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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돌연히 Oct 21. 2023

감옥으로 보내는 편지

우리는 보통 적어둔 편지를 상대에게 직접 건넨다. 상대가 편지를 읽는 상황은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있으며, 원한다면 내가 그 시간과 장소를 조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읽는 사람의 상황을 모른 채 편지를 적어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감옥으로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이다.




상아 씨는 감옥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8주년 기념일 편지를 쓰고 싶다고 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두 사람 사이에는 가족과 같은 단단한 결속력이 있었다. 유독 추위에 약한 남자친구가 힘들어할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상아 씨는 남자친구를 걱정하다가도 ‘우리가 처음 만난 겨울이니, 애착을 가지고 잘 버텨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상아 씨는 편지 외에도 이벤트를 하나 준비했다. 감옥 시설 내에서만 방송하는 라디오로 두 사람의 추억이 담긴 신청곡과 함께 사연을 적어 보냈다. DJ의 입을 통해, 성시경의 노래를 통해 상아 씨는 말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 포기하지 말고 힘내 달라고. 네 곁에는 내가 있다고.


상아 씨는 내게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적어보내다가도 이내 그 내용은 지워달라고 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포함됐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내일이면 사그라질 감정으로 남자친구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혹여나 남자친구가 '자신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낄까 배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감옥으로 보내는 상아 씨의 편지에는 오직 '주고자 하는 마음'만이 담겨 있었다. 특별한 반응이나, 답장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편지가 무사히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만 가진 채, 응원과 사랑을 마음껏 퍼주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카톡을 주고받고, 디엠을 보내고, 통화를 하며 소통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너무 쉽게 지친다. 1이 사라지지 않는 카톡방을 들여다보면서, 혹은 내가 보낸 DM에 성의 없는 답변을 보내는 상대를 보면서 서운함을 느끼곤 하지 않는가. 즉각적으로, 내가 원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을 했다는 것은 '받기 위해' 글을 썼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마음이 든다면, 시간이 걸려 도착하는 편지를 적는다고 생각해 보자. 언제 어디서 읽든 상관없는, 답장을 받지 못해도 괜찮은, 그런 편지로 한 번쯤은 내 마음을 그저 주기만 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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