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도 처음인 그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했나?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정성은 없던 사이

by Roselle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20대 후반만 되어도 노총각 노처녀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땐 부모님은 이미 30대의 어른들이었다. 자연스레 나도 서른이 되며 충분히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지만, 나는 아직도 자라는 중이다.


활발하게 동아리와 각종 모임도 즐기던 대학생 시절, 사회 모임에서 만난 30대 남자가 있었다. 거의 10살 차이가 났지만, 인턴을 하고 있던 나나 공시를 그만두고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인 그나 비슷한 또래처럼 느껴졌다. 모임이라는 게 늘 그렇든, 목적은 거들뿐 끝은 술이기 마련. 12 띠를 넘나드는 나이대,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모여, 맛집이나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기도, 드라이브를 가기도, 볼링이나 노래방을 가기도 했다. 그러다 친해진 사람들 틈에 나는 그와 손을 잡았다.


벚꽃이 피던 계절이었다. 몇몇이 벚꽃구경을 가기로 했고, 그도 함께였다. 여럿이 모일수록 그 약속의 무게가 줄어들기에, 6인의 약속에 결국 3인만이 참여했다. 다이어트를 핑계로 먼저 귀가한 친구를 보내고 나니 우리 둘만 남았다. 우린 저녁 겸 술을 마셨고, 그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잘 들어갔냐는 안부 문자와 함께 우리의 연락은 지속되었고, 자연스럽게 영화 약속을 잡았다. 점심으로 파스타를 먹고, 영화를 본 뒤 와인을 마셨다. 몇 달간의 자연스러운 친밀한 속에서 나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는 그동안 나를 혼자 좋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전형적인 데이트코스에서,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그와 특별한 기억이 많지는 않다. 그저 평범한 연애를 했고, 서로에게 무던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헤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내 생일 선물 때문이었다.

클리셰였던 우리의 첫 데이트, 그날 갔던 식당은 평범한 프랜차이즈 식당이었다. 업종은 이탈리안이었지만 9,900원짜리 알리오올리오와 19,900원짜리 부채살 스테이크를 팔던 식당. 첫 데이트에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에 실망스럽지 않은 맛이라 적절하다 생각했던 나와 달리, 그는 그날 스테이크를 처음 먹어봤다고 했다. 가족식사나 결혼식에서도 먹어본 적 없다는 게 조금 놀랍긴 했지만, 집밥을 중시하고 경조사가 많지 않다면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하고 넘어갔다. 실제로 그의 부모님은 외식을 전혀 하지 않으셨고, 심지어 짜장면 한 그릇도 시켜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소 가부장적이셨던 아버지에게 '외식=돈 낭비'였고, 주부이신 어머니는 시판용 짜장소스로 직접 만들어주셨다고 한다. '외식=문화'라고 배웠던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외식이었기에, 전혀 다른 환경에 조금 놀라긴 했다. 그래서 나는 한식뿐 아니라 다양한 음식을 직접 요리해 자주 그에게 선물했다.


내 생일을 보름쯤 남겨두고, 우린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생일 선물이거나 기념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단지 연휴가 있어서였다. 제주도가 처음이라는 그는 무척 들떠 있었고, 완벽한 J답게 나는 이동시간까지 계산해 가며 2박 3일의 일정을 빼곡히 짰다. 약도를 그리고 차선책도 세우던 나와 달리, 그는 쇼핑에 여념이 없었다. 옷이며 신발이며 준비할 게 많다던 그는 함께 쇼핑몰을 가자고 했고, 어느 금요일 저녁 퇴근 후 우리는 첫 데이트를 했던 복합쇼핑몰에 갔다.

6시부터 정신없이 돌아다닌 쇼핑은 9시경에 끝이 났다. 제주도가 처음인 건지 여행이 처음인 건지 모를 정도로 신이 난 그는 이것저것 많이도 필요했나 보다. 나를 위한 물건도, 저녁 한 끼도 없었지만 지친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여행을 떠났지만, 모든 것이 처음인 그와 여행이 익숙했던 나의 속도는 맞지 않았다. 그렇게 뭔가 삐걱거리는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내 생일날, 일 때문에 저녁 늦게나 퇴근하는 그 때문에 집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미역국과 고기요리, 전과 잡채 등 생일상을 차리고 와인을 준비했다. 내 생일상이지만 맛없는 요리를 먹고 싶지 않았기에, 손수 차리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맛있게 먹고 즐거우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꽃다발과 케익을 들고 왔다. 검붉은 색의 장미는 활짝 핀 꽃이 아니었고, 작은 봉오리들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꽃이 돈 아깝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꽃을 좋아해 직접 사기도 하는 나는 안다. 봉오리가 작을수록 저렴한 꽃이라는 것을. 그래도 모르고 샀을 거라 생각한 나는 케익에서 그 생각을 접었다.

그가 사 온 케익은 파리바게트 화이트초콜릿케익이었다. 그는 케익에 초를 켜며 말했다.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케익이야." 나는 단맛이나 생크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케익은 치즈케익만 먹는다. 카페 데이트를 꽤나 했던 것 같은데 과연 그가 그 사실을 몰랐을까. 나는 한 입도 먹지 않았고, 그 케익은 그가 도로 들고 갔다. "너 안 먹을 거지?"라는 말과 함께.

꽃도 받았고 케익도 받았고, 생일상은 내가 차렸고. 그렇다면 선물은? 없었다. 그가 생일선물로 갖고 싶은 게 있냐 물었을 때, 나는 없다고 했다. 갖고 싶은 게 없었기에 없다고 했고, 진심 어린 축하가 있다면 선물은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민하던 그는 커플 신발을 맞추자고 했고, 운동화가 필요했던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러나 내 생일날 그의 손에는 꽃과 케익 뿐이었고, 운동화는 그의 발에만 있었다. 그는 사정은 이러했다.

"제주도 가려고 쇼핑을 하다 보니 예산을 초과했어. 네 선물은 다음 달에 사줄게.." 나는 더 듣지 않았다.

그를 일찍 돌려봬며 나는 마음이 정리가 된 것 같았다. 와중에 남은 음식을 싸달라는 그를 보며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고 들려 보냈다. 그렇게 우린 헤어졌다.


그를 보며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정말로 돈이 없었던 걸까, 여윳돈 10만 원이 없을 정도로 관리를 못했던 걸까,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돈이 아까웠던 걸까, 아님 괘념치 않는 내 성격을 이용했던 걸까.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저 다른 삶의 리듬과 기준 속에 있었던 사람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를 나쁘게도 나를 안타깝게도 치부하고 싶지 않았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스테이크를 처음 먹고, 제주도에 처음 가보고, 수중에 현금 500만 원이 없어서 이사를 가야 했던 사람. 그저 그의 청춘이 나의 청춘과 달랐을 뿐이다.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그는 그 또래에 맞는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뭔가 제자리로 돌아간듯한 안심이 됐다. 아마 우리는 처음부터 어긋난 관계였던 것 같다. 그로 인해 내 이상형에는 '소비습관'이 추가되었다.


그는 누군가의 기념일을 챙기는 일에 서툴렀고, 자신의 소비와 타인의 감정을 함께 고려하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가 배운 사랑의 언어는 내게 익숙한 방식과는 많이 달랐다.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이 꼭 같은 모양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관계란 마음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은, 때론 긴 설명 없이도 서로를 이해하는 편안함이 필요한 것 같다. 사랑은 때때로 감정 이상의 것들을 요구한다. 정성, 배려, 삶의 태도, 그리고 함께 걸을 수 있는 속도까지. 우리가 맞지 않았던 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낼 수 있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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