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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맞고 자랐다

by A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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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매질은 맞고 바른 길로 가라는 교육적 차원의 매질이 아니었다. 맞고 뒤지라는 매질이었다. 유치원생이었던 나는 벽 구석으로 몰려 길고 튼튼한 플라스틱 구둣주걱으로 죽이 되도록 맞았다. 온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머리를 감싼 채 끝없이 맞았다. 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화끈거리고 따가웠다. 목 뒤에 튀어나온 뼈나 척추뼈, 팔꿈치 같은 곳을 맞으면 찌릿! 전기와 함께 믿을 수 없는 통증이 폭탄처럼 쏟아졌다. 시선을 그쪽으로 돌려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보는 순간 내 몸의 또 다른 곳에 매 폭탄이 떨어졌다. 더이상 몸을 감싸는 자세로 앉아있을 수도 없다. 너무 아파서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가장 따가운 부위를 작은 두 손으로 가렸다.


그렇게 맞으면서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잘 못 했어요. 안 그럴게요. 아파요!!!”

울면서 뭘 잘 못 했는지도 모르고 빌었다. 한 대라도 덜 맞고 싶었다. 그 시간 그 집에는 나와 그 사람밖에 없었고 이후에도 똑같은 방식의 구타가 여러 번 이어졌다.


나는 그 일을 다른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생각을 못 했다. 하루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 엄마인데. 엄마랑 단 둘이 있는데. 내가 피할 곳이 없는데. 도대체 누구한테 그 얘기를 하나? 꿈도 꾸지 못 할 일이었다. 그냥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요일 아침에 성당 갈 시간이 되었는데 준비를 안 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는 이유로 두 살 위 오빠와 발가벗긴 채로 집 밖으로 쫓겨났다. 우리 집이 12층 아파트의 1층이어서 현관문 바로 앞에 승강기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기 전에 어딘가로 몸을 숨겨야 했다. 그 때 오빠가 지하실로 내려가자고 했다. 지하실? 끝없이 내려가는 긴 계단 끝에 있는 그 어둡고 무서운 곳? 계단만 보는 것도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고 지나가던 거가로 가자고?


오빠가 먼저 내려가는 걸 보니 나도 안 내려갈 수가 없었다. 지하실 천장에는 굵은 파이프들이 여러 색깔로 얽혀있었고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은 부분적으로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는데 온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다. 한 겨울에 맨 몸으로 차가운 습기 가득한 어두운 지하실에서 공포를 뒤집어 쓴 나는 나를 최대한 감싸안고 차가운 발을 동동거리며 이 지옥같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오빠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처럼 동동거리지도 않았다. 오빠가 너무 가만히 있어서 나도 침묵헸다. 한참 후에 아빠가 왔다.


아빠의 손에는 두 켤레의 슬리퍼가 들려있었다.

'아빠! 발이 너무 차가워!'

헐레벌떡 슬리퍼에 언 발을 집어넣고 있는데 아빠가 뒤돌아 갔다. 아무 말 없이 슬리퍼만 놓고 갔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한채 아빠가 사라진 검은 공간을 응시했다. 그래도 슬리퍼가 있어 살았다 싶었다.


그리고 몸이 차갑게 굳어가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엄마 편이야. 어디에도 희망은 없어.'


슬리퍼를 신은 맨 몸의 어린 여자 아이는 춥고 어두운 지하실에서 세상에 희망이 없음을 백 번은 더 넘게 확신했다. 확신은 덩치를 불려 헐크가 되었다가 춥고 힘든 시간이 길어지자 바람빠진 수소 풍선처럼 줄어들어 바닥에 힘없이 붙었다. 나도 서있기가 힘들어 쪼글여앉았다. 바닥에 물만 없으면 눕고 싶었다. 몸과 머리에서 힘이 다 빠지고 이제 곧 내가 사라지겠다 싶을 때 집으로 들어오라는 음성이 들렸다.




같은 해, 초등학교 1학년 때, 외국에 사는 이모가 인형을 사 왔는데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구경만 했는데 나중에 그 인형이 없어졌다며 나에게 추궁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무서워서 윗집 언니에게 주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외할머니, 외삼촌, 이모, 이모부, 오빠가 보는 앞에서 나의 양쪽 뺨을 연이어 한번씩 힘껏 후려쳤고 나는 쌍코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눈물이 흘러 흐릿한 눈에 나를 쳐다보고 서있는 가족들 얼굴이 비쳤다. 그 중에 어느 한 사람도 그 사람을 말리거나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지 않았다. 그 사람의 눈빛과 비숫한 눈빛을 하고 처참하게 처형당하는 억울한 죄수를 무관심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그날 밤 이부자리에 누워 머리와 상체를 들썩이며 남은 울음을 처리하던 나는 빨리 잠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이 보다 더 한 악몽은 없을테니 잠의 세계로 얼른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둠을 가르는 빛이 방 문을 통해 들어왔다. 그 사람이 없어졌다던 인형을 손에 들고 방 문 앞에 서있었다. 빛을 등지고 검게 보이는 그 모습이 너무나 무서워 다시 울음이 터졌다. 그 사람은 인형을 베란다에서 찾았다고, 왜 거짓말을 했냐고 화를 냈다. '지금 이게 꿈 속인가? 설마 현실인가? 이게 현실일 수가 있나? 그러니 꿈인가?' 헷갈려하며 나는 울었다, 그제야 외할머니가 나서서 그 사람을 말렸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오빠와 밥을 먹다가 마지막 남은 햄 한 조각으로 싸웠다. 그러자 그 사람이 그 햄을 쓰레기통에 던져놓고 개처럼 기어가서 먹으라고 했다. 너희는 양보도 모르는 개 같은 인간이니까, 개같이 기어가서 먹으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나는 빨리 기어가서 먹고 이 상황애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오빠가 그러지 않았다. 오빠는 절대로 기어갈 생각이 없었다. 오빠는 나처럼 비굴하게 엉엉 울며 잘 못 했다고 빌지도 않았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그냥 계속 빌었다. 우리는 끝내 햄을 먹지 않았지만 모욕감은 배가 터질 정도로 먹었다.




오빠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성당 봉헌금을 받아서 오락실에서 오락을 한 것을 알고 그 사람이 오빠의 손가락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식칼로 잘라버리겠다고 했다. 오빠는 눈물을 흘리며 잘 못 했다고 말했지만 그 사람은 칼을 손가락에 댄 채로 '너는 오락 할 마음이 없어도 이 손가락이 또 잘못을 저지를 것이라며 손가락을 잘라야 한다'고 했다. 나는 울며불며 제발 그러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칼이 손가락에 닿을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 비명이 저 칼을 막을 수 있길, 나는 이 비명과 함께 사라져도 괜찮으니 오빠의 손가락이 잘리지 않길 바랐다.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한참 비명을 지르고 난 후에야 오빠의 손가락은 도마에서 힘없이 내려왔다.


내가 맞는 것도 괴로웠지만 오빠가 맞는 것을 보는 것도 미치도록 힘들었다. 공부도 잘 하고 착한 오빠를 그 사람은 종종 팬티만 입혀놓고 온 몸에 매 자국이 시퍼렇게 남도록 때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장 뛰쳐나가 앞집 아줌마한테 도와달라고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수십번을 고민했다. 그 상황이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내가 도움을 요청한 것 때문에 그 사람이 더 화가 나면 오빠가 더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번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그래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오빠를 마구잡이로 때려놓고 밤에는 우리가 자고 있는 방에 기어 들어와 호랑이 무늬가 된 오빠의 몸에 연고를 발라주며 흐느꼈다. 그나마 오빠를 나보다 더 사랑해서 하는 짓이었다. 나는 그런 A/S도 받아본 적이 없다.




오빠와 나는 공부를 잘 했다. 오빠는 월등히 잘 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1등이었고 나는 중학교 때는 10등 안에 드는 정도였다가 고등학교 때는 마음 먹고 열심히 하면 3등도 하고 2등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들이 날라리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이 우리 집에 찾아오는 내 친구들 모습이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고등학교 가지말고 네 친구들이랑 같이 공장에나 가라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인문계에 가고도 남는 성적이었는데 공장에나 가라니. 얼마나 내가 싫으면 저런 말을 그냥 내뱉을까 싶었다.


고1 때 남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우리 집 앞에서 손을 잡고 지나가는 모습을 그 사람이 봤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매를 들고 오더니 몸을 때리기는 좀 그랬는지 손바닥을 대라고 했다. 매를 두 손으로 붙잡고 안 맞겠다고 하니 옆에 있는 의자에 걸려있던 마른 수건을 집어 들고 내 몸을 마구자비로 때리기 시작했다. 두 팔로 얼굴을 가리고 숙이자 밑에서 빠르게 올라온 수건이 얼굴을 때렸다. 마른 수건이 엄청난 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자기 분이 풀릴 때까지 내리치더니 그 놈이랑 당장 헤어지라고 했다. 분노에 찬 매질과 일그러진 표정과 흔들리고 찢어지는 목소리. 또 악몽인가 싶었다.


글, 그림 by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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