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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네니 Oct 27. 2024

비움이 필요할 때

집안청소

정리와 비움에 서툰 편이다.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받은 손 편지, 학생증, 교복에 달고 다닌 명찰에서부터 아이들 어린 시절 애착이 담긴 인형, 또 언제 쓸지 몰라 버리지 못하는 소품과 책까지 이고 지며 살아가고 있다. 집안의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선 비움이 필요한데 비우지 못하니 깨끗할 리 없다. 여기를 열어도 저기를 열어도 잡동사니가 한가득이다. 남편은 이런 나를 보며 절레절레 하지만 추억은 소중하고 한번 버린 물건은 되돌릴 수 없다. 이런 내 생각을 변하게 한데는 청소의 몫이 크다. 귀한 시간을 쪼개어 청소하려고 문을 열었는데 물건이 많아 청소하기 힘든 상황을 마주하면서 과연 이 물건들을 언제까지 가지고 살아야 할지 의문이 들었다. 열어보지도 않는 더 많은 물건을 둘러보며 이 상황을 진지하게 마주했다. 한번 두번 이사를 하면서 필요 없는 물건을 거르고 버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물건 또한 틈만 나면 버려도 될지 물어보고 동의하면 미련 없이 버렸다. 그런데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복병을 만났다. 그것은 바로 책. 취미로 책을 읽는답시고 한 권 두 권 사 모은 책, 손에 들고 다닐 만큼 작은 책 한 권이 모이고 쌓여 장벽을 이룰 만큼 늘었다. 아이들 책도 마찬가지다. 어린 날엔 대부분 전집 책을 활용하기에 전집 몇 질만 넣어도 책장이 가득 차게 된다. 어느 날은 방마다 곰곰이 살피며 집을 둘러보는데 이 방에도 책, 저 방에도 책, 드레스룸까지 책으로 찬 모습을 보며 문득 갑갑한 생각이 들었다. 책 육아, 문해력 향상, 취미 생활, 모두에 책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과연 이 책 중에 또다시 꺼내서 읽고 또 읽는 책이 얼마나 될까. ‘언제 또 읽을지 몰라서’라는 미련이 이 책들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책장 틈틈이 쌓인 먼지를 청소하기 힘들어서, 먼지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가 기침할 때마다 집 안을 깨끗이 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 물건을 덜어내기로 했다. 물건이 없어야 청소하기 수월하고 정리할 물건이 사라지면 내가 편안해지는 지름길임을 인지하고 드레스룸 한쪽에 있는 책꽂이 앞에 앉아 읽지 않는 책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인터넷 서점의 중고 판매 창을 열고 책꽂이의 책을 솎아냈다. 읽지 않는데 돈이 될 것 같은 책은 미련 없이 박스에 넣었다. 아이들의 책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좋아했지만 지금 읽지 않는 책, 그러나 인기가 있으니 높은 금액으로 되돌려주는 책을 골라 중고 판매로 몇 번을 정리했더니 10만 원의 포인트가 생겼다. 버리기 아까웠던 책들도 막상 돈으로 돌려받으니 아까웠던 마음이 바뀐다. 앞으로는 깨끗이 읽고 환급받아야지. 덕분에 오늘의 청소 포인트가 한 곳 줄어든 것 같아서 마음이 홀가분하다. 아이 키우느라, 집안일하느라, 일하며 청소까지 신경 쓰기 힘들지 않았던가. 이참에 주변을 둘러보고 물건을 비워볼 것. 노동과 스트레스가 한 줌보다 더 크게 줄어들 것이다. 또다시 휴일이다. 오늘도 무엇을 비울지 집안을 어슬렁거리며 주변을 둘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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