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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네니 Oct 27. 2024

동쪽 출근 서쪽 퇴근

워킹맘 일상

새벽 5시 눈을 떠 출근 준비를 하고 아이들 가방에 넣을 물을 챙기는 일로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 둘째를 낳고 복직하면서 남편과 함께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패턴을 유지했을 때부터, 남편의 육아 휴직으로 아이들의 등원 걱정 없이 여유로운 아침 시간이 있었을 때도 새벽 6시에 일어나 한 시간 남짓의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곤 했다. 하지만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남편의 복직으로 나는 7시에 출근하여 4시에 퇴근하고 남편은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서로 다른 루틴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아늑한 내 공간에 앉아 아침의 고요한 시간을 맞이하는 행복은 사라졌지만, 아침 등원 준비는 온전히 남편 몫이 되어 아침마다 입을 옷을 고르느라 전쟁을 일으키는 정신 없는 분위기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감소된 느낌이 들었다. 상대적으로 등원 시간이 늦고 자유로웠던 유치원 시절에는 더욱이 이 옷을 입을까? 저 옷을 입을까를 고민하고 싸우면서 아침의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그 또한 다 추억 속으로 사라졌음을, 여전히 옷을 고르느라 분주하지만, 옷에 크게 관심 없는 나에게 그보다 고통의 시간은 없었기에 그 전쟁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이 상승했다. 그렇게 소소한 스트레스를 벗어나 허물 벗듯 집을 나서 도착하는 곳은 다름 아닌 회사 한편의 내 자리. 이곳에 앉게 된 지도 어느덧 십 년이 훌쩍 흘렀다. 대부분의 시간 닭장 속에 갇힌 듯한 갑갑함을 느끼지만, 이곳이야말로 남편과 나를 이어주고 아늑한 집을 가지게 해 주었으며 사랑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도움 준 내 삶의 터전. 스물아홉의 나이로 이곳에 왔을 때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워킹맘에게 직장은 어떤 의미일까? 자아실현의 공간? 생활비를 벌어다 주는 곳? 일터는 모든 사람에게 다른 의미를 가져다주겠지만, 나에게 직장이란 엄마라는 타이틀에서 잠시 벗어나 나로 살아갈 시간을 제공해 주는 곳이라 생각된다. 잘하면 인정받고 못하면 질타받겠지만 온전한 내가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 곳. 오롯이 존중받는 나로 살아가게 해 주는 곳이 직장이고 부모라는 타이틀을 벗어나 완전한 내가 되는 곳 또한 직장인 것이다. 그곳에서 하루의 1/3을 머무른 덕분에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제나 일하기 싫다는 말을 외치면서도 회사에 꾸역꾸역 가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 내 모습을 내려놓고 진정한 내가 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나를 찾아가는 삶의 여정을 위해 오늘도 어김없이 동쪽의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회사원으로의 일상을 시작하고, 서쪽의 지는 해를 보며 엄마의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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