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겨울이 오길 기다리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일 년간의 결실을 맺는 귤 수확철이기도 하고 하얀 눈 덮인 한라산을 볼 수 있다는 설렘에 겨울을 반긴다. 또 하나 겨울의 축복은 생선회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찬바람이 불고 바다 수온이 떨어질수록 모든 생선의 살은 탱탱해지고, 기름기가 오른다. 그중에서도 부시리와 방어는 겨울에만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어종이다. 육지에서 일식집을 운영할 때, 부시리(히라스라고도 많이 불린다)는 주로 여름철에 쓰는 어종이었다. 하지만 이곳 제주, 그중에서도 남쪽 지역인 서귀포에서는 겨울철 부시리를 최고로 친다. 물론 두 어종 모두 낚시를 나가 잡아올 수도 있지만, 나는 낚시를 즐기지 않고 여전히 먹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터라 먹는 방법을 이야기하려 한다.
수족관에 부시리와 방어를 넣고 구별하는 건 쉽지 않다. 가장 쉬운 구별법은 부시리는 눈에서 꼬리 부분까지 가로 방향으로 노란색의 띠가 보이지만 방어는 없다. 또한 비슷한 크기에도 뚱뚱해 보이면 방어이고, 날렵해 보이는 것이 부시리다. 부시리 회를 먹을 때는 횟집보다는 매일올레시장이나 지역 항구의 수산센터를 이용하는 걸 추천하고 싶다. 회를 좋아하는 사람이 3인 이상이라면 올레시장의 회를 떠주는 수산집을 찾는다. kg당 20,000~25,000 원 정도의 가격이 책정되기도 하고, 한 접시에 50,000 원 정도를 받기도 한다. 집에서 먹는다면 회를 떠 와도 되지만, 오로시만 해서 통으로 생선살을 받아와 보자. 원하는 부위를 좋아하는 두께로 먹을 만큼 회 떠서 먹고, 남은 부위는 해동지에 싸서 냉장고에 보관하면 2일 정도까지는 숙성회로 두고 먹을 수 있다. 서귀포 사람들이 부시리를 먹는 방법은 간장, 식초, 미림,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소스에 양파, 부추나 실파를 썰어 양념장을 만든다. 두툼한 부시리 살을 양념장에 듬뿍 찍어 깻잎과 맨김에 밥과 함께 쌈을 싸서 먹는 걸 선호한다. 밥이 들어가면 맛이 떨어질 것 같지만, 맛있는 삼겹살을 먹을 때 쌈에 밥을 조금 넣으면 더 맛있는 것과 같은 맛이다. 보통 등살은 쌈을 싸서 먹고, 뱃살은 와사비 간장에 찍어먹는 것이 좋다. 생선이 큰 경우 턱살과 사잇살을 맛볼 수 있는데, 특히나 사잇살은 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질 좋은 육사시미를 먹는 맛이 난다. 회맛을 어느 정도 즐겼다면 다음은 내장 수육을 맛봐야 한다. 부시리, 방어 모두 큰 어종이기 때문에 안의 내장도 양이 꽤 된다. 위와 간, 십이지장과 알 까지 흐르는 물에 씻어 이물질을 제거하고 부위별로 구분해 둔다. 끓는 물에 된장과 소주를 약간 넣고 내장은 튀겨내듯 3~4분만 데쳐낸다. 육고기의 내장보다 훨씬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의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대가리도 얻어왔다면 자이글이나 숯불을 펴서 구이로 먹을 수 있는데, 맛이 닭고기 맛과 비슷해서 회를 못 먹는 사람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끝으로 생선 뼈를 고으듯이 무와 함께 푹 끓이면 진한 매운탕도 훌륭하다. 이때 남은 내장이 있다면 함께 넣어도 좋고, 개인적으로 매운탕 보다 소금 간만 해서 미나리를 듬뿍 넣은 맑은 지리를 끓이는 것을 선호한다. 이렇게 회와 내장 수육, 구이, 탕 까지 모두 먹을 수 있다면 어떤 횟집에서 먹을 때 보다 만족하리라 자신한다.
방어 역시 같은 방법으로 먹을 수 있는데, 특히나 뱃살과 등살의 맛 차이가 크기 때문에 회는 뱃살 위주로 먹고, 등살은 보관해 두었다가 회덮밥이나 전으로 부쳐먹으면 모든 부위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번거롭다면 올레시장 근처 식당에서 자리 값과 술값만 따로 내고 편하게 먹을 수도 있다. 아무 식당이나 해주는 건 아니고 회를 사는 수산집에 물어보면 근처 식당을 추천해 준다. 보통 자리값은 오천 원이고, 술값은 따로 받는다. 이때 수산집에서 내장을 꼭 챙겨달라고 해야 내장 수육을 맛볼 수 있다. 흔히 제주에 오면 감성돔이나 돌돔, 벵에돔 같은 고급어종을 찾기 마련이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높은 수준의 회맛을 즐길 수 있는 도민들의 팁임을 알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