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가 많은 이번 달입니다. 예년이었다면 이런 저런 축제를 즐기러 다녔겠지만, 올해의 오월은 유난히도 일기를 쓸 새도 없을 정도로 바쁜 한 달이었어요. 그런 중에 참여한 편지 공모전에서 좋은 결과가 나와서 기분이 좋은데, 거기 쓴 한 문장을 옮겨보면서 머리말을 대신하고자 해요.
오늘은 저녁에 샤브샤브를 먹어. 누구랑 먹을지 기대되지 않니? 네가 예상하는 인물일 수도, 아닐 수도 있어. 그만큼 네 삶은 예상 못한 일들로 가득해. 그러니까, 앞으로의 삶은 이럴 것이다, 하고 함부로 단정하지 말아. 부디 예상 못한 행복을 기대해주길 바라.
(10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오랜만에 10개! 감격스럽네요.)
부처님 아직 안 가신 날
난생처음 공휴일이 연장되었다. 사람들은 대체공휴일이 지정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실은 나만 알고 있었다. 부처님이 아직 안 가셨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지금 우리 집에 계신다. 나는 어젯밤, 부처님께서 들르셨을 때 박카스에 약을 타서 드렸다. 이유는 단 하나다. 하루만 더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그분은 아직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계신다. 어젯밤 사자(使者)들이 부처님을 찾아다녔다.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셨는지 아시오? 그들이 물었을 때 나는, 단지 서쪽으로 가신다는 이야기만...... 하고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이 들통난 것은 다음날 오후 5시가 지나서였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기에 나는 이제는 평일로 바뀌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잠에서 깨신 부처님은 그 찰나의 순간에 나의 모든 죄를 깨달으셨다. 그러나 인자한 미소를 띠시고 물으셨다.
"어젯밤 저를 잠들게 하였을 때, 당신의 마음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현재에 있었습니까, 과거에 있었습니까, 미래에 있었습니까."
나는 말문이 막히다가 겨우겨우 대답했다.
"그, 그때는, 미, 미래에 있었습니다."
"몸은 언제나 현재에 머물러 있는데,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있으면 사람은 고달파지는 법이지요. 고달파진 인간은 성급한 선택을 내리게 됩니다. 오늘의 당신은 어땠습니까. 하루 동안 원하는 만큼의 휴식은 얻었습니까?"
부처님은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띠고 계셨다. 그 말에 나는 답할 수 없었다. 나는 옆에 곤히 잠드신 부처님을 보며, 언제 자신의 잘못이 들킬지만을 두려워했다. 나는 휴식에 집착했고, 집착은 괴로움을 낳았다. 나는 고개를 떨궜다.
"하루를 더 쉬고 싶다고 생각한 당신의 생각을 저는 용서합니다. 하지만 하루를 더 쉰 만큼, 그 하루 분량의 일을 더하게 된다는 것을 당신께서는 잊으신 듯합니다."
부처님은 그날 저녁 돌아가셨다. 사자들은 나를 째려보며 업보는 반드시 받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가슴 한쪽이 쿡쿡 찔리는 것을 느꼈다. 불안은 적중하였다. 그 주에 나는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만 했다. 월요일이 시작될 즈음, 마침내 나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다음 생에 받아야 하는 업보도 남아 있었다. 그 업보가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어떤 것인지 모르는 대상에 인간은 가장 큰 불안을 느낀다.
(이 이야기는 <법구경>에 없는 내용인데, 그 이유는 여기서 만들어낸 거짓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산타가 쓴 사직서
소속 : 아시아-한국지부
제출일시 : 2024년 5월 12일 오전 9시 27분.
사직사유 : 지금 저희는 재정난에 시달려 두 마리 쓰던 루돌프도 한 마리 쓰는 상황입니다.그래도 재정난은 나아질 기미가 없어, 올해는 길을 지나다니면서 누가 착한 애인지 나쁜 애인지 구별만 해대고 다녔습니다. 얘는 양말 뒤집어 벗었으니까 선물 제외, 얘는 밤중에 쇼츠 봤으니까 선물 제외......
그렇게 네 달 넘게 아이들의 행적에 꼬투리를 잡으며, 스스로 '이렇게만 해나가면 예산을 맞추겠구나'하고 좋아하던 와중이었습니다.
어젯밤, 지하철에서 어떤 아저씨가 들어오다가 한 아이와 부딪쳤습니다. 저는 언짢아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며, 아이가 언제쯤 욕을 뱉을지 입을 유심히 보고 있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욕도 많이 하니까요. 저는 아이의 입에서 욕이 나오는 순간, 선물 대상 리스트에서 그 아이를 제외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다른 아이가 그 아이에게 그러더군요. 헤헤, 나도 좀 화났어, 하고. 그 아이는 웃으면서 말을 건넸습니다. 완벽한 타이밍이었고, 두 아이는 같이 웃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지금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한심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이 일을 시작했는데, 이제 저는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꼬투리나 잡고 다니는 시답지 않은 산타가 되어 있더군요. 저는 시답지 않은 어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산타로 활동할 자격이 없습니다.
상기 본인은 위와 같은 사정으로 인하여 금일부로
사직하고자 하오니 선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마 우리 모두가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겠죠
"아마 우리 모두가,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겠죠."
"무슨 소리야 지금."
분명히 싸우고 있었다. 물론 싸움의 계기는 사소한 것이었다. 대학생인 아들내미가 아직도 습관을 못 고쳤길래 한 소리 하다가 그렇게 됐다. 그렇게 말싸움을 하다가 아들이 갑자기 드라마 대사 같은 문장을 꺼냈다. 나는 그 말이 너무나도 황당하여, 내가 무슨 질문을 했기에 저런 대답이 돌아왔는지조차 까먹어버렸다.
그래. 나는 분명히, 왜 아직도 양말을 뒤집어서 벗어, 라고 따졌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말싸움에서 불리해졌을 때 저렇게 대답하면 무엇이든 아름답게 승화시킨 것처럼 말을 끝낼 수 있다는 모양이다. 아-.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했다. 말발이 예사롭지 않으니 굶어 죽지는 않겠다만, 혹여 사기꾼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문학적인 표현이란 정말 무섭다. 나는 양말을 자꾸만 뒤집어서 벗는 아들의 습관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모두가 꿈을 꾸고 있다'는 문장에 담긴 심오한 뜻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아들 왈, 거기에는 아무 뜻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작가의 말을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 독자처럼 계속 그 말을 떠올렸다. 저녁에 남편이 돌아왔다. 저녁밥 만드는 걸 잊고 있었다. 남편이 멍한 나를 보며 무슨 일 있었냐,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무심결에 대답했다.
"아마 우리 모두가......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겠죠."
"뭔 소리야 그게."
입하立夏
가장 어렸을 때의 기억을 찾아나가다 보면, 나는 세 살이 되던 해 어린이날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그날 나는 접이식 핸드카트에 탄 채로 쭈쭈바를 먹고 있었다. 오렌지맛의 내용물이 입안을 차갑게 식히고 있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나왔을 아버지는 카트를 손으로 끌며 동물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떤 동물을 봤는지, 하물며 어디에 있는 동물원이었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새신 아버지께 그 이야기를 드렸다. 아버지는 담장 벽에 무리를 이룬 담쟁이덩굴에 시선을 두셨다. 담쟁이 잎들이 눈부신 햇살을 반사하면서 더욱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아직 5월이었다. 그러나 날씨는 벌써 여름에 접어든 듯했다.
"그때도 오늘처럼 엄청 더웠지. 아빠도 기억나네."
그러나 그 더위를 떠올리는 아버지는 웃고 계셨다. 여름이었다. 나는 어디서 처음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그 유행어를 속으로 말해보았다. 그 말은, 지금부터 시작될 찝찝한 더위마저도, 나중에 하나의 추억이 될 거라고 속삭이는 듯한 묘한 말이었다.
피곤하면 튀김꼬치
-피곤해? 튀김꼬치 먹을래?
어느 날인가 새벽까지 술을 마시면서 그 애가 그렇게 말했다. 대학생 때의 우리는 삶이 지루할 때, 편의점 앞에 있는 벤치에서 밤새 소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곤 했다. 3시가 되어 내가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그 애가 내 어깨를 잡으며 얘기했다. 분명 옆에 있는 '자꾸만 당기는 튀김꼬치 1+1'라는 광고를 봤으리라.
-그냥 본인이 먹고 싶은 거 아니세요?
그리고 소주에 무슨 닭이야, 내가 장난스럽게 되받아쳤다. 그날 그래서 튀김꼬치를 먹었나 어쨌나, 한참 취해 있어서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야근을 끝내고 피곤에 절어 돌아오다가 나는 비슷한 편의점 광고를 다시 봤다. 건강 때문에 밤에는 물만 마시던 것도 잊은 채로, 홀린 듯이 닭튀김 꼬치를 하나 사서는 돌아오면서 먹었다. 묵은 피로가 풀리면서 그 애 생각이 났다. 정말로 효과가 있잖아? 나는 꼬치에 마지막 남은 닭튀김을 조심스럽게 빼서 먹으면서, 그 애가 사실은 진심에서 그런 말을 했을지 궁금해했다.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집으로 가는 길이 즐겁게 느껴졌다.
소만小滿
축제 열기가 도서관 안으로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조용했던 근처 도로가 오늘은 시끌벅적했다. 어느 대학교에 어떤 연예인이 오는지에 대해 커뮤니티에 개개인의 추리가 연달아 올라오고 있었다. 퇴근할 준비를 마치면서, 그녀는 '선생님은 좋아하는 연예인 없으세요?' 하고 물었다. 선생님이라고 불린 여자는 에어컨 리모컨의 건전지를 갈아 끼우고 있었다. 그리고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다 죽더라구."
그건 꼭, '내가 응원하는 야구팀은 맨날 꼴찌더라.'라는 식으로 하나의 징크스를 얘기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러나 의미는 달랐다.
그녀는 이럴 때마다 자기를 백 년 넘게 살아 있는 뱀파이어라고 지칭하며, 마치 괴담을 들려주듯이 이야기했다. 그러므로 저 이야기는, 늙지도 않는 자신보다 먼저 죽어버린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리라.
그런 선생님의 밑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던 그녀는,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겉으로는 수긍하는 척하더라도, 속으로는, 나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왜 저러실까, 하고 안쓰러워하는 눈빛을 숨기지 못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축제를 한다는 것도, 지금 생각하면 되게 신기해."
뱀파이어가 입을 열었다.
"왜요?"
또 옛날 얘기인가 보다,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맘 때는 보릿고개였거든."
"보릿고개는 겨울 아니에요?"
"아니. 벼는 가을에 수확하고, 보리는 여름에 수확하니까. 여름이 시작될 즈음에는 먹을 게 없어져. 가장 굶게 돼. 그래서 여러 사람도 죽고."
뱀파이어는 속으로 회상했다. 먼 옛날, '배고픔'으로 이웃이 굶어 죽는 것을 그녀는 몇 번이고 봐왔다. 살아남기 위해 나무껍질을 뜯어서 먹었다. 그래.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가끔 자신이 겪은 일들이 모두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은 정신에 문제가 생겨서 스스로를 늙지 않는 뱀파이어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런 기대는 몇 년째 기대로만 남아 있었다.
배고픔으로 죽기 직전인 친구의 집을 찾았을 때, 그 친구는 자신의 손목을 깨물었다. 그 깨무는 정도가 너무 심해 그대로 피가 새어 나올 정도였다. 친구의 매서운 눈빛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원망이 담겨 있었다. 자신에 대한 원망인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계절에 대한 원망인지는 알 수 없었다.
뱀파이어는 어느 날인가 꿈에서 친구의 말을 들었다. 어디 한 번 영원히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살아 봐. 친구는 죽었고, 나이는 그해부터 멈췄다.
수백 개의 계절이 지나고, 전쟁이 끝났고, 배고픔을 어느 계절이든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 지구 반대편에서 아직 배고픔을 느끼는 이들에게 지원금을 보내줄 수 있는 세상이 왔다. 그리고 그 세월들을 바쁘게 보내고 드디어 여유를 찾은 지금, 즐거운 일들이 즐겁지 않기 시작했다. 일기를 안 쓴 지도 오래되었다. 일기를 쓰면 하루하루가 오래가니까.
축제 같은 걸 가보지 않은지 꽤 되었다. 무언가의 팬이 되어본지도 꽤 오래되었다. 끝나지 않는 수명을 끝나지 않는 것으로 단지 인식할 뿐, 그것을 축복으로도 저주로도 여기지 않은 채 옛날이야기를 고장 난 카세트테이프처럼 반복했다.
카세트테이프......? 그것도 이제 구시대의 산물이다. 세상이 너무 빨라.
"축제, 안 가실래요?"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뱀파이어에게 물었다. 누구보다도 즐겁고 싶은 사람들이, 흥미 없다는 듯 시시콜콜한 얘기를 늘어놓는 모습을 그녀는 이미 많이 봐왔다. 그래서 이런 즐거운 날에 아픈 얘기를 꺼내는것이리라. 그녀는 더 이상 늙다리의 입에서 옛날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팔을 잡고 물었다.
"오늘 하이라이트 오빠들 온대요."
"나 같은 할머니 끌고 가서 뭐 하게."
"제가 하는 게임에서는 오백 살 넘는 엘프도 나와요."
도대체 무슨 게임을 하는 거야. 뱀파이어는 어리둥절하면서도, 그녀의 손을 떨치지 못하고 오랜만에 대학 축제를 갔다.
그날은, 최근 삼십 년 간 즐거운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그녀의 일상에서, 오랜만에 일기에 남기고 싶었던 충만한 하루였다.
수면 장애 처방
"잠을 요새 못 자겠구요. 자도 자도 졸리고 피곤해요."
의사는 당분간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해보세요. 오늘 저녁에는 샤워를 하고 바로 잠드시는 거예요. 휴대폰 보시지 마시고, 유튜브 틀지 마시고, 음악 트시려면 클래식 같은 조용한 음악만 틀고 주무시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환자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어려워요. 그럼 전 제 하루에 대한 보상을 어디서 얻죠?"
하긴 그렇네요, 의사는 잠들기 전의 자신을 떠올리며 졸린 눈을 비볐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어려운 요구였다.
한 지붕 아래
"나 밥 조금만 줘. 뭐 먹고 자가지고 속 쓰려."
"아니 그러게, 새벽 3시에 햄버거를 먹는 사람이 어딨어."
"아메리칸 스타일이라 그래."
"아메리카로 가버려 그냥."
밥상 앞에서 티격대격대는 남매를 보며 엄마는 들고 있던 주걱을 움켜쥐었다. 머리를 때릴까 생각했지만, 이내 참았다. 머리를 치기에는 자식들 나이가 이미 각각 마흔, 마흔 넷이었고, 머리를 칠 정도의 손 힘도 이제는 없었다. 그래서 나이 사십 먹고 여태 독립도 못하는 것들이 쌈박질이나 하고 아주 잘하는 짓이다, 하고 핀잔을 줄 뿐이었다. 아빠는 묵묵히 밥을 먹었다.
남매는 그 핀잔에 이내 묵묵해졌다. 한 명은 이혼을 했고, 한 명은 사업을 말아먹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둘에게 빚은 없었다. 둘은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표정으로, 거의 동시에 본가로 돌아왔었다. 집을 떠나고 약 이십 년 만이었다. 누구보다 독립심이 강했던 두 사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올라갔고, 그렇게도 떠나고 싶었던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이가 사십이 넘도록 부모님과 같이 사는 자식들. 이제 어떡하냐고 주위에서 걱정 반 놀림 반으로 물어왔을 때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오늘 아침, 그렇게 당분간 묵묵히 밥을 먹으면서 부모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부는 혼자 혹은 둘이서 밥을 해결해 왔다. 가끔 남매 중 누구라도 집에 들르는 때가 있었으나, 좀처럼 네 명이 모두 모이는 때가 없었다. 네 명이 살던 집에 두 명만이 남았을 때, 서서히 찾아오는 갱년기와 함께 서서히 느껴지는 두 사람의 부재도 같이 견뎌야만 했다.
그러므로 이렇게나 마음이 들뜨는 이유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모두들 한 지붕 아래에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혼을 했든, 사업이 망했든,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는 통닭이나 사 와야겠다, 아빠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갑진상냥선언서
우리는 상냥한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고 사회로부터 보호받도록 이 자리를 빌려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 바이다. 아흔아홉 개의 선행을 하고도 한 개의 악행을 하면 나쁜 사람처럼 손가락질하고, 아흔아홉 개의 악행을 하고 한 개의 선행을 하면 좋은 사람처럼 칭찬하는 것이 인간의 잘못된 본성 아니던가. 그 바람에 그간 우리는 잘못된 본성에 의해 엄격한 사람들에게는 유순해지며 몸을 굽히고, 상냥한 사람들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작은 실수에도 떽떽대기 일쑤였다. 공평하게 나누어야 하는 부담은 매번 상냥한 사람들에게 떠맡아 왔고, 우리는 짐을 짊어진 그들의 허리가 휘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체 했다.
요컨대 그간 '상냥함'이란 곧 '만만함'과 같은 것으로 치부되어, 상냥한 이들에게 엄격한 잣대와 과도한 업무가 부여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이러한 상황에서도 상냥한 이들은 싫은 소리 한번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감정을 곪기에 급급했고, 몇몇 이들은 끝까지 상대방을 탓하지 않은 채 스스로 병을 얻어 세상을 떴다.
이 비극을 목전에 두고 어중간하게 착한 우리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하나, 우리는 상냥한 사람이 한 번의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간 그 사람이 해왔던 아흔아홉 개의 선행을 잊지 않겠다. 하나, 우리는 우리 근처에 있는 천사 같은 이들을 존중하여 그들이 지상에 오래 생존할 수 있도록 도모하겠다. 하늘에 천사가 부족했나 보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애도를 미연에 방지하겠다. 하나, 우리는 결코 상냥함을 만만함으로 보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어디까지나 정당하고 공평하게 서로의 부담을 나눠 갖겠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도다.
단기 사천삼백오십칠 년 오월 삼십일일 어중간하게 상냥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 대표
여우님 오신 날
서기 2024년 여우님 오신 날 봉축사(奉祝辭)
싱그러운 봄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그간 많은 계절을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맘때쯤이 되면 다음 봄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일말의 불안을 마음속에 갖게 됩니다. 천호(天狐)님께서는 그런 모습을 보시고는 수첩에 '樂'이라는 글자를 써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올해가 마지막 봄이어도 괜찮을 정도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 즐거움을 깨치는 자는 고난을 헤쳐나갈 힘을 얻을 것이고, 그 즐거움을 깨치지 못하는 자는 극락세계에 있어도 불안을 끊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불안과 좌절에 집착하게 됩니다. 자신의 인생을 불행한 것으로 단정 짓고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삶을 단정 짓기에 우리는 아는 게 너무 없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도서관 한 개 분량의 지식도 온전히 다 습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무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 무식이, 죽을 때는 물론이고 내일 당장의 삶을 함부로 예측할 수 없다는 불가능성을 깨닫게 합니다. 내일 행운이 찾아올지, 불행이 찾아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절반의 확률에서 무엇을 바라느냐에 따라 삶의 경향성이 달라지게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불안과 좌절에 집착하지 말고, 불확실한 미래를 즐겁게 여길 때, 비로소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건강에 더욱 유의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서기 2024년 여우님 오신 날을 맞아, 여우님의 지혜 속에서 내 마음의 평화와 세상의 평안을 일구어 나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