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것 한 가지
세 가지
맞는 것 한 가지
매체에는 각종 소재에 관한 글이나 동영상이 올라오죠. 우선은 그것이 무엇에 관한 것이냐에 따라 원천적으로 무가치한 것이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치에 관한 것이고 종교교리에 관한 것 등등.
그런데 그런 전제를 일단 접어두고 보거나 들어 보면 그것은 문장단위로 되어 있는 주장들입니다. 두 가지 측면이 있죠. 그 각 문장이나 단락의 내용의 진실성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무수히 틀리거나 그릇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하나 맞는 것이 있다면 내 생각은 이렇다고 표현하는 부분입니다. “...라고” 자신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죠.
맞기는 하지만 틀린 것입니다. 뻔히 틀린 사견임을 자인하는 것이죠. “사견(私見)은 사견(邪見)”이라는 원칙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은 이러한데요.” 하고 말하는 것은 한편 겸손한 것 같지만 즉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는 아닙니다만 하고 말한다는 면에 있어서 그러한 것 같지만 여지없는 자가당착인 것입니다. 인간은 주장이라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표현방식이나 태도에 있어서 자기본위적이고 공격적이거나 빈정거리는 방식이나 일방적 확신을 반영하는 방법으로 피력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사실 주장들은 매우 역한 면들이 있습니다. 자극적이어야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죠.
주장성 언어에는 세 가지 면이 있습니다. 그 방향이나 성격. 구체적인 내용,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태도입니다.
주장성이라면 무슨 유익을 얻을 게 있을까 하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듣거나 보기 위해서 시간을 내는 것은 낭비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이 하나 있습니다. 인간은 능력이나 자격이 있다면 동료인간을 도울 책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행하려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능동적인 접촉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 사랑하는 동료인간의 견해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야 알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충분히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그가 화를 내면서 말하건 울면서 말하건 간에요. 그의 주장이 아무리 편파적이고 일방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하더라도요.
인간은 대개 그러하기 때문이죠.
자신이 뭔가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료인간을 어떤 면에서건 돕기 위해서 그 내용의 질과 상관없이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다든지 그가 쓴 글을 자세히 읽어 보아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알아야 제대로 도울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순수하게 도우려는 동기는 듣고 보는 것에 대한 올바른 분별력과 대응하는 지혜를 갖게 해 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