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술집에서 나는 쏘야와 처음 만났다. 나는 쏘야에게 한눈에 반했고, 그날로 우리는 절친이 되었다. 쏘야는 소탈했지만 귀티가 났고, 친숙했지만 만날 때마다 조금씩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쏘야는 모두에게 인기가 좋았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날에는 쏘야도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빈곤한 그때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위로해준 쏘야. 러시아 여인의 이름이 아니다. 풀 네임, 쏘세지 야채볶음.
대학생이 되어 신기했던 일들 중 하나는 호프집 들어가 ‘여기 생맥 한 잔 주세요!’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것이었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절대 뚜껑을 열지 말라는 금단의 호리병을 끌어안고 긴 세월을 인내했다. 울컥이는 호기심과 싸우던 소심둥이의 나날은 종식되었고, 대학생이 되자마자 가장 열심히 탐구한 것은 전공서적이 아니라 알코올이었다.
프레시맨이었던 우리는 그 프레시한 신선도가 보존되는 동안 만큼은 인기가 좋아 여기저기서 불러댔다. 선배들은 우리를 보면 ‘왜 개떼같이 몰려다니냐’고 놀리면서도, 수업이 끝나면 그 개떼들을 몰고 삼삼오오 주점 골목으로 향했다. 이제 막 귀염둥이 신분에서 탈피한 2학년들은 누구라도 붙잡고 선배 노릇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났고, 복학생들은 하루라도 빨리 민간인으로 돌아가고자 만만한 신입생을 대상으로 군에서 단련한 사회성을 시험했다. 그리고 그 모든 시도는 대부분 참새들의 방앗간과도 같은 방과 후 호프집에서 실현되었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전체 신입생 환영회 날이었다. 올해 학과 대표에 선출된 3학년 선배는 뻘쭘하게 앉아 있는 신입생은 없는지 살피면서, 혹여 분위기가 가라앉을세라 수시로 파도타기를 외쳤다. 원샷의 파도가 조금씩 나를 향해 밀려올 때마다 매번 가슴이 두근거렸다. 몰래 절반쯤 마셔둬야 하나 고민에 빠져 있을 즈음, 술집 문이 열리고 그가 등장했다. 순정만화의 한 컷처럼, 그의 머리 위로 부챗살 후광이 번졌다. 영수 선배는 3학년 꽃미남 삼총사 중 하나였다.
여중, 여고를 졸업하고, 친오빠든 교회 오빠든, 일상에 '오빠'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일절 없었던 나에게 그의 모습은 한마디로 비주얼 쇼크였다. 큰 키에 어울리는 패션감각도 탁월했지만, 가장 압도적인 것은 그의 미모였다. 개인적 취향에 입각해서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고 뻐기는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그가 잘 생기지 않았다고 우기는 사람은 있을 수 없었다. 길에서 마주친다면 누구라도 5초 정도 눈길이 머물만한 마스크였다.
그는 비슷한 느낌의 동기 두 명과 함께 다녔다. 성격은 조금씩 달랐지만, 셋 다 목소리가 크지 않고, 자기 차를 끌고 등교한다는 점은 같았다. 무엇보다 그들은 깜짝 놀랄 만큼 씀씀이가 대범했다. 나의 하루 용돈은 3천 원. 식비와 교통비를 포함한 일체의 비용을 이 예산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학생식당 밥값은 7백 원이라, 테트리스처럼 절묘한 소비전략을 짜면 어쨌거나 생존은 가능했다. 반면 그들은 현재 지갑의 잔액이 얼마인지 별로 생각해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점심시간에 후배들과 마주치면 한번에 몇 명이 달라붙든지 개의치 않고 모두를 이끌고 밥집으로 향했다.
저녁 무렵이면 2학년 선배들이 신입생을 소집한 후, 영수 선배에게 찐드기를 붙었다. 그들은 후배들에게 한껏 목소리를 깔다가도, 영수 선배 앞에서는 급속도로혀가 짧아지며술 고프다고 애교를 떨었다. 그와 함께라면 생색은 생색대로 내면서, 술값 걱정은 접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싫지 않은 듯, 후배들이 팔을 잡아 끌 때마다 선선히 앞장을 서곤 했다.
학교 앞 레벤 호프는 테이블을 이어 기다란 단체석을 만들 수 있기에, 신입생이 들어오는 3월이면 인기가 좋았다. 자리에 앉으면 자동으로 눅눅한 팝콘과 500cc 생맥주 잔이 돌아갔고, 곧이어 단골 메뉴인 쏘야와 마른안주가 등장했다. 테이블에 접시가 놓이자마자 날쌘 포크들이 벌떼처럼 소시지를 공략했기에 한눈을 팔다가는 ‘쏘’는 맛도 보지 못하고, 당근, 피망, 양파와 같은 ‘야’만 휘적거리다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초중고 내내 도시락 반찬으로만 만났던 그것이, 야채와 섞여 의젓한 안주로 변신한 것이 신기했다. 비엔나 소세지는 칼집내어 튀기는 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조리법이었다. 비엔나 소시지에 대한 하나의 패러다임이 무너진 것이다. 토마토 케첩도 마찬가지다. 20년 동안 줄기차게 뭔가를 찍어 먹는 소스인 줄로만 알았는데, 여기서는 간장이나 고추장처럼 요리를 지배하는 메인 양념으로 기능했다. 반찬이든, 안주든 소시지는 언제나 옳다는 사실만큼은 지동설처럼 명확한 진리였다.
여름방학.
자잘하게 처리할 사무가 있어 오랜만에 학교에 들렀다. 고향으로 내려간 사람들이 많아, 북적이던 학교가 고즈넉했다. 볼일을 마치고도 어쩐지 아쉬워서 과방 근처를 어슬렁거리는데, 어디서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가 있었다.
무심코 과방 문을 열었던 나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영수 선배가 혼자 기타를 연습하고 있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흠모하던 스타와 맞닥뜨린 덕후의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 갑작스러운 나의 출현에 잠깐 멈칫했던 그는, 눈으로만 슬쩍 아는 체를 하고는 다시 연주를 이어갔다. 돌아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어 망설이다가, 마침내 나는 용기를 내기로 한다. 큰 책상을 마주하고 그의 앞에 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는 척을 했다.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 사이라, 우리는 별로 나눌 말이 없었다. 그는 늘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킹카였고, 나는 신입생 자격으로 술자리를 따라다니던 무리의 개떼 중 하나였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책을 보고 있지만 한 글자도 읽을 수 없는 나와, 어려운 코드를 잡느라 미간에 주름이 잡힌 그가 현재 뭔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만 같을 뿐.
한 시간 동안 그는 기타를 치고, 나는 책을 보았다. 마침내 따분한 표정으로 그가 물었다.
- 배 고픈데 밥 먹으러 갈래? 아니면 술이나 한 잔 할까?
예상치도 못했던 그의 말에 정신이 번쩍했다. 술이라니!! 내가 지금 제대로 들었나? 혹시 술이나 한 잔 하자는 그의 말이, 내가 모르는 최신 농담의 일종은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도 이성은 날뛰는 심장을 경멸하며 입바른 소리를 했다.
- 정신 차려! 영수 선배는 그저 술이 한잔 마시고 싶었을 뿐이야. 원래 술을 좋아하고, 술 사는 것도 익숙하니까. 혼자 술집에 가는 것은 이상하잖아. 누구라도 필요했겠지. 몇 시간 끌어안고 있었다고 해서, 통기타와 대작을 할 수는 없지 않겠어?
친하지 않은 여자 후배에게 술을 먹자고 한 것이 어색했던지 그는 다시 한번 밥을 먹어도 된다고 강조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나는 펄쩍 손사래까지 치며, 안 그래도 맥주가 너무 먹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마침내 우리는 학교 후문의 호프집에서 생맥주 한 잔 씩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정말 현실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날이었다. 가끔 황당무계한 꿈을 꾸면서 ‘이건 보나 마나 꿈’이라고 알아채는 때가 있는데, 이때의 심정이 그와 비슷했다. 안주는 역시 쏘세지 야채볶음. 칼집을 넣은 소시지가 먹음직스러웠다. 경쟁적으로 포크를 휘두를 필요가 없어 더 행복한 날이었다. 빈 속이라서, 또 말문이 막혀서, 나는 잠자코 안주만 집어먹었다.
목이 매면 생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전에는500cc 이상 마셔본 적 없었는데 어쩐 일인지 오늘따라 맥주가 달콤했다. 침묵이 끼어들면 선배가 어색할까 봐 한껏 머리를 굴려 얘깃거리를 찾았다. 선천적 낯가림도 알코올 몇 잔에 말끔하게 극복되었다. 술잔의 바닥이 보이면, 행여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는 말이 나올까 봐 냉큼 한잔을 더 주문했다. 이로써 몇 십분 동안은 이 만남이 연장될 것이다. 비운 술잔이 늘어날수록 말은 청산유수, 기분은 술집 천정을 뚫고 고양되었다.
외모가 유발하는 선입견과 달리, 그는 의외로 소탈하고 다정했다. 친한 선배 언니처럼 나의 두서없는 수다에도 열심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어쩌면 맞장구를 쳐준 그역시 알코올의 호출을 받고 튀어나온 또 다른 자아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죽이 잘 맞는 친구처럼, (어쩌면 데이트 나온 연인처럼) 쉬지 않고 떠들었다. 사람들, 일상, 그리고 나에 대하여, 그에 대하여.
마침내 바른말을 퍼붓던 이성도 술에 골아떨어지고, 촐싹거리는 낙관의 요정이 혀 꼬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 오늘부터 시작이야. 어제까지는 선배였지만, 내일부터는 오빠가 되는 거지. 사람의 사귐이란 그런 거야. 알 수 없는 일들이 모여, 알 수 없는 인연을 만들어 내는 것. 용기를 내. 이제부터 뭔가 달라질 거야.
어느 순간부터 술을 마신 것은 내가 아니었다. 허구헌날 술이 술을 먹었다고 한탄하던 복학생 선배의 말이 무슨 뜻인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술로 시간을 붙잡고 싶어도, 마지막 곡을 향해 달려가는 콘서트처럼 마침내 마술 같았던 축제는 마무리되었다. 앙코르도 불가능한 그의 모든 말들이 어쩐지 서글프게 가슴에 박혔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근처에서 하숙하던 선배 하나가 램프의 지니처럼 뿅 나타났다. 대리기사를 해달라며 그가 부른 것이었다. 그들은 내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잘 가라고 택시에 실어 보내기에, 내 꼬라지가 몹시도 위태로웠을 터였다. 휘청이는 몸으로 뒷좌석에 오르며, 나는 그 와중에도 이 차에 태운 여자가 몇 명이나 될까, 잠깐 생각했다.
한참을 졸다 일어나니, 앞 좌석에서 선배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부스럭거리는 기척을 하자, 운전하던 선배가 당부했다.
- 거의 다 왔으니까, 근처에 가면 정확하게 다시 위치를 알려줘야 해.
그의 말에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오늘 하루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주량도 모르고 혼자 달렸던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홀로 로맨스 소설의 도입부를 써 내려간 사실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기껏 술을 사줬으면, 깔끔하게 마시고 산뜻하게 물러났어야지. 친하지도 않은 선배한테 이게 대체 무슨 민폐야!
난장판으로 어질렀던 방에 불이 커지듯 서서히 정신이 맑아졌다. 문제는 몸이 정신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일어나서, '지금 갓길에 세워주시면 알아서 귀가하겠습니다. 선배님!' 깍듯하게 인사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싶은데, 뱃속에서는 생각과 정반대의 신호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니야. 안돼. 이건 아니지. 아아아아아아 절대, 안 된다구!
몸과 정신이 격하게 싸웠지만, 취한 몸은 여전히 막무가내였고, 결국 몸이 맨 정신을 이기고야 말았다. 고요했던 뒷좌석에서 불현듯 들려오는 비참한 소리에 선배들은 황급히 차를 세웠다. 갓길에 차를 세운 것은 내 상상과 일치했지만, 후반부는 내 바람과 상당히 다른 결말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삼켰던 소시지가, 아직 멀리 간 것은 아니었다며 열심히 가던 길을 되돌아왔다. 이 차에 탔던 여자가 몇 명이었을까 궁금했는데, 적어도 이 차에 오바이트를 한 여자는 내가 유일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람들은 종종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맛으로 표현한다. 행복은 달콤한 맛, 패배는 쓴 맛, 배신은 씁쓸한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