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에 쉽게 설레고, 익숙함에 쉽게 지쳤다

특별하지 않아도 설레는 이유

by Roselle

대학 졸업반이던 어느 가을, 인턴십에서 만난 아는 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동석했고 그가 있었다.

그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친구, 그의 친구의 친구.

쌍꺼풀이 선명하고 이목구비가 시원했지만 투박한 안경으로 가려진 얼굴엔 순박함이 묻어났다.

서른이 되도록 연애 경험이 없다는 그는 멋쩍은 웃음이 버릇이었다.

그의 행동은 매너는 있었지만 매력은 없었고, 옷 고르는 센스는 없었지만 사람을 고르지도 않았다.

그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맑고 투명한 눈동자만은 오래 남았다.


우리는 자주 어울렸다. 나의 친구들과 함께 집들이도 하고, 생일도 챙겼으며, 겨울바다를 다녀오기도 했다. 자연스레 모임이 되었고, 서로의 캘린더를 채워가며 우린 그렇게 친한 친구가 되었다.

여럿이 만나던 일정이 단 둘이 보내는 일상이 되고, 단톡보다 갠톡이 많아졌을 때 그가 나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에게 고백의 말은 없었지만 그의 눈은 나만을 쫓았고, 그렇게 다정하고 성실하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오빠, 나 좋아하지?"

그렇게 나는 그의 손을 먼저 잡았다.


그가 나에게 특별했던 건 사실 그 사람보단 그 관계의 '결'이었다.

질척이지 않고, 상처 없이 지나간, 몇 안 되는 기억.

연애라는 이름 아래 나는 늘 어딘가쯤 상처를 남겼다.

덜 주면 계산적이었고 더 주면 무례했으며 믿음엔 배신이 따랐다.

그러다 보면 감정은 남고 관계는 깨졌고, 그 여운은 늘 나를 덜 예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조금 달랐다.

그의 말투는 조심스러웠고, 손길은 망설였다.

모든 게 처음이던 그는 작은 추억도 즐거워했고, 처음 마주한 스킨쉽은 그의 손을 떨게도 했다.

그 순수한 눈빛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사랑에 서툴고 연애가 낯선 그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순수한 만큼 미숙했고, 배려하는만큼 거리감이 있었다.


누군가를 처음 알아간다는 건 매 순간이 반짝이는 일이다. 그러나 그 반짝임엔 유통기한이 있었다.

새 사람이라는 이유로 특별했던 일상은, 익숙해질수록 시시해져갔다.


심리학에 '자극추구 성향'이란 이론이 있다.

사람은 자극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자극'을 추구한다는 이론.

이 때 자극은 새로움일 수도, 스릴일수도, 일탈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익숙한 일상과 관계에서 안정을 느끼는 반면, 어떤 사람은 새로운 환경, 새 인연, 낯선 감정에서 더 큰 흥미와 생동감을 느끼는 성향이 있다.

높은 자극추구 성향을 가진 이들은 자극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순간, 그 행위가 종료되었다고 느낀다.


처음이라 좋았던 거다.

처음 겪는 감정, 처음 듣는 말투, 처음 느껴보는 순수함.

그가 보여준 모든 행동이 귀여웠고, 그래서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마도 '처음'에 끌리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감각에 쉽게 설레고, 낯선 온도에 빠르게 반응하는.

하지만 '처음'이 반복되어 '익숙함'이 된 순간, 그 시점에서 나는 천천히 마음을 거두고 있었다.


우리는 길게 가지 않았다.

그 사람이 잘못한 것도 없고, 내가 얕았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나는 새로움이라는 자극 앞에서 쉽게 설레었고, 자극이 일상이 되는 순간 마음이 천천히 이탈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어쩌면 내가 좋아했던 건 그 사람이 아니라 '그런 사람을 처음 겪는 내 감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난 지루해졌고, 그는 마지막까지 내게 잘했다.

나 역시 그를 아끼고 싶었지만, 연애란 감정의 리듬이 맞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너무 조심했고, 나는 그 조심스러움에 자꾸 숨이 막혔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은 우리로 사라졌다.


가끔 생각한다.

그에게 내가 조금 더 다정했더라면, 조금 더 기다렸더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동시에 안다. 어떤 감정은 고마움으로도, 예의로도, 연민으로도 끌어낼 수 없는 거라는 걸.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안타깝게도 '좋은 사람'에게만 향하는 건 아니니까.

그저 어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지 않기 위해' 스쳐간다는 걸 우린 배워야 했다.


관계는 때로, 감정보다 '결'이 맞아야 오래 간다는 걸.

그와 나 사이에 문제는 없었지만, 우린 리듬이 달랐다.

그걸 모른 채 오래 함께 했었다면, 언젠가는 더 큰 피로감을 마주했을 것이다.

새로움이 주는 감각적 설렘, 그 설렘이 사라진 후의 공허함까지 포함해야 나의 사랑이었다.

누군가는 나같은 사람을 피곤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결국 내 안의 그런 결을 이해하게 되었기에.

다음 연애는 조금 더 솔직하게, 조금 더 책임있게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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