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육아휴직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남편의 육아휴직이 시작됐다. 첫째를 낳고 복직하던 시점, 어린이집 입소 시기가 맞지 않아 두 달 남짓 육아휴직에 들어갔던 남편이 5년 만에 다시, 1년의 긴 육아휴직 시간을 가졌다. 남자의 육아휴직은 아이 돌봄의 목적도 있었지만, 부지런히 달려온 삶에 잠깐의 쉼을 선물하기도 한다. 아무리 남녀 평등의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평생 아들로, 한 집안의 가장으로 집안을 책임지며 살아갈 우리네 남자들의 인생에도 때론 쉼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싶다. 그 고단함을 알기에 일 년 동안 내가 우리 집의 가장이 되기로 했다. 남편의 휴식과 취미 생활 또한 지지하기로 마음먹었기에 그간 배우고 싶었던 운동을 시작하고 필요했던 볼일을 보는데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토를 달지 않았다. 비록 집안이 어질러져 있어도, 식사 준비가 소홀하더라도 남편이 내게 그랬듯 어떤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오랜 자취 생활로 나보다 훨씬 독립적인 사람이었기에 꼼꼼하고 말끔하게 집안일과 육아를 해내었다. 덕분에 야근도 출장도 자유롭게 행하며 편안하게 회사 생활을 이어 나갔다. 양가 부모님이 타지에 계시기에 뭐든 스스로 해내야 했던 우리 부부의 삶에 약간의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랄까. 많은 양의 돈을 정신없이 벌어 나가기보단 현재의 삶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기쁨을, 조금 느리게 나아가는 여유를 남편의 육아휴직 동안 찾았던 것 같다. 적게 벌고 덜 쓰면서 순간의 기쁨을 찾는 일. 초등학생이 된 아이의 하교 시간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랐다. 예체능 중심의 방과후 과정과 학원을 마치고 아빠와 함께 즐겁게 귀가했던 아이는 집에서 수학 문제집을 풀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면서 아빠와의 시간을 즐겼다. 작은 아이는 다섯 살이 되면서 새로운 유치원에 적응해 나갔고 남들 다 하듯 자연스레 4시에 하원하는 일상을 살아갔다. 그렇게 부녀간의 사이는 돈독해졌고 아이들은 안정적으로 자라나갔다. 그 어떤 조부모의 도움보다 부모가 직접 양육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는 소중한 일 년이었다. 남편의 육아휴직 덕분에 복직 후에도 아이들 등·하원의 어려움이 사라졌다. 아침의 전쟁 같던 시간이 절도 있는 아빠의 지시로 척척 진행되어 남편도 아이들도 큰 거부감 없이 아침 시간을 준비하게 되었다. 덕분에 남편의 복직과 동시에 남편은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며 아침 시간을 챙기고, 나는 7시에서 4시까지 근무하며 하원 이후의 생활을 챙기는 게 가능해졌다. 어쩌면 짧고 어쩌면 길었던 1년의 휴직 동안 남편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많은 것을 지원할 수 있는 진정한 아빠로 거듭났다. 덕분에 내가 챙겨야 할 많은 것들이 줄어들어 나 또한 편안해졌으니 만나는 이들에게 남편의 육아휴직을 적극 권장한다. 모든 걸 내가 해야지, 엄마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생각이 무색할 만큼, 아빠의 육아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아이는 부부가 함께 키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