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사랑하는 삼겹살은 언제 먹어도 누구와 먹어도 한결같이 맛있다. 섬임에도 불구하고 횟집보다 삼겹살집이 더 많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제주에 살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서귀포의 어는 고깃집을 가더라도 맛으론 크게 실망하지 않을 만큼 제주의 돼지고기는 맛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은 특별한 맛집을 소개해 보려 한다.
식당이 아닌 일반 가정집이고, 남자 혼자 사는 집이다. 서귀포에 내려와서 알게 된 채 형님은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분으로 성품이 좋아 항상 주위에 사람이 많다. 서귀포가 좋아 다른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지만, 채 형님 집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운행이 없는 날이면 형님 집 마당에선 낮부터 고기 굽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오늘 들어온 고기가 삼겹살이면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불판을 올리고, 목살이면 숯불을 피워 석쇠를 올린다. 워낙 고기를 자주 굽다 보니 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테이블 중앙에 숯불을 놓게 구멍이 뚫린 상이 있고, 숯도 박스로 쌓여있다.
효돈 마을에 있는 대영축산에 가서 원하는 두께로 삼겹살이나 목살을 썰어달라고 부탁하면 냉장고에서 덩어리 고기를 들고 나와 주문즉시 원하는 만큼 구입할 수 있다. 채 형님집의 고기 맛을 대영에서 책임진다면, 신선하고 다양한 쌈채소는 집 근처 텃밭에서 바로 솎아서 흐르는 물에 씻어서 챙겨 온다. 한 겨울에도 봄동, 상추, 배추, 무청까지 밭 전체가 푸릇푸릇한 서귀포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땐 전정하고 난 후 귤밭 한쪽에 쌓여있는 귤나무 가지를 태워 숯을 만든다. 귤나무 숯으로 목살을 구워 먹어 보았는가? 귤향을 품은 두툼한 목살에 굵은소금을 듬성듬성 뿌려주는 것만으로 모든 요리가 끝난다. 앞뒤로 두 번씩 뒤집고 큼직하게 가위로 썰어 익지 않은 안쪽 면을 세워 줄맞혀 놓고 목살이 익기를 보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힘들지만 행복한 기다림을 견디고 난 후, 먹는 첫 목살 맛에 진심을 담아 박수를 쳐본다. 좋은 공연을 보았을 때 외치는 ‘브라보’를 크게 외치며 목살 맛에 환호한다. 맛있는 돼지고기에 빠질 수 없는 오랜 단짝 소주는 냉장고에 충분하기에 오늘도 행복하다. 포기 채 썰어 온 김장김치에 죽순, 고사리, 취나물로 담근 장아찌까지 함께하면 느끼하지 않게 목살을 양껏 먹을 수 있다.
삼겹살을 먹을 때는 숯대신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커다란 사각 불판을 쓴다. 불판을 예열시키고, 역시나 두툼한 삼겹살을 줄 맞춰 올려준다. 기름이 나오기 시작하면 삼겹살 밑으로 신김치와 고사리를 올려준다. 제주 고사리는 통통하고 식감이 좋아 고기 구울 때 함께 먹으면 궁합이 좋다. 커다란 쌈에 삼겹살을 올리고, 구운 신김치와 고사리, 된장 찍은 마늘이나 고추를 얹어 입을 크게 벌려 한 입에 넣어 씹는 맛이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누구나 아는 맛이라 긴 설명을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진짜 맛있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운이 좋을 땐, 낚시를 즐기는 누군가 협찬한 무늬 오징어도 불판에 올라간다. 들어는 보았는가? 삼겹살 기름에 튀겨먹는 무늬 오징어. 육지에선 싯가를 주고도 맛보기 힘든 무늬 오징어를 사이드 메뉴로 맛볼 수 있는 채 형님 집이야말로 서귀포 최고의 맛집이다.
삼겹살을 배불리 먹었음에도 형님 표 김치찌개는 언제나 거부할 수 없다. 묵은 김장김치를 물에 살짝 빨아 듬성듬성 썰어 넣고, 돼지고기와 달달 볶다가 쌀뜬물을 붓고 푹 끓여 국물이 자박자박 해지면 두부를 크게 크게 썰어 넣어준다. 더는 못 먹겠다고 배를 두드리던 지인들도 수저를 다시 들고, 소주잔을 채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구워 먹는 돼지고기는 ‘행복’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 시간이 너무 맛있고 행복했음이 온 감각으로 다시 느껴진다. 오늘의 맛집은 행복을 나눠주는 신기한 집이다.
재건이 형, 오늘도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