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무언가 한 가지에 굉장히 집중하는 편이다. 수영할 때는 오직 수영만 생각했고 책을 읽을 때는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자투리 시간엔 책만 생각하고 틈날 때마다 읽었다. 어쩌다 보니 책 읽기에 약간 질려버린 시점이 왔고 읽고 쓰는 일에서 잠시나마 멀어졌다. 그 공백을 채운 건 아이러니하게도 당근마켓이었다. 물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나에게 당근마켓이야말로 크나큰 놀이터였다. 많이 사고 싶은데 돈은 없고, 돈은 없지만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 마음이 허하다고 해야 할까. 사색이 사라진 머릿속 공간을 물욕으로 채운 것만 같이 마켓을 들여다보는 일에 집착하게 되었다. 특별히 사야 하는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언가 한가지 사고 싶다면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올 때 사지 못했던 나를 위한 선물, 가족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돈이 없어서 사지 못했던 나를 위한 선물. 사지 못한 그 무언가가 응어리로 남아 나를 이렇게도 괴롭히나 싶었다. 떠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선물이고 행복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떠나고 나면 물질적인 무언가도 가지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 걸까.
2023년 9월, 코로나 시대를 벗어나 오랜만에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떠난 사람은 남겨진 사람을 위해 선물을 사가야 하는 게 출장의 순리. 모두가 남자 직원이고 나만 여자였기 때문에 그들이 사는 선물과 내 선물은 확연히 달랐다. 와이프를 위한 명품 지갑, 신발, 목걸이를 사는 남자들 틈에서 아이들을 위한 레고, 요리하는 남편을 위한 주방용품, 부모님을 위한 건강식품 등 가족을 위한 선물을 사는데 자유시간을 많이 흘려보냈다. 그렇지 않은 시간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며,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는데 소비하였기에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선물이라 생각하고 출장을 마쳤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는 이상하게도 그때 사지 못한 명품가방, 지갑, 목걸이 등 왜 나를 위한 선물을 사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무엇보다 크게 남았다. 해외 출장을 가면 꼭 내가 사고 싶은 걸 사야 한다고 생각했던 지난 생각과 다르게 현실의 나는 가족부터 챙기고 있었다. 한정된 시간으로 인해 순서대로 선물을 사고 나니 정작 나를 위한 선물을 살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 생각이 약 한 달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 뭐라도 살걸 나는 왜 안 샀지?
그리고 10월, 올해는 남편의 육아 휴직으로 여유 시간이 많고 돈은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나란 사람이 돈이 없다고 모험을 떠나지 않았던 때가 있었을까. 없는 돈을 긁어모아, 앞으로 나올 인센티브까지 긁어모아 가족 첫 해외 여행을 떠났다. 오직 물놀이와 먹고 자는 일상만 있었던 여행에서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다.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했고, 끝없는 물놀이는 모든 스트레스를 날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비행기 삯도, 환율도 너무나 올랐기에 예약 당시보다 15만 원이나 더 주고 리조트에 들어갔다. (방값의 하루치만 선결제해 둔 상태였다.) 밥값도 간식값도 술값도 모든 것이 비쌌기에 쇼핑은 사치라 생각되는 여행이었다. 그럼에도 꼭 필요한 몇 벌의 옷을 샀고 아이들에겐 장난감을 선물했다. 옷을 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고 싶었던 건 결국 가방이었던 것 같다. 두 번의 해외여행을 통해 결국 내가 사고 싶었던 건 명품이었다는 걸 뒤 늦게서야 발견했다. 그것도 당근마켓을 통해서.
특별히 살 것도 없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계속 명품 가방을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돈도 없는데 뭘 사고 싶은 거야 도대체. 공허한 마음을 물건으로 채울 수 있을까. 자존감 떨어진 내 상황이 명품 가방 하나 걸친다고 달라질 수 있을까, 당당해질 수 있을까. 결국은 현실의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보상 심리로 명품 가방 하나 가지고 싶은 생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핑계, 저 핑계 다 들어가며 가지고 싶은 게 오직 가방뿐이었을까. 내가 얻고 싶은 건 결국 자기만족이었다. 언제나 자신 있고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만족감. 당근 마켓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선 결국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잘 알기에 다시 책을 읽기로 결심해 본다. 잠시 신나게 잘 놀고, 중고 용품이지만 사고 싶은 것들 실컷 사고, 아직 사지는 못했지만 명품가방을 충분히 탐색한 시간이었다. 이제 다시 마음의 기쁨 가득하게 읽고 쓰는 여네니로 돌아갈 시간임을 이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