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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발 쓴 전교 회장

by A록


맞고 커서 그런지 나는 어딘가 삐딱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삐딱함은 나에게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그래서 날라리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날라리의 언어와 날라리의 겉모습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공부도 열심히 했다. 하루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들어왔는데 오빠가 "노는 거 좋은데 평균 90 아래로는 내려가지 말자."라고 했다. 세상 부드러운 말투로. 나의 고딩 시절에는 등급이 아니라 교과목 성적을 평균낸 점수가 성적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오빠에게는 내 친구들 보다 훨씬 제대로 날라리인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과 일일찻집이다 뭐다 더 크게 노는데도 늘 전교 1등을 했다. 그래서 나보다 더 노는데 공부도 더 잘 하는 오빠가,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우리 오빠가 하라고 하니 안 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 특히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그 이유는 인기가 많아서였다. 약간의 중성미가 있는 나는 여자 고등학교에서 뭐 하나 작은 성공에도 큰 호응을 얻는 호사를 누렸다. 그래서 부반장을 하고 반장을 할 때도 그렇게 재미가 있었다. 그러니 공부까지 잘 하면 얼마나 멋져 보일까 싶어서 공부를 했다. 성당에서는 남자후배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는데 시험 기간이면 응원 문자가 쇄도했다. 그리고 큰 비닐봉지 하나에 이런저런 과자를 잔뜩 담아 와서 이거 먹으면서 공부하라는 녀석도 있었다. 그러니 공부할 맛이 날 수 밖에. 인기가 절정일 때 성적도 절정이었다. 평균 96점으로 반에서 2등을 했다.


고3 때는 그 인기 덕분에 전교회장까지 했다. 그 해 여름, 리들리 스콧이 감독을 하고 러셀 크로우가 주연을 한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고 너무 감명을 받아서 그 울렁이는 감정을 기억하려고 귀를 확 드러내고 커트를 쳤는데 우리 학교는 단발이 규정이라 나에게 가발을 쓰라고 했다. 일반 학생이면 몰라도 전교 회장이 대표로 학생들 앞에 설 일도 많은데 규정을 어기면 안 된다고.


하필 우리 반에 가발 집 딸이 있어서 담임 선생님이 그 친구에게 가발을 하나 가져와 달라고 했는데 다음 날 그 친구의 손에 들려온 것은 갈색 둥근 단발머리 가발이었다. 앞머리도 동그랗고 옆도 뒤도 동글동글. 가발을 가져온 친구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그 가발을 1초도 더 안 보고 거절했다. 나름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인 내가 그런 동그라미 머리를 하고 학교를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하도 질색팔색을 하자 담임 선생님도 포기하는 표정으로 알겠다고 하시더니 다음 날, 남자 체육 선생님이 수학여행 때 마다 우리를 웃기려고 쓰는, 빗자루 머릿결 가발을 빌려주겠다고 직접 가져오셨다. 처음에는 뜨악했지만 자세히 보니 어제의 그 동그란 가발 보다는 나아보이기도하고 선생님의 소중한 시그니처 소품을 나에게 장기대여 해주시겠다는 마음이 감사하기도 해서 어쩔 수 없이 한숨을 푹 쉬면서 받았다.

나는 고3, 2학기 내내 그 빗자루 머리를 다듬어서 쓰고 다녔다. 심지어 졸업사진을 찍을 때도 그 가발을 쓰고 찍었다. 여름에는 가발 속 머리가 너무 더워서 쉬는 시간에 가발을 벗고 가방 걸이에 걸어두었다가 수업이 시작되면 급하게 가발을 집어서 머리에 얹었다. 그럴 때 마다 선생님들이 "반장, 가르마 돌아갔다~”하고 알려주셨다. 마음씨 착한 몇 몇 선생님은 그냥 벗고 있으라고 해주셨다. 급식실에서 밥을 먹을 때도 너무 더워서 가발을 슬쩍 빼서 머리 위에 얹어만 놓고 밥을 먹었는데 후배들이 그 모습을 보고 “선배, 멋있어요!”하며 지나가곤 했다. 불편했지만 재미있는 시절이었다.


고3 졸업식 때 전교생이 모인 체육관에서 무대에 올라가 표창장을 받았는데 그 때 내가 입은 교복이 한껏 줄인 날라리 교복이라 치마는 어쩔 수 없고 마이라도 어떻게 해보자 싶어 옆에 있는 범생의 벙벙한 마이와 바꿔 입고 올라가 상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막판까지 뭘 그렇게 쫄았나 싶다.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올라가서 표창장을 받고 교장 선생님과 악수를 한 다음 줄인 마이를 벗어서 어깨에 걸치고 껄렁하게 걸어내려 올 걸 그랬다.


글, 그림 by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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