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을 견디면 20억을 받을 수 있는 약정이 있다면 해볼 만 한 게임이다. 레미안 원베일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래미안원베일리는 조합원 미계약분 전용 84㎡ 1가구를 청약홈에 등록했다. 공급가는 19억5천639만원이었는데, 같은 평형 32층이 지난달 42억5천만원에 거래됐다. 청약에 당첨되는 즉시 약 20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총 3만5천76명이 분양 신청해서 청약만점자 1명이 당첨됐다.
메스컴에서는 이분을 20억 로또 당첨자로 소개하고 있지만, 청약점수 만점을 위한 조건을 살펴보면 그냥 행운 이라고 하기에는 청약가점을 채우기 위해 가혹한 노력이 필요하다.
:행운이라고 하기엔 너무 고난위
당첨자는 15년 이전부터 청약통장을 개설해서 17점을 얻었다. 무주택으로 15년 이상을 임대주택에 거주해서 청약 가점 32점 받는다. 15년의 인고의 세월을 보내도 아직 49점이다. 부양하는 가족 수에 따라 가점을 더 할 수 있다. 본인을 제외한 부양가족이 3명인경우 20점, 6명인경우 35점을 받을 수 있다.
만점을 위해서는 청약통장을 15년부터 만들어 유지하고, 그 기간동안 무주택이어야 하며, 부모님 두분을 봉양하고, 아이를 3명 낳고 함께 사는 경우 84점 만점을 받을 수 있다.
: 15년동안 유지 조건
무주택인데 7식구가 서울에서 한집에 살아야 하는 조건은 쉽지 않아 보인다. 7식구 생활비와, 이분들이 함께 살수 있는 주택규모를 임대로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대충 따져 보더라도 일반적인 직장 급여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생활비를 3년 이상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풍부한 현금을 보유 하고 있으면서도 부동산은 사지 않아야 한다. 15년동안 한번도...
: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청약에 당첨이 되었으니, 계약금 2억과 함께 잔금 18억을 구해야 한다. 전세를 주더라도 5억이상의 현금이 필요할 것이다. 대가족이 모여 살수 있는 주거비,생활비와, 원베일리 매수금 20억을 감당할 수 있는 분이면서 15년동안 무주택이어야 하는 조건이다. 어쨋든 당첨자분은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켰고 20억원의 차익을 얻었다.
: 기회비용
기회비용의 측면만을 놓고 볼때 15년간 스쳐지나간 기회가 20억 미만이라면, 당첨을 위한 노력과 행운이 충분히 의미가 있다.
시간을 다시 뒤로 돌릴 수는 없지만, 인접해 있는 반포래미안퍼스티지는 정확히 15년 전에 분양을 했기 때문에 래미안원베일리와 기회비용을 따져 볼 수 있다.
2009년 반포래미안퍼스티지를 매수하고 15년을 보낸 경우와, 당시 아파트를 매수하지 않고 15년을 버틴 후, 분양가상한제가 운명적으로 적용된 최고가 아파트인 원베일리에 만점으로 당첨되는 경우, 어떤 선택이 확률적으로 유리할까.
: 15년 전
반포레미안 퍼스티지는 당시 미분양때문에 골머리를 알았다. 이 아파트는 2009년 국평 일반분양가 10억 6천만원에 청약 홈에 올라왔었다. 조합원 분양 물건은 9억선에도 매수가 가능했다. 청약을 통한 일반분양가 보다 중개사사무소에서 조합원 물건을 직접 매수 하는 것이 더 저렴했다. 조합원 물건은 이미 동과 호수가 확정되어 매수자가 원하는 동호수를 선택해서 매수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반포래미안퍼스티지 구매를 주저했다. 미분양은 반포레미안 퍼스티지 뿐만 아니었다. 마포구 신공덕동의 대우월드마크마포 , 성동구 송정동 서울숲아이파크 , 성북구종암동SK뷰2차,북한산힐스테이트7차 등을 비롯해 경기권 신축아파트도 대부분 미분양 이었다.
건설사는 미분양을 극복하려고, 계약금을 5%만 받고, 중도금은 당연 무이자 였다. 경기,지방은 미분양 아파트를 분양 받으면 한시적으로 양도세 비과세 혜택까지 얻을 수 있었다.
: 2009년 부동산 시장
한국은 2008년 국제금융위기를 비교적 가볍게 벗어났다. 지방은 이 시기부터 상승 하기 시작 했다. 지방 대도시를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상승했고, 2017년 이후 서울은 다시 상승 바통을 이어 받았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전국적인 상승이 이어졌다.
반포래미안퍼스티지의 가격은 오르기도, 멈추기도 하면서 15년을 보냈다.. 23년 35평형 실거래 최고가는 39억5천만원에 매매 됐다. 2009년 미분양 이었던 아파트들은 2024년 현재 대부분 그 지역 랜드마크 아파트가 되어 있다.
: 기회비용 = 시장이 주는 기회
기회비용으로 따지자면 반포래미안퍼스티지가 유리하다. 미분양 물건을 원하는 조건에 매수 할 수 있었다. 원베일리의 경우 분양가 상한제 적용된 아파트라는 운이 따라주어야 하고, 시장가 역시 받혀 주어야하는 매수자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15년동안 만점을 유지할 수 있을 확률 도 높지 않다.
반포래미안퍼스티지를 매수 했다면, 자산 운영에 대한 통제권을 소유자가 갖게 된다. 15년 동안 시장은 세번 이상 오르고 내렸다.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다면, 시장의 흐름에 따라 기회가 왔을 때 충분히 더 좋은 아파트로 옮겨 타는 것이 가능 하다.
: 리스크
기회비용 뿐 아니라 리스크 관리면에서도 청약으로 한방을 기다리는 것 보다 가능한 빨리 투자를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다.
15년전 30대였던 나는 너무나 멍청해서, 반포레미안퍼스티지는 꿈도 꾸지 못했다. 대신 그릇에 맞는 빌라를 열심히 찾아다니고 있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저렴한 빌라시장은 사는사람도, 파는사람도 많았다. 투자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나의 투자 전략은 내가 매수한 빌라 가격에서 2천만원정도 더 주겠다는 매수인이 있으면 팔았다. 시장의 흐름과, 정책, 글로벌 변수, 경제상황 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아니 그게 빌라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믈네번을 이사하면서, 수익과 손실을 동시에 경험했다. 맞이물이 너무 작았고, 작은만큼 수익도 작았다. 이 작은 수익 구조에서는 수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수익실현의 횟수를 늘리는 수 밖에 없었다.
한방을 바라지는 않았다. 1억3천에 방 두개 짜리 1층 빌라를 사서, 이사한 다음 1억 4천 400백만원에 매수할 사람이 생기면 이사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저렴한 물건을 매수하고, 수익 회전율을 높이는 방법만이 실력도 없었고, 돈도 없었던 부동산 무지랭이가 펼쳤던 유일한 리스크 관리 였다.
: 만점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15년전으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원베일리 청약 당첨을 준비하지는 않을 것 같다. 청약은 운의 영역이고, 운의 영역에 15년을 배팅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높다. 15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직장인으로써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현금과 상황을 버텨야 한다면 더더욱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