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아 스페인 경찰 일 너무 안 해
<18> 아 스페인 경찰 일 너무 안 해
우리는 빨리 조서를 쓰고, 이 일을 해결하고 싶었는데
경찰들은 얼른 가서 옷 갈아입고 오라고 우리를 말렸다.
가방을 잃으면서 우린 집 열쇠까지 잃었고, 그 와중에 모니카와, 리카르도는 외출을 해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권도, 핸드폰도, 옷도 아무것도 없이 우린 계단에 앉아있었다. 요상한 옷을 입고,
아니 거의 입지 못하고 계단에서 이렇게 앉아있는 상황도 웃기고, 그 와중에 동이 목에 달랑거리고 있는 수경도 우스웠다.
서로 얼굴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참 신기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서로를 보면 웃음이 난다니.
그러다 옆집의 친절한 가족이 우리를 보고 문을 열어주셔서
그 집에서 우린 과일도 먹고 노트북으로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비자에서 룸 셰어하기로 했던 분에게 연락 좀 대신 전해달라고,
우리가 약속을 깬 게 아니고 사정이 생겼고,
꼭 다시 연락하겠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친구들이 그분들을 잘 찾아 연락해 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린 경찰서를 찾아 떠났다. 이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GPS 없이 감으로,
마을 표지판을 보며 겨우겨우 찾아갔다.
그런데 아까 바위섬으로 데려다준 인싸 아저씨를 만났다.
경찰들과 실랑이하고, 우리 가방도 같이 찾아준 친절한 분이셨는데 우연히 만나서 흔쾌히 차로 경찰서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아저씨 정말 이 마을의 인싸였다 중간중간 인사한 사람만 몇 명인지,
또 중간에 중국인 마트에 들러 우리랑 소통을 시도하려 중국인 점원을 불러 뭐라 뭐라 했는데
중국어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는 우린 멀뚱멀뚱 있었다. 머쓱해진 동양인 세 사람…
우여곡절 끝에 경찰서에 왔는데 경찰 놈들 일을 안 한다.
“한국에 데려가라 나는 태권도를 잘한다~스페인 남자 어떠니”
아예 우리 물건들을 찾을 의지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경찰들의 쓸데없는 소리를 듣느라 조서에 이름 쓰는 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
한 문장 타이핑하고 20분 헛소리하고 한 문장 타이핑하고 30분 헛소리하고 겨우겨우 집에 돌아온 우리
오늘 무슨 일을 겪은 건지 허무하지만 의는 상하지 않았다.
큰일을 겪고 둘 다 예민해져 날이 서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우린 역시 다동히동이었다.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그 누구를 탓하지도 않았다.
다음날 눈이 번쩍 떠졌다. 눈을 뜨자마자 모니카에게 부탁해 모니카의 핸드폰에 카카오톡 앱을 깔고
엄마의 번호를 추가해 보이스 톡을 걸었다.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를 보낸 친구 중 하나가 새벽에 엄마에게 전화해 사건의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예상과 달리 엄마는 큰 걱정도, 타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얼른 카메라를 사서 사진 많이 찍고, 추억을 남겨오라 하셨다.
친구도 엄마도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우린 물을 사러 중국인 마트에 갔다. 어제 지나가면서 우릴 본 사장님이 경찰들 욕을 옴팡지게 해주셨다.
내 속이 다 시원했다. 내가 더듬더듬 중국어로 대답을 하니까 사장님은 더 신나서 몸짓 발짓으로
“걔네는 할 줄 아는 게먹고 노는 거밖에 없어” 하셨다. 속이 다 시원했다.
태양이 가장 뜨거울 때, 남들은 다 낮잠을 자는 그 시간에 나는 동이 옷을 벗겨가며 수영복을 입혔고, 바다에 놀러 갔다.
아무 생각 없이 잘~놀았다. 바다에서 잘 놀고 우린 뮤지컬 시카고의 ‘마마’를 닮은 ‘카르멘’을 만났다.
유쾌한 카르멘 자매와 친해진 우리는 같이 노래도 부르고 도둑놈들 욕을 하며 즐겁게 보냈다.
그리고 밤이 되자 우린 마드리드로 가는 막차를 타고 대사관이 있는 마드리드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