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복통-스페인 여행기16

<16> “DONT STOP ME NOW”-상

by 평양이디엠

<16> “DONT STOP ME NOW”-상


카르타헤나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작은 바닷가 마을이라 했는데

웬걸 여기서부터 요절복통이 시작된다. 개봉 박두


길고도 긴 버스여행 끝에 우린 카르타헤나에 도착했다.

그리고 새 에어비앤비 호스트인 모니카와, 리카르도를 만났다.

예민하지만 친절한 리카르도와 모니카

굉장히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그들을 표현하는데 그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다.


우리는 퀸의 “DONT STOP ME NOW”를 들으며 눈을 떴다.

스페인 로레알 광고음악으로 나오고 있었다.

이 노래를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BGM처럼 동과 내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말도 안 되는 장소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게 된다.

나온 지 한참이나 된 옛 히트곡이 한 달 동안 우연히 우리 곁을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정확히 스페인에서 돌아온 지 한 달 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한다…

이 놀라운 우연, 혹은 인연!


눈을 뜨자마자 바다로 향했다. 근데 왠지 이상한 게 뒷골이 서늘해서 체크카드 한 장과, 일기장, 물감은 두고

여권, 선글라스, 핸드폰, 카메라만 들고, 목에는 수경을 달랑달랑 걸고 출발했다.

리카르도가 추천한 해변은 너무 멀어서 택시를 타고 제일 가까운 해변으로 가 달라고 했다.

바다를 보고 신이 난 우리는 사진도 옴팡지게 찍고, 인스타 라이브도 하고 야무지게 놀았다.

우리 가방을 바위 사이에 잘 숨겨두고...

이게 우리 고행의 시작이 될 줄 몰랐다.


동이는 수경을 쓰고 잠수도 하고, 다이빙도 하고 나는 유유자적 바다에 떠다녔다.

비범한 용기를 가진 동이는 갑자기 다이빙을 하러 먼바다로 떠났다.

점처럼 멀어진 동이는 높은 바위에서 날 보며 손을 흔들었고, 이내 깊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멋있게 다이빙을 했지만 동이는 좀처럼 뭍으로 올라올 생각을 안 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실루엣이 보이지 않자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동이가.. 죽으면 난 어쩌지 동이 동생이랑 어머니한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꼬리에 꼬리를 문 걱정에 발을 동동 굴렀다.


‘동이가 죽었다면! 아냐 수영하고 있겠지!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난 거라면?!’


이렇게 쓸데없는 걱정이 이는 와중에 동이가 바위 위로 올라왔다.

해맑게 걸어오는 모습에 안도가 되면서 억울한 마음에 손가락 욕을 날렸다.

비틀비틀 돌아온 동이는 사실 다이빙을 했는데 다리에 쥐가 났고, 죽을뻔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죽을뻔한 위기도 술로 씻어내겠다고 해변에서 밥을 먹고 샹그리아를 마셨다.

물속에서 갖가지 묘기를 부리며 자빠지고, 물먹고 다시 어푸어푸 헤엄치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삐용삐용(미남을 보면 입으로 내뱉는 암호) 미남들을 찾았다.


스페인에서 보름 동안 본 미남들 중 제일 잘생긴 미남이었다.

우리는 미남이 수돗가로 가길래 괜스레 따라가서 같이 발을 씻었다.

가서 껄떡대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인사만 나눴다.

그리고 정신을 못 차린 동은 아까 고생한 것을 다 잊고, 깊은 곳을 향해 헤엄쳐갔다.

겁이 많고 수영을 못하는 나는 어떤 스페인 아저씨가 업고 가줬다.

훗날 알게 되지만 이 아저씨는 이 마을 핵인싸였다.

바위에서 동이랑 놀다가 다시 돌아가려는데 이젠 돌아가는 게 문제였다.

돌아가는데도 그 아저씨가 업어줬는데 무서워서 호들갑을 떠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엄청 웃었다.

알고 보니 내 어깨까지 오는 적당히 깊은 물이었다.


그렇지만 파도가 치면 내 눈높이까지 오니까 무서운 게 당연하다 생각하며

우린 가방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우린 가방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로만 듣던 유럽 도둑놈들 망연자실한 나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동이를 불렀다.

아직 상황을 모르는 동이는 팔랑팔랑 걸어왔다. 틀어막은 입을 힘겹게 떼어 “야... 우리 다 털렸어..”


유럽 도둑놈들 스위트하기도 하지 신발은, 신발만은 두고 갔다.

가방이 있던 자리에 덩그러니 놓인 신발을 보며 그나마 안심이라고 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현실성이 없는 이 상황에 우린 눈물도, 화도 안 났다.

지금 와서 생각하는데 더 스위트한 도둑놈이었다면 카메라에서 SD카드는 두고 가줬을 텐데

그놈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도둑놈들이었다. 우리는 주위를 찾고, 또 찾아보다 해상구조대 부스로 갔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혹시 분실물 들어온 게 있는지 물었다.


프라도 미술관이라 쓰여있는 에코백 혹시 본 적이 있는지 물어야 하는데

구조 대원들이 엄청난 미남들이라 나도 모르게 “삐용삐용”이라 해버렸다.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타고나길 미남 경보기로 태어나 입이 먼저 소리를 뱉은 것이었다.

동이는 미쳤냐고 했다. 그렇지만 삼초 뒤에 확실한 미남들이라고 수긍했다.


우리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아무것도 없는 이 상황에

만약 우리가 떨어지면 이역만리 타국에서 객사하거나, 영 이별을 할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이 구조 부스에 남아있고, 동이는 해변은 물론 쓰레기통까지 다 뒤져보러 떠났다.


그렇게 이십대 미모의 비키니를 입은 여성과 절세미남 둘은 좁은 부스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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