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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MDA Nov 22. 2023

스팀펑크 3부작(Fin):근대의 종말, 이성의 종말

글을 시작하기에 먼저 해당 게시글은 에필로그임에도 불구. 분량 조절의 실패로 3부작으로 나뉘어진 긴 분량을 가지게 되었음을 공지드리며 그것이 가져오는 지루함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


'크리스마스 전엔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서력 1914년의 화창한 여름. 유럽의 각 기차역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사복을 입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군복에 완전군장한 차림이였고 각자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들은 인사를 하며 외쳤을 것이다. 어차피 전쟁은 오래 끌리지도 않을 거라고. 기껏해야 크리스마스 이전까진 집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예상은 맞았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복귀한 것이다. 다만 그 크리스마스가 해당 년이 아닌, 지옥도 속 4년이후의 것이라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해맑게 웃으며 인사하는 병사들. 당시 저 병사들 중 확률적으로만 해도 3분의 1이 돌아오지 못할 것을 저들은 알았을까?

이러한 1차세계대전의 발발 초기 모습이야말로 전쟁 뿐 아닌 세계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이전 에피소드에서도 설명했듯,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 중 하나는 좋은 시대. 즉 '벨 에포크'라 지칭되던 유럽의 낙관주의적 사고관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낙관적 기조가 단순한 민간 차원에만 퍼진 것이 아닌, 독일이나 러시아와 같은 전근대적 군주국부터 대영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과 같은 민주적 체제의 국가 정부 일원들에게까지 스며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1900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장의 모습이다.

물론 역사를 공부하는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해당 역사 외부의 관조적 사고로 그들을 판단해선 안된다. 그들의 사고방식에도 나름의 합리와 이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언급했듯 근대는 무수한 변화가 그것도 아주 빠르게 일어나는 격동의 시대였다. 그리고 그러한 격렬한 변화로 인해 유럽과 같이 크고 작은 무수한 국가들. 또한 그것들이 여러 지정학적 변수로 둘러싸인 구대륙은 또한 사회적,정치적,경제적으로 더더욱 세밀하고 복잡하게 연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환경 속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작금의 유럽에서 전쟁은 불가능하다며 그 이유는 상업적, 사회적, 심지어 군주를 통해 혈통적으로 연결된 유럽에 누군가가 전쟁을 일으킬 시 모든 이가 파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론 자체는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상식적'이며 '이성적'인 것에 가깝다. 현실영역에서 해당 명제는 거대한 오류가 있었다. 바로 그것의 주체인 인간은 애초에 완벽히 상식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독일, 오 위대한 독일!

그리고 그러한 비상식과 비이성의 실타래를 처음 풀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의 국가에 가장 집중해야 한다. 그 나라는 독일. 정확힌 '호엔촐레른'이라는 왕가가 통치한 프로이센이 건국한 독일 '제국'에 대해서 말이다.


로마 제국 시절 게르마니아의 개괄적 판도.

사실 이 '독일'이라는 국가, 아니 개념은 유럽의 역사에서 그닥 중심을 차지한 적이 없었다. 과거 로마인들은 북독일. 그러니까 훗날 격변이 일어나게 될 지역은 게르마니아라 부르며 거주민들을 아예 야만인 취급했고 그들 또한 국가는 커녕 단결된 하나의 대규모 연합조차 이루지 못했다.

13세기 신성로마 제국의 최대강역. 허나 이런 광활한 영토애 대한 황제의 실질적인 통치능력은 존재하지 못했다.

훗날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비잔티움을 제한 서로마가 완전히 무너지고 교황으로부터 황관을 받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국가가 등장했지만 그것을 조롱하는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제국은 봉건제의 극치를 자랑하였으며 황제는 그저 독일을 대표하는 '군주 중 하나' 정도의 취급이었다.


비스마르크와 북독일이 주도한 독일 제국의 선포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는 결국 훗날 벌어질 모든 재앙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그런데 19세기 그 누구도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독일이 마침내 통일다운 통일을 이룬 것이다. 구대륙 외교의 불세출의 천재 비스마르크와 그가 섬기는 프로이센 왕국의 호엔촐레른 가문이 주도한 독일 통일은 이전 신성로마제국의 물렁해빠진 그것과는 궤를 달리하였다. 

개혁은 커녕 현상유지조차 지지무진하여 영토마저 잃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으로 전락한 남독일은 둔채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북독일의 완벽한 통일은 '철과 피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비스마르크의 격언을 빼다박기라도 한듯 강력한 군사력과 철저한 정확성의 관료들을 자랑하였다.


1910년도의 포츠담 궁전. 이 모습이 불과 50년도 안되 이루어낸 발전이라는 것이 믿겨지는가?

이제 독일제국은 자신들의 잠재력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독일은 불과 50년만에 대영제국. 기존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며 '해기 지지 않는 제국'이라 불린 그들의 면직물, 철강, 석탄과 같은 1,2차 산업의 대부분의 생산량을 따라잡았고, 급기야 몇몇 부문은 추월하기까지 하였다.

인적 자원을 제외하더라도 중부 유럽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폴란드와 러시아까지 곧게 뻗어있는 북유럽 평원은 풍족한 식량을 제공하였고 라인강 일대의 알자스- 로트링겐 지역은 구대륙에서 광물 자원이 가장 많이 매장된 곳 중 하나였다.  

대영제국과 프랑스, 그리고 기존의 체제의 자리를 차지하던 모든 유럽의 '구열강'들은 조급해졌다. 이제 독일은 단순한 개별적인 국가들의 강제력으론 막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무리를 지어다니는 걸 좋아하였으며 국가 차원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패권과 현재의 패권의 대결. 훗날 '3국 협상'과 '3국 동맹'이라 불리는 진영이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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