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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냉장고 문을 괜히 열어볼까

제62화

by 그래도

1. 배는 고프지 않다.

어느새 냉장고 앞에 서게 된다.

문을 열면 밝은 불빛이 얼굴을 비춘다.

별다른 건 없는데, 누군가가 기다리는 듯하다.


2. 늘 보던 것들뿐이다.

김치통, 남은 반찬, 반쯤 마신 음료.

새로운 건 없는데, 이상하게 눈길이 멈춘다.


3. 잠시 멈춰 서서 차가운 공기를 쐬다 보면, 무엇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다.

손은 머뭇거리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온다.


4. 문을 닫는 순간, 허무가 밀려온다.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다.

사실은 심심함, 공허함, 혹은 잠깐의 위로다.


5. 그럼에도 반복된다.

다음엔 뭔가 달라져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와 함께.


냉장고 문을 괜히 여는 건 순간의 충동이 아니라, 마음을 달래려는 작은 ‘정서 조절’이다.
공허와 심심함을 잊기 위해 반복되는 그 습관 속에는, 근거 없는 기대가 조용히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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