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에는 ‘치유의 숲’이라는 자연 휴양림이 있다.
서귀포 남쪽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차를 몰고 올라가다 보면 중산간에 있는 곳이다.
예전부터 수술을 마친 암 환자들이나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차 제주에 내려온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알려진 휴양림이다.
침엽수와 활엽수를 동시에 만나볼 수 있고, 넝쿨과 지의류 종류도 볼 수 있는 꽤 큰 장소임에도
오르막길이 많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산책할 수 있는 코스여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숲이다.
육지에 살다가 제주로 이주해 사는 이들 대부분은 산이나 바다를 매우 좋아한다.
솔직히 나의 경우 서울에서 살 때는 산과 바다를 이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
제주에 내려와 서귀포에 정착해 살다 보니, 자연스레 산과 바다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바다와 한라산도 보이는 집에 살면서 차츰 그 풍경의 감흥이 무뎌지긴 했지만
지금도 바닷길을 걸으며 짠내음을 맡고 파도소리를 들으면 심신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같이 사는 여동생은 심신이 힘들 때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찾아 한 두 시간씩 돌고 오는 편이다.
반면 나는 바닷길을 걷는다.
차를 몰고 다닐 땐 느낄 수 없는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짠내음의 바람과
갯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를 아무 생각 없이 느끼며 걷고 있다 보면 힘든 몸과 마음이 어느새 풀려있다.
제주에서 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이렇게 바닷길을 걷는 행복함 때문이라면 너무 소소한 이유일까?
같은 바닷길을 걸어도 그날의 기분에 따라 바람과 파도소리가 다르게 들리고 바다 색깔도 달라 보인다.
육지에 살면서 잠깐씩 들르는 바다와는 많이 다르다.
매일 보지만, 일이 바빠서 며칠씩 파도소리가 들릴만큼 가까이 가보지 않으면
괜히 우울하고 기운이 없다가도, 잠깐이라도 바닷길을 걷다 보면 다시 좋아진다.
제주가 좋아서 내려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렇게 산과 바다를 기까이 하며 지낸다.
서울에서 바쁘게 일상을 보내다 몸과 마음을 충전하려면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섬에서의 삶은 사뭇 다르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적을지 모르지만, 문을 열고 나가면 모든 것이 내 몸과 마음을 치유해 준다.
굳이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조금 덜 벌고 덜 치열하게 살려고 내려온 이곳에서 우리는 치유의 산과 바다를 만났다.
눈 덮인 한라산과 검푸른 바다는 겨울이 지나고
봄과 여름이 다시 돌아오면, 또 다른 모습으로 나를 치유해 주겠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