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삐뚤어졌어-장녀와 엄마 사이
<15>삐뚤어졌어-장녀와 엄마 사이
동이와 난 세비야에서 좋아하던 장소들을 한 번씩 더 가보고, 점심을 먹었다.
여행 내내 한국에서 카톡으로 나를 구속하던 우리 엄마.
사진을 이렇게 찍어라 저렇게 찍어라 표정을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너희 언니가 유럽에서 찍은 사진들은 멋들어졌는데 넌 영 꽝이다.”
이렇게 헐뜯는 말에 나는 자꾸 베이고, 부풀어 올랐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늘 그랬다. 당신 딸이 좀 잘난 사람이었으면 했고,
그렇게 볶아서 나온 결과물에도 성이 안 차서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비교를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항상 곪아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유쾌하고, 자신만만한 사람이지만
사실 난 늘 불안하고, 늘 눈치 보는 사람이다.
항상평가받는 위치에 있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에만 신경이 곤두서있는 못난이였다.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9시간의 시차를 건너 또 톡톡 쏘아붙이는 말에 터져버렸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압박을 받으며 자라왔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흥하려 얼마나 애썼는지 아무도 모른다.
못나고, 우울한 내 모습과 진심은 마음의 지하실에 꽁꽁 감춰두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는데
동에게 쏟아내버렸다.
다른 사람에게 내 바닥에 고인 진심을 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동도 그 마음의 빗장을 열었고 우리는 같이 어두운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샹그리아를 1리터 마시고 더 마셔서 였을까? 고여있던 얘기를 해서 였을까 마음이 편해졌다.
그날은 참 여러 기분이 교차했다. 이 글을 고쳐 쓰는 지금은 이 여행으로부터 3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 사이 다행히도 내 마음은 무럭무럭 자랐고, 덜 방어적이고, 덜 걱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그러려니’라는 삶의 태도도 배웠고, 무던한 사람이 되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엄마의 마음에 만족을 채워 넣기는 너무 힘들고,
나는 그렇게 잘난 사람이 아니기에 우리는 절충안을 찾았다.
엄마는 나를 낳고 기르며 당신 인생을 조금씩 잃으셨고,
나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나는 엄마의 잃어버린 세월이기 때문에 더 빛나야 하고, 더 잘 나야만 했다.
엄마를 좋아하는 나는 그렇게 자랐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삐딱하게 커버렸다.
지금은 엄마와 떨어져 지낸 지 3년째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독립된 개체로 잘 지내고 있다.
이른 아침 우리는 카르타헤나로 떠났다.
이자벨은 이른 새벽부터 우리를 위해 아침을 준비해 놓고 계셨다.
우리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아침까지 먹이고 양손에 과일, 요구르트, 과자, 빵 등을 쥐어주셨다.
가방까지 이자벨이 챙겨준 먹을 것들로 빵빵하게 채우고 우린 카르타헤나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