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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도리 Apr 08. 2021

짐작과 다른 일들

        




그 연애는 사소한 착각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대학교 4학년 때. 과 후배가 소개팅을 하라고 졸랐다. 술값과 등록금을 충당하느라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였다. 시간도 없었고, 체력도 달렸다. 피곤하니 심지어 잘생긴 남자를 봐도 설레지 않았다. 당근 거절했다.


소개팅이란 것이 어차피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 일말의 연애 가능성을 타진하는 확률게임인지라, 적당한 호감도의 커트라인만 통과하면 일단 판을 벌리는 것까지는 쉬운 법이다.

꼭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후배의 태도가 완강했다. 꼭 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연이 있는 게 분명했다.

후배는 자기 남자 친구의 친구가 우리 학교 다른 학과 대학원생인데, 나를 꼭 지목해서 소개팅을 졸랐다는 복잡한 우여곡절을 털어놓았다.

이건 또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인가. 대체 누가 나를?

솔직히 조금도 설레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는 같은 인문대 다른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다.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목소리 큰 사람이 ‘저 정도면 분위기 있는 얼굴’이라고 빡빡 우기면 정면으로 반박하기는 힘든 정도의 외모였다.

다른 건 모르겠고, 눈동자만큼은 유독 반짝거렸다.





대충 통성명만 하고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나를 아세요?


그때부터 그는 그간의 사건을, 시간 순서에 따라 추보식으로 나열했다.


시작은 대략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그는 중앙도서관 휴게실에서 내가 친구랑 수다 떠는 것을 봤다. 그는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중이었고, 유리창 너머 무심한 시선의 끝에 내가 있었다. 그가 열람실로 들어가려는 그때, 나도 수다를 접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고 보니 내 자리는 그의 옆자리였다. 내 책상 위에 놀랍게도 자신의 책과 같은 책이 펼쳐져 있었다. (문학 전공자라면 누구나 소유한...) 그날 그는 옆에 앉은 내가 내내 신경 쓰였다. 이후 도서관에 오면 자동으로 나를 찾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는 비슷한 자리를 고집하는 사람들의 습관 덕택에 나와 마주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 그는 계속 내 주변 어딘가에 있었던 셈이다. 언제부턴가 내가 도서관에 오지 않으면 허전했고, 내가 다시 나타나면 기분이 좋았다. 나는 몰랐겠지만. 몇 번은 요행이 내 옆자리에 앉아 나란히 공부한 날도 있었다. 밤이 되면 쏜살같이 뛰어 나가곤 해서 몹시 바쁜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상이 대강의 사연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이후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일기’라는 것을 그는 아직도 매일 쓰는 중이었고, 거기에는 그의 일상에 내가 출몰했던 사건들이 꼼꼼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내가 등장한 내용들만 발췌해서는 이 역사적 소개팅의 의의를 밝히는 증거물로 제출했다. A4, 7장, 9포인트.


자주 마주치는 일이 반복되어, 조금씩 운명의 스멜을 감지할 즈음, 우연히 동창의 여자 친구의 과 선배가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가 상기된 얼굴로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를 설파하는 동안, 그러나 나는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우선 그렇게 누군가를 한눈에 사로잡는 대상은 일단 객관적 킹카 범주에 속해야 한다는 강한 (동시에 타당성 있는) 선입견이,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을 막았다. 정신 차려. 그럴 리가 없잖아.


게다가 아무 정보도 없이 모르는 사람을 6개월이나 무턱대고 좋아할 수 있나.

지루하고 비생산적인 그 행동을 장기간 그토록 성실하게 해왔다는 사실도 신빙성이 떨어졌다. 뻥이 심한 타입이겠지.


무엇보다 뭘 저렇게까지 호들갑스러운가. 그의 흥분은 어쩐지 새로 나온 건담이나 게임팩을 발견한 초딩의 무구함과 닮았다. 뭐야, 유치하게.


근본적으로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시간들이 타인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는 찝찝함을 떨치기 어려웠다. 잠재적 스토커?


운명의 데스티니와 같았던 여자가, 현재, 자기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한 나머지 그는 점차 목소리마저 흔들렸다. 반대로 나는 위와 같은 이유로 조금씩 심드렁해졌다. 특이한 사람이긴 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다. 남은 커피나 홀딱 원샷하고 아르바이트에 늦지 않게 일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선물이 하나 더 있다면서, 달필로 노랫말을 필사한 편지지와, 그 노래가 녹음된 공테이프를 내밀었다. 가드도 올리기 전에 필살기가 들어온 것이다.      



내가 너의 어둠을 밝혀줄 수 있다면 빛하나 가진 작은 별이 되어도 좋겠네
너 가는 길마다 함께 다니며 너의 길을 비춰주겠네
내가 너의 아픔을 만져줄 수 있다면 이름없는 들의 꽃이 되어도 좋겠네
음~ 눈물이 고인 너의 눈 속에 슬픈 춤으로 흔들리겠네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내 가난한 살과 영혼을 모두 주고 싶네     
내가 너의 사랑이 될 수 있다면 노래 고운 한마리 새가 되어도 좋겠네
너의 새벽을 날아다니며 내 가진 시를 들려 주겠네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이토록 더운 사랑 하나로 내 가슴에 묻히고 싶네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내 삶의 끝자리를 지키고 싶네
내 사람이여~ 내 사람이여~ 너무 멀리 서있는 내 사람이여           

* 김광석, <내 사람이여>



김광석이었다. 여느 김광석과 다른 김광석.           


슬픔을 호소하지 않아 더 가슴을 찢어놓는 그의 속삭임 창법과 달리, 폐부에서 길어 올린 아픔을 피를 토하며 터뜨리는, 내가 아는 김광석의 가장 큰 절규.


이 노래를 천 번쯤 들었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선고받고, 매일 울 수 없어 매일 이 노래를 들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그가 하게 내버려 두고, 남의 집 불구경하는 마음으로 내 슬픔을 방관했다. 천 번쯤 들으니 괜찮아졌었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한 남자가 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이 노래와 너무 닮아서, 이렇게 노랫말을 배껴올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작위적 신파극에 비장미가 감돌기 시작했다.

우연히 길에서 주운 낡은 가방이 알고 보니 이태리 장인이 한땀한땀 정성으로 만든 명품으로 밝혀진 것 같은 충격적 반전이었다.

우리의 관계에 브랜드가 붙었다. 김광석이라는 럭셔리 브랜드가.      


그 사소한 착각이, 찻집을 나서려던 나를 그대로 주저앉혔다.           


그는 주기적으로 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장문의 편지에 담아 선물했다.

그의 글은 늘 훌륭했다.

좋은 문장이 현란한 수사와 해박한 지식의 호위를 받으며 빼곡히 도열했다. 글의 중심을 관통하는 사랑의 정서는 독자의 이성과 감성을 번갈아 두드리며,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울렁이게 했다. 잘 빚어진 문장에 무방비로 항복하고 마는, 문과생의 아킬레스건을 절묘하게 공략하는 글이었다. 그의 사랑은 언제나 이렇게 문장으로 왔다.


내가 편지를 읽는 동안, 그는 황홀한 표정으로 내 기색을 살폈다. 줄 것을 줬으니, 받을 걸 받아야겠다는 결의마저 느껴졌다. 천천히 꼭꼭 씹어 글을 읽은 후, 감탄사로 시작하는 칭찬의 말을 돌려줄 거라 기대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너의 새벽을 날아다니며 내 가진 시를 들려 주겠’다던 김광석의 노래를 떠올린다. 이게 그 시로구나. ‘이토록 더운 사랑 하나로 내 가슴에 묻히고 싶’다던.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완벽하게 다른 사랑에 취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글에. 나는 김광석으로 분칠 된 또 다른 사랑에.






착각이란 게 늘 그러하듯, 현타가 오는 과정은 지질하고 비루했다. 홍상수 영화처럼 비슷한 다툼이 복사하기와 붙여넣기를 반복했다.      


편지 속의 서정적 자아는 현실의 그가 아니었다. 그가 호소하는 사랑의 절절함을 고려했을 때, 나에 대한 그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이기적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자기 것을 나누는 것에 인색했고, 반면 사랑하는 사람의 것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데는 너그러웠다. 그는 특히 자기 시간과 책을 아꼈다. 책과 시간은 가난했던 그 시절 문과생이 지닌 전부였으니, 결국 그는 제 모든 것을 애지중지한 셈이다.


절약에 서툰 대신 몸을 아끼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강행했던 나와는 달리, 그는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을 돈 버는 일과 바꾸지 않았다. 학과 조교로 일하며 나오는 소액의 장학금을 외과의사의 메스로 잘라내듯 정교하게 쪼개 썼다. 그러니 애초부터 누구와 나눌 돈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타인의 삶의 방식을 비난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 타인과 수시로 데이트라는 소비행위를 해야 하는 사람이 되고 보니 입장이 달라졌다. 그는 돈 많이 버는 내가 (그래봤자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돈 없는 그보다 더 많이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시간 많은 그가, 그 시간에, 시간 없는 나를 위해 뭐라도 해줄 것도 아니면서.


먹고 마신 후 계산할 순간이 되면, 그는 노골적으로 머뭇거렸다. 신발끈을 묶거나 물건을 찾는 시늉을 했다. 그 민망한 연극이 싫어서, 나중에는 아예 내가 먼저 '오늘은 내가 쏜다‘는 못을 박고 뭐든 시작할 지경이었다.  

‘오늘은 뭐 찾는 척 안 해? 운동화 끈은 안 풀렸어?’ 비아냥에 일가견이 있었던 나의 냉소에도 그는 까딱하지 않았다. 그의 또 다른 강점은, 일단 목적이 달성되고 난 후에는, 별책부록처럼 따라다니는 부끄러움 따위는 깔끔하게 무시할 수 있는 낯두꺼움에 있었다.

이렇게 빌붙으면서도 이렇게 해맑기가 쉽지 않다며, 오히려 으스대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그는 책을 사모았다. 비싸고 희귀한 책들도 많이 소장했다. 그는 그 책들을 누군가에게 빌려주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급한 전공책을 잠깐만 빌려달라고 말했다가 예상치 못한 그의 반응에 실망해 크게 싸우고야 말았다.


며칠만 읽고 돌려주겠다는 나의 말에, 그는 오래도록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굉장히 내키지 않는 말투마지못해 허락했다. 이전까지 내가 경험한 연애는 서로에게 뭐라도 더 줄 것이 없나 고민을 거듭하는, 온전한 이타적 관계맺음이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그의 태도에 몹시 당황했다. 제 '가난한 살과 영혼'을 모두 퍼주고 싶다던 그는, 살과 영혼은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책만은 빌려주기 싫다며 돌변한 것이다


사태를 파악한 나는 결국 ‘드러워서 안 빌리겠다’는 말을 최대한 드러운 표정으로 뱉어주었다.

그의 머리 위에 ‘휴, 다행이다’라는 안도의 말풍선이 둥둥 떠올랐다.      

매몰찬 말을 뱉고 돌아선 다음날, 그는 다시 길고 긴 연서를 들고 강아지처럼 나풀대며  나를 찾았다.


그가 사랑한 것은 결국 나는 아니었다. 사랑에 빠진 자신의 감정과 그 감정으로 빚어낸 자신의 분신, 자신의 글을 사랑한 것이다. 그는 그저 초라하고 옹색한 나르시시스트에 불과했다.


나 역시 별로 다를 것 없었다. 나는 그가 써 내려간 좋은 글들을 사랑했고, 그 글이 빚어내는 내 연애가 저 김광석의 절규처럼 비극적이고 처연한 것임을 가장했다. 그 비장미가 남루한 내 일상을 매일 휘황하게 만드는 마술에 조금씩 중독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해괴한 인문학도들의 사랑놀음에 종지부를 찍을 시간이었다.      


모든 착각의 시작은 김광석이었다.

하지만 브랜드에 홀려 집어 들었던 좋은 구두도, 발바닥을 자꾸 찔러 곧추서는 것을 방해하면, 방법이 없다. 버리는 수밖에.      


시작이 그러했듯, 마무리도 글이었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그의 화려한 만연체와 달리, 나의 글은 간단했다. 편지에서 출발한 연애는 메모로 막을 내렸다.


- 그만 만나자. 더이상 못하겠어.


니가 사랑을 아냐,면서 그는 울었다. 그러는 너는 아니?  

며칠간의 소요가 지나자 거짓말처럼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는 내 일방적 결별선언에 짐짓 눈물짓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이 극적 사건을 어떻게 써내려갈 것인지 머리를 굴렸을 것이다. 이 심플한 결별도, 보나마나 그의 글 속에서는 영혼이 난자당해 장대하게 파멸을 맞은 한 영웅의 처참한 최후로 묘사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맛 없는 과자와 맛 있는 과자를 번들로 붙여 소비자에게 동시에 떠넘기듯, 신은 그에게 옹졸함과 글재주를 함께 묶어 하사했다. 그의 글은, 그 글을 쓴 그와 너무 달랐지만, 그를 알기 전 그의 글에 먼저 반해버린 나같은 누군가, 그를 채용했다.


그 찬란한 필력을 무기로, 그는 졸업과 동시에 국내 최고의 영화잡지 기자가 되었다.      


이후로도 그의 글은 예상치 못한 시간에, 나와 밀착된 매체를 통해, 불청객처럼 내 일상을 방문했다.

그때마다 나는 자동으로 이어폰을 찾고 그 노래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이제는 천 몇 백번쯤 들었을 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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