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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길주 Oct 21. 2024

장편소설    "노인과 유산"

10화. 바다에 같이 가실래요?

 서영은 강윤기라는 남자가 그리는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가 그리는 바다는 눈보라가 치는 겨울 바다였다. 그런데 서영은 그가 그리는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그 남자와 바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멈춰지지 질 않았다. 

강윤기 화백 그는 놀라우리 만큼 빨리 그림을 그렸고, 그가 그린 그림은 무척이나 완성도가 높아 보이는 그림이었다. 남자가 한 시간도 안 되어 그림 한 폭을 그렸고, 둘은 거의 아무 말하지 않았다. 서영은 소파에 앉아서 그 남자가 그리는 그림을 바라만 보고 있었고, 햇살은 어느 사이 아침에서 정오에 가까워지며 가죽 소파의 등받이는 햇살로 점점 따스해져 왔다. 남자가 그림 도구들을 정리하며 약간의 기름냄새가 나는 석유통에 붓을 넣고 흔들어댔다. 철재로 된 기름통이 붓을 흔들어 댈 때마다 찰랑대며 쇠통과 나무 붓이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서영은 남자가 붓을 세척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그의 등에 선이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는 말랐는데도 이상하게 약간 두꺼운 폴라 티셔츠에 나타난 남자의 등선은 사슴의 등허리 같기도 하고 청년의 등 같기도 한 느낌이었는데 그의 등허리는 슬프고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남자가 붓을 빨은 것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나서 서영을 향해 뒤돌아 섰다.

그때 서영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입에서 이렇게 말이 튀어나왔다.

"저랑 바다에 가실래요? 지금"

"네, 바다요, 그렇지요, 여기서 한 시간 정도면 바다니까 갑시다. 거기 가서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실까요? 제가 해물탕을 사드리죠. 전에 선생님과 다녔던 식당이 있거든요. 선생님은 회보다는 해물탕을 좋아하셨어요."


 서영은 아버지가 회보다 해물탕을 더 좋아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때까지 아버지가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 아는 게 단 한 가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아버지는 늘 가볍게 식사하는 걸 즐기는 정도로만 아버지를 알고 있었지 아버지가 회보다 해물탕을 좋아했다는 것도 전혀 알지를 못했던 것이다. 

강윤기는 바다 그림을 가르치면서 한마디 더 했다. 

"이 그림은 제가 선생님과 어느 날 겨울 바다를 추억하며 그린 그림이었거든요. 제 마음을 서영 씨가 아셨나 봐요. 저도 선생님이 참 그립고 그래서 여길 가끔 왔던 건데, 아무튼 이 그림은 서영 씨께 드릴게요. 처음 만난 선물입니다."

서영은 물끄러미 그리고 아무 말하지 않고 남자를 쳐다봤다. 이 남자가 아는 내 아버지보다 내가 알고 있는 내 아버지보다 더 깊고 더 많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서영은 했다. 십 년 동안 같이 그림을 그리고 같이 여행을 다녔다면 이 남자는 자신의 친오빠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서영은 해본 것이다. 사람을 안다는 것이 단순히 혈통이라고 아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알면 얼마나 알고 부모가 자식을 알면 얼마나 알며, 내가 내 남편은 또 얼마나 알았단 말인가? 그리고 내 남편은 또 나를 얼마나 알고 살았던가? 서영은 잠시 그 모든 관계의 묶음들이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고 허무하게도 느껴진 것이 이 남자의 해물탕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강윤기라는 남자가 모는 차를 타고 서영은 바다로 향했다. 햇살이 따사로운 겨울 바다는 참으로 오랜만이었고, 서영은 대한민국이 서해 바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정말로 몰랐다. 서해바다의 해풍이 잔잔한 파도를 타며 바다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모래사장에 두 사람은 섰다. 서영은 바다를 보자 울컥하고 눈물이 솟구쳤다. 헤아릴 수 없는 그리움들이 몰려오고 가슴 저 밑바닥에서 느껴지는 어떤 해방감에 견딜 수 없는 통곡을 쏟아내고 싶어 져 그녀의 몸을 부르르 하고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남자가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고는 그의 가슴 쪽으로 서영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서영은 이 낯설고 마르고 젊은 남자의 가슴에 자신이 왜 얼굴을 묻고 울어야 하는지도 잘 파악할 수 없었지만, 한참을 그에게 눈물을 쏟아냈다. 남자의 코트가 다 젖어들도록 서영은 그 남자의 코트 자락을 붙잡고 울고 또 울었다. 바다에서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엄마의 음식냄새와 그리고 미국에 두고 온 남편의 커다란 발자국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고, 그리고 자신이 연주하던 바이올린의 협주곡이 바람과 파도에 섞어 들려왔다. 바람에서는 떠나간 가족들의 소리가 들려왔고, 파도소리에서는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의 눈물은 이상하게 잘 멈추어지질 않았다. 어떤 그리움들이 견딜 수가 없이 그녀를 흔들어대고 있다는 생각만이 그녀의 울음에 섞이어 나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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