의 식물들을 돌보며 나 역시 달라졌다. 강낭콩을 심어 작은 강낭콩을 수확하기까지의 과정, 뿌리파리와 총채벌레 등을 겪으며 마음을 다한 돌봄과 사랑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끼는 식물들이 좀 더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듬뿍 물을 주고, 쨍쨍한 햇볕을 가득 비춰주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좀 더 잘했으면 해서, 촘촘한 학급 규칙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하지만, 내 마음이 그대로 현실이 되지는 못했다. 넘치는 사랑만큼 물을 준 화초는 잎이 누렇게 변하거나 검게 타 들어갔고, 아이들은 욕심껏 준비한 과제나 프로그램을 힘들어했다.     

무엇이 사랑이고 관심일까? 어떻게 하는 것이 잘 돌보는 것일까?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는 책의 한 구절이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나의 사랑이 사랑의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사랑이 아닐 것이다.      

흔히들, 키우던 식물이 죽는 이유는 물을 제때 주지 않아서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식물을 위하는 마음으로 물을 너무 많이, 자주 주기 때문에 식물의 뿌리가 과습으로 죽는다.

아끼던 식물 몇몇을 과습으로 보내고 나서, 식물을 돌보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식물이 제대로 살 수 없는 것처럼 과도한 애정과 관심은 오히려 아이를 망칠 수 있다. 교실에서 만나는 학급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매일 꾸준한 관심과 애정으로 바라보되, 과하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전소영 작가의 그림책 <적당한 거리>에서 보듯, 식물은 모두 제각각이다. 햇빛을 좋아하는 식물, 음지를 좋아하는 식물이 있고, 물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기도 한다. 

모든 존재들은 각자의 다름이 있다. 그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조금 멀리, 상대와의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너무 과하지도,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사랑해야 한다. 그러한 존중과 배려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방법일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식물을 기르며, 오늘도 내 삶의 관계와 거리를 생각한다.

내 사랑이 상처가 되지 않기를, 적당한 거리로 상대를 존중하며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기를.

햇살 아래 작은 꽃잎을 펼치는 식물을 바라보며 오늘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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