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 몸도 약하고 마음도 약하고

by A록


어릴 때 자주 체하고 토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뭘 먹고 체했는지 속이 심하게 울렁거려 책상에 엎드려 있었는데 선생님이 내 옆을 지나갈 때 마다 풍기는 화장품 냄새 때문에 속이 뒤집어져서 입을 막고 토하지 않으려고 엄청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렇게 속이 안 좋을 때 마다 집에 돌아와 물에 말은 밥에 김치를 얹어서 먹고 소화제를 먹었는데 그런 날엔 어김없이 저녁에 울렁거림이 더 심해져서 낮에 먹었던 밥과 소화제를 힘겹게 다 게워냈다. 열 손가락을 다 따고 심하면 발가락까지 다 따고 언제 토할지 몰라 비닐 씌운 작은 쓰레기통을 옆에 두고 며칠을 못 먹고 누워서 울렁거리는 속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부산에서 태어나 외할머니, 이모, 오빠, 부모님과 같이 살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창원으로 이사를 갔고 다시 중1 때 서울로 이사를 갔는데 중학교 1, 2학년 때 적응이 힘들었는지 선택적 함구증이 왔다. 학교나 학원에서 말이 자유롭게 나오지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입이 꾹 닫혀서 아무 말도 뱉을 수가 없었다. 그 때 마침 철 필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연필로 글씨를 쓸 수 있는 무코팅 재질이어서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그 필통을 조졌다. 필통이 새까맣게 되도록 깨알 같은 글씨를 쓰고 또 쓰고 지우고 또 쓰고를 반복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필통이 나의 구세주였다. 거기에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부어서 제정신으로 살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를 사로잡았던 감정은 ‘열등감’이었는데 왠지 나보다 잘 나 보이고 세 보이는 서울 아이들에 대한 열등감,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고 친구도 많고 선생님들한테 인기도 많은 오빠에 대한 열등감이었다. 학교에 가나 학원에 가나 성당에 가나 나는 내 이름 보다 ‘훈이의 동생’으로 불릴 때가 많았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웃음으로 수줍게 인사를 한 다음 필통을 붙잡고 앉아 ‘내 이름은 훈이의 동생이 아니야. 나도 내 이름이 있다고. 내 이름은 록이야!!!’라고 울부짖는 문장들을 빼곡히 써넣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필통 뚜껑 위에 까맣게 갇혀있을 뿐이었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도 선택적 함구증이 간헐적으로 찾아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머니, 큰이모네, 작은 이모, 삼촌, 우리 가족이 같이 여행을 갔는데 봉고차 문에 손이 끼었는데도 아프다는 비명을 못 질렀다. 아파서 커진 눈에 눈물이 고였는데 ‘어떡하지... 어떡하지...’하며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다가 힘들게 손을 뺐다. 까지고 부어오른 손가락에는 얼룩덜룩하게 피멍이 들어있었다. 그걸 본 이모부가 엄청 아팠겠다고, 소리를 지르지 왜 가만히 있었냐고 하는 말을 듣고 참았던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던 기억이 난다.


어린 나는 몸과 마음이 약하고 자주 아팠다.



글, 그림 by 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