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재미있는 달리기
<26> 재미있는 달리기
우리 여행은 우여곡절이 많았고 마냥 즐겁다고는 할 수 없는 여행이었다.
그렇지만 쭉 옆에 있던 동, 여행 중에 만난 따뜻했던 이들 덕분에 웃음으로 눈물 닦았다.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따뜻한 감동을 준 이자벨,
우리가 모든 것을 잃었다고 했을 때 언제든 돌아오라고 해주었다.
내가 뭘 잃어버리거나 위급한 일이 생기면 해결책을 주던 니콜, 모니카와 리카르도,
그리고 노트북을 빌려주신 유쾌한 앞집 부부, 무지개를 그릴 때 스페인어를 알려주신 할아버지,
같이 배를 탄 꼬마, 루카, 사랑해 마지않는 쵸키 영영 못 보겠지만, 영원히 기억할 친구들이다.
아 맞다 사라 언니…내 골반에 불을 붙여준 언니를 잊다니 그리고
웃음으로 눈물 닦기에 큰 도움을 준 세계 각지의 미남들
돌아오는 비행기, 우리는 장장 9시간 동안 따로 앉아 가야만 했다.
우리는 한 달 동안의 동거와 여행을 마무리하며 서로에게 편지를 썼다.
동이와 함께한 날들 Blue Christmas
‘그대와 함께했던 날들 내겐 너무 소중했던 순간들이죠…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그대 진정 더 행복하길 기도하고 있어요. 오오, 그대 행복하기만을’
이란 가사처럼 복학하게 될 동이,
남은 휴학 기간 동안 단단한 마음과 영원한 내면의 평화를 찾아 더욱 긴 여정을 떠날 나.
딱 한 학기 고작 6개월의 시간 동안이지만 자주 못 볼 우리이기에 마음이 찡해졌다.
비행기에서 영화 라라랜드를 봤다. 여행에 가기 전엔 무조건 취업.
취미녀(취업에 미친 여자)라고 불릴 만큼
좋은 곳에 취업해서 안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은 날 많이 바꿨다.
그냥 재미있게 사는 게 장땡인 거 같다.
꿈을 좇아보기도 하고, 난 말을 찾아 떠나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매년 여름 휴가를 이비자에서 보내는 삶 그게 인생의 지향점이 되었다.
이 여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이 행복한 기억을 평생 끌어안고 살겠지?
그리고 이 시간이 남은 생 통틀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까 걱정이 되었다.
내 남은 생은 이제 재미 그래프에서 하향곡선만 그리는 거 아닐까?
알 수 없는 내 인생 요절복통, 파란만장한 한 달을 보내고 돌아온 지금 나는
복학과 졸업전시를 앞두고 있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당장 자취방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르고, 떨어진 기숙사에 추가 합격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잘 살았다.
취미생활로 성악 레슨을 받았다.
노래를 잘하게 된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내가 좋아하는 내가 될 것 같았다.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엄마랑 운동도 다니고, 동생이랑 빈둥거리면서 누워있기도 했다.
또 내가 사는 이 지역이 너무 좋아졌다.
서울 근교의 베드타운, 인구수는 많고 지루한 내 고향의 좋은 점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친구들과 매일 같이 만나 고즈넉한 한옥 풍경들을 보며 얘기하고, 습관처럼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빌린 돈을 갚고,
엄마가 휴대폰을 사라고 보내주신 돈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20살 때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많이 좋아하는 언니들을 만나 끈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다시 그때만큼 행복해지고 싶어 영화관 알바를 시작했다.
영화도 많이 보고, 공연도 보고, 새로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저금도 했다.
어느 날은 가슴께까지 즐거운 기분이 참방참방 차올랐는데
자고 일어나니 어디로 다 증발해버렸다. 하루하루가 그렇다.
아침 일찍 아르바이트를 가는 날에는, 해도 뜨지 않아 시꺼먼 하늘을 바라보며
내 마음도 캄캄하게 타버렸고 공간을 걱정이 메웠다.
그러다가도 뜨거운 칼국수 한 그릇 먹으면 어두운 마음도 훌훌 내려가 버렸고,
하고 싶은 게 막 생겨났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실행하고,
생각보다도 더 별로인 나한테 실망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기도 했다.
그렇게 염원하던 성악 레슨도 기초를 다잡는 게 생각보다 재미없어서 그만뒀다.
그렇게 반년을 보냈다. 하루하루가 재미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동경하던 것들도 항상 멋있어 보이진 않았다.
항상성을 바라며 영원에 집착하는 나는 영원히 멋지고,
재미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흘려보낸다는 게 힘들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 그것은 생각하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자주 그림을 그린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림을 그리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것
내 매시간은 그중에 하나 이상으로 채워져 있다.
그냥 불안했다. 게으르면 안 될 것 같고, 뭔가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도태되는 기분을 견딜 수 없다. 자신이 없는 사람은 그렇다. 항상 버둥거리고 있다.
이 여행 전까지 나는 그런 내가 제일 가여웠다.
나는 큰 재능 없이 태어나 열심히 해야만 중간은 하는 사람,
잘하는 게 없어서 언제까지고 잘하는 것을 찾아 떠돌 사람이다.
그래도 괜찮다.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보폭을 맞출 수 있겠지.
앞으로 한동안 뛰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멈추지만 않는다면 나도 완주점에 도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므로 나는 재미있는 달리기를 위해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찾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