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별 편지는 연인과의 관계를 끝내기 위해 쓰는 편지로, 이미 끝난 관계를 다시 이어 붙이기 위해 쓰는 재회 편지와 다른 개념이다.
이 사람들에게 만남의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 길든, 짧든 나와 연을 맺은 사람과의 마지막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미처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있지는 않나 돌아보며, 최대한 다 털어내려고 노력한다. 편지를 쓰는 행위 자체가 이들에겐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상대와의 관계를 오랫동안 고민하고 노력한 것이 선행되었다는 것은 알지만, 상대에게는 통보처럼 느껴질 편지였다. 따뜻하지만 단호한 이 사람들은 관계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명쾌하다. 상대에게 미련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배려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경우가 많다. 더 이상의 미련을 갖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정리하려고 든다.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이별 결벽증'이란 병명을 붙였다. 멀쩡한 사람한테 왜 병을 만드냐-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으나 옆에서 본 그들은 분명 병적이다. 나 역시 이별 결벽증을 오랫동안 앓은 말기 환자로써 한 마디 하자면, 남에게 피해는 안 준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쏟아 한 번에 해결하려고 든다.
함께 아는 사람이 많을 때, '좋은 이별'을 꿈꾼다. 둘의 연인 관계는 끝났어도, 관계의 정의만 달라질 뿐 계속 이어지는 경우가 그렇다. 캠퍼스 커플이나 사내 연애, 공통 모임이 있는 경우에 이들은 '연인'에서 '친구 혹은 동료'로 관계 재정립이 이어진다. 이 사람들은 보통 좋았던 추억과 상대에게 고마웠던 점들을 나열한다. 이는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구'가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째는, 공통분모에 있는 사람들의 귀에 들어갈 얘기, 즉 나의 평판을 신경 쓰는 것이다. 둘 째는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이 관계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은 이유에서다. 이렇게 관계가 유지되다 보면, 먼 훗날 어쩌면 우리가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지나친 부정은 긍정이라고 했던가. 반대로 지나친 긍정은 부정을 뜻한다. 좋은 내용만을 담은 이별 편지는 가끔 관계를 부정하는 느낌을 주곤 했다. 이별의 이유를 선뜻 받아들일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보통 장기 연애자들이었다. 결국엔 이별을 맞이한 이 사람과의 지난 세월을 부정적으로 다루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는 과거 자신이 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노력처럼 비쳤다. 너와 함께 보낸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며, 우린 분명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계속해서 되뇌었다.
가장 어려운 유형이다. 하루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가 파혼을 통보하는 편지를 의뢰했었다. 상견례까지 마친 두 사람은 결혼 준비를 하며 여러 가지 갈등을 빚고 있었다. 예비 신부는 내게 한 가지를 요구했다. '파혼은 피하게 해 주세요.' 파혼하자는 편지를 쓰면서, 파혼은 피하게 해달라고 했다. 연애 상담 서비스를 받고 온 한 남성분도 비슷한 의뢰를 했다. 상담가는 '내게 관심 없는 썸녀를 붙잡기 위해서는, 더 관심 없는 척 썸녀를 차버려야 된다.'라고 조언해 줬고, 그 편지를 쓰는 건 내 몫이었다. 두 사람은 결국, 상대방으로 하여금 우리 관계가 끝날 수도 있다는 점을 짚어주며 경.각.심.을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별을 인질 삼아, 상대를 협박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을 너무 탓하진 않길 바란다. 돈과 시간을 써서 이런 편지를 쓰는 사람 치고,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다.
지난 2년 간, 개인적으로 대필하는데 가장 애를 먹었던 것이 바로 이 이별 편지였다. 행복한 고백 편지는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관계의 끝을 다룬 이별 편지는 모두 저마다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별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만남부터 쌓여온 시간, 변화한 관계 그리고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 이별의 모습이 달라진다. 의뢰인들의 이별 편지를 대필하면서 느낀 것은 '이별 편지엔 두 사람의 역사가 녹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쓴 편지이지만, 그 안에 담긴 속뜻은 나조차도 완벽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앞으로 누군가로부터 이별 편지를 받게 된다면(꼭 편지가 아니더라도), 내가 정리한 위 네 가지 유형이 속뜻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정확한 의미는 본인만이 알 것이라는 점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의 흐름 안에서 편지를 읽어보라. 이별을 말하고 있으나, 사실은 사랑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