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놈 없다.”, “소주 맛을 아는 이와 인생의 쓴맛을 이야기하자.”, “내 인간관계의 8할은 술친구 들이다.” 모두 술자리에서 술꾼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 지금 보다는 젊었던 시절. 혼술을 시작하기 전 20~30대의 나는 술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좋고 술자리를 즐기는 성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40대가 되면서 왁자지껄한 술자리보다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술자리에 끌리게 되었고, 가끔은 혼술을 하게 되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결코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50을 바라보는 나에게 술은 음식맛을 업그레이드시켜주는 일종의 향신료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술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맛있는 안주가 없으면 술을 찾지 않는다. 이런 편식의 주당도 가끔은 먹고 싶은 술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러한 주종 중의 하나가 소맥이다. 흔히 소맥은 회식자리에서 흥을 올리기 위해 함께 제조해서 나누어 마시는 일종의 칵테일이지만 소주의 양에 따라 평소 주량보다 훨씬 빨리 취할 수 있는 약간은 위험한 주종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한국인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그 맛만큼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맥주를 즐기지 않는다. 더운 여름 온몸의 열을 식히기 위해 간혹 마시기는 하지만 첫 한두 잔으로 목을 축이고, 주로 소주 마시기를 선호한다. 하지만 그런 맥주에 적당한 비율의 소주가 들어가면, 빛깔부터 영롱하고 목 넘김도 부드러운 다른 주종이 되어버린다. 술꾼들이 사랑하는 소맥이 좋은 이유는 취향에 따라 농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첫 잔은 9:1(맥주 9, 소주 1) 정도로 부드럽게 시작해서 7:3이나 6:4로 마시길 선호한다. 지긋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가끔 소맥이 생각날 때 가는 맛집들이 있다. 오늘 소개할 집은 두 곳이다.
서귀포 신시가지에 위치한 “이태리 치킨”. 간판부터 이태리와 치킨은 무슨 조합일까 싶었다. 가게 내부에 들어가도 이태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메뉴를 보면 더욱 의아해한다. 흔히 맥주를 파는 치킨집의 메뉴는 치킨과 감자튀김, 골뱅이 무침이나 과일안주 또는 마른안주가 일반적이다. 이태리 치킨 집에는 치킨과 수제비 세트가 있다. 그것도 보말 수제비다. 제주 토박이의 연세 지긋한 삼춘이 튀겨주는 치킨은 옛날식이다. 튀김옷이 얇고, 일반 치킨집보다는 조금은 더 큰 닭을 사용하시는 듯 조각 당 크기가 큰 편이다. 함께 나오는 감자튀김도 웨지감자 스타일로 껍질 채 두껍게 조각내어 치킨 파우더를 입혀 튀겨내 조금은 매콤하고 식감이 좋아 치킨 맛과 잘 어울린다. 처음 맛본 지인들도 감자만 따로 추가해서 주문하게 만드는 맛이다. 치킨은 양념이라고 정의 내리신 분들이 아니라면 이태리 치킨에선 양념보다는 후라이드가 맛이 좋다.
나의 입맛에는 치킨보다 더 맛있는 메뉴가 보말 수제비다. 제주에서 보말은 무척이나 친숙한 식재료다. 물질을 하지 않고서도 손쉽게 채집할 수 있지만, 작은 보말을 삶아 더 작은 속살들을 빼내는 것이 번거로워 집에서는 자주 조리하지 않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은 보말은 모든 국물 음식에 잘 어울린다. 보말 수제비도 그중 하나일 것이고, 치킨집에서 파는 수제비란 가벼운 편견을 맛으로 지워준다. 우선 국물이 진하다. 냄비 바닥에 깔려있는 보말 알갱이의 양을 보면 놀랄 것이다. 맛이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다. 아무튼 수제비 맛이 끝내준다. 한 가지 팁을 얹자면, 다진 청양고추를 따로 달라고 해서 기호에 맞게 넣어서 먹으면 더욱 훌륭한 안주가 된다. 치킨과 수제비 조합의 장점은 약간은 퍽퍽한 치킨과 소맥을 마시다 맥주가 배부를 때쯤 자연스럽게 수제비와 소주로 갈아탈 수 있다. 이 집의 다른 메뉴는 먹어보지 못했다. 집 근처의 수많은 치킨집을 뒤로하고 신시가지까지 가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이태리 치킨은 소맥에 최적화된 집임을 자신한다.
두 번째 맛집은 서귀포 동홍동에 위치한 “호랑이 막창”이다.
돼지 막창은 주로 소주와 함께 먹는 대표적인 소주 안주다. 하지만 이곳 막창은 소맥과 잘 어울린다. 그러한 이유의 첫 번째. 막창이 부드럽다. 양념막창을 주문하면 주방에서 초벌을 구워서 가져온다. 때문에 막창을 불판에 슬쩍 올려서 먹으면 된다. 돼지의 다른 내장들이 그러하듯 막창도 굽다 보면 너무 많이 구워 딱딱해지기 쉬운 음식인데, 이곳 막창은 차돌박이 구울 때처럼 불판에 올려 슬쩍 굴러주면 탱글탱글하게 식감이 살아난다. 둘째, 과하지 않은 양념. 흔히 먹는 곱창볶음처럼 양념이 과하지 않고, 살짝 매콤하고 은근히 단맛이 난다. 쌈을 싸서 먹으면 채소향과 어우러져 소맥의 부드러운 맛과 잘 어울린다. 쌈을 쌀 때 상추보다는 깻잎과 먹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
초벌 한 막창을 포장해 갈 수도 있어서 막창을 좋아하는 어린 친구들이 있다면 집에서 즐길 수도 있다. 막창으로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난 후엔, 볶음밥을 시켜야 한다. 이때 셀프 볶음밥 말고 그냥 볶음밥을 시키자. 어설프게 숟가락을 들고 이리저리 뒤섞어도 직원들이 볶아주는 밥보다 맛있기는 힘들다.
앞에서 소개한 집들과 달리 오늘의 추천 맛집들은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염려하지 말자. 소주와 맥주를 사랑하는 분들에겐 수많은 맛집들이 있음에....
소맥을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우리의 간에 감사하며.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