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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길주 Sep 03. 2024

장편소설                   노인과 유산

1. 내 그림을 단 한 점도 팔지 마라.

 하얀 눈이 덮인 산자락으로 떨어지는 붉은 노을은 흰 눈과 대비되어 차가운 얼음 위에 불꽃처럼 생경하기까지 했다. 눈이 너무 온 탓일까, 산이 한층 더 높아 보이는 것이 이상한 현상은 아니었다. 김박사는 오후 3시까지 눈이 펄펄 내리던 창가에 달라붙어 침대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아파트의 실내는 따스했지만 그가 느끼는 체감 온도는 영하의 기온처럼 춥고 오싹거렸다. 그는 이제 자신의 죽음이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에게 죽을 부탁하고 딸에게 전화를 했다. 딸은 미국에 있었기에 자신이 죽기 전에 딸의 얼굴을 보려면 미리 전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딸의 나이가 이제 오십이 되었으니 자신이 팔십오 세를 산 것이 맞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딸은 막내지만, 어른스러운 데가 있었고, 무엇보다 친절하고 다정한 딸이었기에 김박사는 언제나 딸의 손을 잡고 시내를 다닌 적이 많았었다. 더구나 아내를 사별하고 난 후, 딸은 그에게는 아내를 떠올리게 하는 가장 닮은 모습이여서 그는 아내의 쌍꺼풀진 깊은 눈매를 딸에게서 볼 때마다 가끔씩 혼자 눈물을 훔친 적이 많았기에 그에게 딸은 아주 각별했다. 그는 이제 딸의 나이 오십에서 죽은 아내의 오십대 얼굴을 본다. 그의 아내가 죽은 나이가 오십이었기에 딸에게서 아내보다 더 늙은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딸은 아내의 오십보다는 훨씬 더 젊어 보이고 아름답다. 세련된 긴 파마머리도 그렇고 미국에서 살아서 그런지 딸은 키도 한국에서 자랄 때 보다 더 커 보였고, 무엇보다 유창한 영어 실력과 세계적인 수준에 오를 정도로 유능한 바이올린 연주자다. 딸 서영은 감수성이 자신을 닮아서 풍부한 편이었고, 피아노를 치던 아내를 닮아서 음악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그 딸이 가진 재능은 신이 주신 것이라고 김박사는 믿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유전인자로 그렇게 훌륭한 연주자로 자신의 딸이 세계 정상을 누비고 살기는 힘들 거라고 그는 의사지만 생각할 정도로 딸은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던 것이다.


 딸 서영은 독일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세계적인 연주자들과 어깨를 겨누며 연주 활동을 하고 있고, 결혼한 남편 역시 닥터로 아주 안정된 삶을 살고 있기에 서영의 목소리는 언제나 아침의 새소리처럼 밝고 경쾌했다.

"아빠 무슨 일 있으세요? 다 저녁에 전화를 다 하시고. 그리고 목소리에 힘도 없으신걸 보니 어디 많이 아프신 건가요?"


 김박사는 자신이 말기암이 있다는 것을 자식들 모두에게 숨기고 있었기에 딸 서영도 아버지의 암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김박사는 태연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응, 아빠가 이번엔 독감이 심하게 걸렸어. 얼마 전에 코로나도 앓았고. 그래서 네가 좀 한 번 왔다 갔으면 싶구나. 그리고 시간을 좀 낼 수 있는 한 길게 내서 한 이주 정도 있었으면 싶고, 우리 외손자 차웅이도 보고 싶으니 학교가 괜찮으면 데리고 나오고."

 김박사는 서영이 몹시 당황하는 듯하는 느낌을 전화로 알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요청한 적이 없는 한국행을 갑자기 그것도 이주씩이나 요청하고 외손자까지 데리고 나오라고 하는 걸 보면 이건 아빠에게 중대한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었다.


 서영은 알았다고 답변을 정확하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쩌면 다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에 서영은 서둘러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야 한다고 그 순간 떠올렸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삼  년을 아버지 김박사는 혼자 사셨다. 일하는 아줌마 한 분이 낮에만 집에서 집안일을 해주는 정도 깔끔한 삶을 사셨던 아버지에게 삶은 너무나 단조로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육십에 병원을 정리하고 혼자서 꾸준히 그림을 그리며 칠십이 넘어서는 중견화가로 활동을 왕성하게 하시더니 이제는 한국에서는 유명할 정도로 화가로 명성이 있는 사람이 되어서 서영은 그런 아버지를 참 대견해했고, 아버지의 외로움의 대상이 왜 여자가 아닌 그림이었을까를 생각하면 그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엄마를 무척 사랑했다는 증거 같아서 한편으로는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서영은 아버지가 측은하기도 했었다. 엄마가 살아 있었다면 올해 팔십 세일 것이고 하얀 머리를 곱게 파마하고 연한 핑크빛 립스틱을 여전히 바르고 칼라가 살짝 올라간 원피스를 입거나 긴 롱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피아노를 치고 계실 것 같아서 서영은 다시금 눈물이 고였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해, 서영은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미국에서 의사인 남편을 만나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살았을 때였고,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때라서 엄마가 아프다는 말, 암이 깊어져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오빠들의 말을 전혀 믿지를 않았었다. 오히려 그런 불행한 말은 자신의 삶에서는 단 한 줄도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오만함까지 그녀는 가질 정도로 자신의 단단한 삶의 한 축이 무너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서영이 마지막으로 엄마를 보러 왔을 때 엄마의 모습은 아직은 전혀 죽을 나이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하는 이상한 중늙은이로 그것도 의사의 아내로는 전혀 맞지 않는 초라한 환자복을 입고 엄마는 마지막 숨을 깔딱이며 병원에 누워 있었다. 악성 암이 엄마를 삼 개월 만에 지상에서 영원히 볼 수 없는 세계로 데려갔다는 것이 전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엄마의 죽어가는 모습을 거의 보지를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서영의 수속은 급했다. 엄마처럼 죽음 앞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서영은 한국에 있는 두 오빠에게 전화를 걸고 아버지의 상태를 잘 살피라고 하고는 모든 일정들을 당분간 취소를 하고 급하게 짐을 꾸렸다. 바이올린에 매료되어 열다섯 살에 한국을 떠나서 그녀는 이제 오십이 되었지만, 한국행 비행기를 탈 때마다 그녀는 지독한 그리움에 한 번씩 하늘 끝 어딘가에서 자신이 홀로 이 세상을 살고 있다는 외로움이 찾아온곤 했다. 하늘 높이 이륙한 비행기의 탑승 의자에 깊이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마다 구름 아래 보이는 저 아래 세상처럼 자신은 그렇게 초라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감정은 그녀가 바이올리니스트로 세계적 명성을 차지할 때면 더 깊이 몰려오곤 했다. 신이 주신 재능일지는 모르지만, 세상의 박수나 명성보다 더 가치 있고 높은 무엇인가가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신의 영역을 그녀는 무엇보다 믿기 어려워했고, 때로는 두려워해서 그녀는 남편이 나가는 교회에 성탄절에 몇 번 가본 것 외에는 한 번도 어떤 종교 시설도 가까이하지를 않았다.


 김박사는 서영이 오고 있는 시간에 민변호사를 불렀다. 그리고 자신이 남긴 유언을 다시 한번 확인을 했다. 첫 번째 유언은 자신의 그림을 단 한 점도 팔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자식들에게 남긴 것이고, 두 번째 유언은 남은 부동산을 다 팔아서 자신이 어린 시절 살았던 고아원에 다 기부한 사실을 자신이 죽고 나서 밝혀지길 바라는 것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유언은 죽은 아내와의 약속이었기에 박사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고 죽고 싶었던 것이었다. 아내 수영은 김박사와 한 고아원에서 자란 다섯 살이 어린 여자였다. 김박사가 의과대학 2학년에 입학했을 때 아내는 겨우 고 1이었지만, 아내 수영은 성숙한 여자애처럼 어른스럽고 반듯해서 고아원의 원장님이 가장 아끼는 여자애였다. 김박사는 고아원의 원장이며 목사님이셨던 아버지의 엄격한 다스림속에서 살았고, 그는 고아원의 원아들보다 더 낡은 옷과 가방을 들고 다닐 정도로 가난한 고학생처럼 살았다. 그러나 수영에게만은 어릴 때부터 가장 아끼는 것을 다 내어 줄 만큼 일찍이 수영을 사랑했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김박사는 수영에게 줄 빵이나 초콜릿을 자신의 입에 넣어 본 적이 없을 만큼 수영을 사랑했었기에 수영은 사춘기부터 김박사를 남편감으로 믿고 따랐던 사이였다. 그런 수영의 모든 열정이 그에게는 많은 재산을 남겼지만, 그는 얼마 전 그 모든 재산을 다 처분해서 아버지가 운영해 오시던 고아원을 찾아가 전재산을 다 기부를 한 것이다. 남은 것은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아파트 한 채가 남은 재산의 다였다. 그러나 이 아파트는 재산이 가치로는 겨우 3억 정도가 다였다. 그러나 그가 고아원에 기부한 재산을 시세로 따지면 백억이 넘는 재산 가치가 되는 것이었기에 자식들이 자신이 떠난 다음 어떤 난리가 날지는 몰라도 그는 그 일을 민변호사와 묵묵히 다 마친 것이 올봄이었다. 그때 이미 그는 암이 몸에 다 퍼진 것을 알았기에 서둘러서 그 일을 빨리 해냈고, 일을 다 마치고 그는 하루하루 죽음을 준비했던 것이었다.


 하얀 산을 둘러싼 노을빛이 어느새 어두운 밤의 색을 펼치며 흰 눈자락 위로 밤을 알리는 희미한 별빛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김박사는 마지막으로 그리던 자신의 아버지에 젊은 날 사진을 놓고 아버지의 초상화 그림을 마무리하려고 그림을 그리던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침상에서 간신히 내려왔다. 김박사의 아버지는 한국전쟁당시 목사님이었는데, 전쟁통에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가 고아원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목사직을 버리고 고아원 원장으로 오십 팔세까지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런데 그는 이제야 그 아버지의 젊은 날 사진을 보면서 고아원 원장이셨던 아버지의 얼굴을 그리고 있었다. 이 그림이 이 세상에서 그가 그리는 마지막 그림 일 것이다. 그는 작은 방에 이젤 앞에 까지 간신히 걸음을 떼어서 걸어가 겨우 붓을 들었다. 아버지는 사진에서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기에 전쟁통에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가 먹을 것도 없이 힘든 고아원을 꾸려가는 모습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김박사는 아버지의 젊고 환한 얼굴에서 하나님의 빛을 그 순간 보았다. 그건 그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 강렬한 빛의 세리머니였다. 그렇게 김박사는 아버지의 젊고 환한 얼굴빛에서 하나님을 본 것이었고, 그것은 그의 마지막 호흡과 숨이 멎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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